통영에서 박경리 문학관에 들른 후에. 대하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져서 최근 김약국의 딸들부터 해서 토지도 빌려다 읽고 있다. 술술 읽힌다. 다만 평소에 딴데 한눈팔 때가 잦아서 맘 먹고 책을 펼쳐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 문제임. 일단 펴면 재밌는딩.

여러 사람의 삶의 양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보니 한두 주인공에 집중되어 서술되는 소설들과는 또 느낌이 좀 다르다.
시대상이 좀 더 눈에 잘 들어오고. 이런저런 인간군상의 다양성도 눈에 띄고. 온갖 일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생의 고리들이 대단하다 싶고. 삶 자체가 참 고생스럽고 지루하고 버거운 것인데 참아내며 새끼를 길러내 온 옛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상과 자식이 다 뭐고 그렇게들 되뇌던 인간의 도리란게 뭔가..바보같구나 싶어 혀를 차고 싶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특히 옛 시대의 여자들의 삶이란 것이. 왜들 그렇게 매여 살아야 했을꼬 싶고 신분고하 막론하고 노예와 다를 것 없다 싶기도 하고. 갑갑해져오는 구석이 있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찰나의 사랑이나 야망이나 그런 것들이 그 진저리나는 구덩이 속에서 화르륵 불타올랐다 스러지는 걸 보면 또 눈길이 끌리고. 그렇다. 
토지같은 경우는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라. 인물들이 그 시대적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버티다가. 느슨한 신분적 경계를 타고 들떠서 뒤엎기를 시도하다가. 이래저래 스러지고. 뭐 그런 양상들이 또 그럴싸하다.
중독성이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21권까지 쭉 잘 볼 수 있길. 지금 3권 읽고 있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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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사건.

일상 2018. 11. 14. 22:21
뉴스가 떴기에 살펴보았는데. 여자 둘이 4명의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요즘 이런 뉴스 접하는 게 너무 잦아서 화가 나다못해 무력감마저든다. 일터에서 이런 화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은 없다. 의미없는 얼리어답터스런 이야기들. 아무래도 좋을 일에 대한 이야기나 하지.
뭘까. 거의 며칠에 한 번 꼴로 여자들이 죽임당하고 처참하게 맞고 살아가는데. 거의 매일같이 애인이나 전남친이나 남편에 의해 죽은 여자들 이야기를 접하는 듯 기시감이 들고. 그를 뒷받침하듯 나흘에 한 명 꼴로 가까운 남성에 의해 여자들이 살해당한다는 통계가 있고. 여성의전화에 걸려오는 40프로 이상의 전화는 여전히 가정폭력 상담전화라고 하고...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게 이상하다.
어린 시절. 학교 테두리 안에 있을 때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이유없는 폭력에 희생당하고.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맞고 사는 여자들이 과거 할머니 세대때나 있을 줄 알았지 요즘도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세상은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야만적이고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받는 곳이란 걸. 스물이 한참 넘어서야 실감한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적잖이 스트레스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공동의 화제에서 여자가 죽었다거나 하는 처참한 사건들을 비껴놓고. 그런 세상에 대한 불평을 모두의 앞에서 거론하지 않게 억누르고 검열하며. 그런 짓을 자행하는 이들이 같은 성의 사람들에 의해 옹호되곤 크게 처벌 받지 않고 집유나 심신미약으로 풀려나는, 암묵적인 그들만의 카르텔 권력을 보면서 혐오를 다스리는 것이. 그리고 저들끼리 돌똘뭉쳐 권력과 명예와 돈을 위해 밀고 끌고 술마시고 친목을 다지는 틈에 나는 동등한 자로 끼지 못하고 내로라 하는 것을 들어주는 희롱상대로나 여겨져 추행당할 수 있다는 것이. 추하고 역겹다. 아더매치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당하고. 약자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여겨져 짓눌리고 폭력에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불만을 가지는 것이 이상한가. 어지간히 둔감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화나고 화나고 화난다. 역겹다.
어릴 때 이런 감정이 들 때는 철저하게 여성스럽다는 것들을 거부했다. 강한 이가 되고 싶고 강하게 보이고 싶었고 주류가 되고 싶었으니까. 남성스러운 것들을 부러 찾아 즐겼다. 그것도 일종의 여성혐오였을까. 그냥 여성스러움으로 규정되고 싶지 않았다. 약하고 조신하고 예쁘고 그런 것들. 아무래도 좋을 것들. 부드럽고 상냥하고 수용적이고. 아무래도 만만하게 여겨질 것들. 당하면 자기파괴나 하고 주변에 흠 하나 못 미칠 미약한 존재. 무너질만한 인간이고 싶지 않다.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피해자로 규정받고 싶지 않다. 그렇게 느꼈지.
그냥 지금은 외모든 성격이든 취향이든 모두 떠나 그냥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홀로서고싶고. 홀로 성공적이고 싶다.
내가 얼마나 의존적이고 자기확신이 부족한가. 한 발 물러서서 보고 수용하도록 길러졌고 그에 얼마나 익숙해져 왔는지 요즘 많이 깨닫고 있다. 나는 분명 자신만만하고 능력이 넘치고 달변인 여성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분야든 자기확신을 가지면 안 될 만큼 형편없지도 않다. 자아상을 좀 복구할 필요가 있다. 자기검열 때문에 스스로의 행동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마음에 차지 않아 스스로를 괴롭히고 폄하하느라 확신에 찬 말을 뱉지 못하는 습관이 든 게 싫다. 달라질거다. 타인의 시선에 무감해질거고. 무시할거고. 어차피 내 통제 밖이니까. ..그런 변화할 내 행동과 말이 폭력과 살해를 불러올만한 세상이 아니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단지 세상이 바라는대로 원치않는 '예쁨'을 내던지고 편하게 숏컷을 했다는 것 정도로 시비를 걸어오고. 구타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혼자 있는 여성이라고 해서 당연하다는 듯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 평온하게 홀로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계획하지 않은 야만에 의해 삶이 위태로워지지 않는. 그런 야만이 주류의 목소리로 나오지 않는 곳. 일방적으로 뼈가 보일 정도로 맞고 피흘린 이들에 대고 폭행한 가해자의 변명을 대등하게 들어봐야한다는 미친 변호 따위 발도 들이지 못하는. 아주 기본적인 존중과 문명화가 이뤄진 곳에서 살고 싶다.

내가 가르치는 여자아이들 역시.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요즘은 뉴스를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암담한 느낌이다. 20대가 저러면 십대라고 크게 다를까. 아이들이 커서 도시로 가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면. 저런 미친인간들을 얼마나 조우하게 될까. 두렵다. 그애들의 삶에 고통이 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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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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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뽕이 차오르는 영화.
라미 말렉에 대한 칭송은 전부터 마이너하지만 열정적인 팬덤글을 간혹  봐왔던지라. 퍼시픽이니 밴드오브브라더스니. 톰 행크스가 연기 넘 잘하길래 점찍어서 영화 같이 찍었다느니.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이집트왕으로 나왔는데 연기가 어쩌구저쩌구..
암튼 알게 모르게 팬덤에 설득당해서 대충 연기 잘 하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봤는데. 과연 잘하더라. 치아보형물이 좀 신경쓰이긴 했고. 왜소한 몸매가 좀 괴리감 느껴지긴 했지만. 노래모창 괜찮았고 후반부, 특히 라이브에이드 부분으로 갈수록 진짜 프레디 머큐리같더라. 글타고 내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잘 알던 건 아니었지만 정말 배역에 확실히 녹아든 느낌이었음...근데 젤 먼저 찍은 장면이 라이브 에이드래서 띠용.ㅎㅎㅎㅎ

드럼비트랑 기타솔로. 신들린 보컬. 아 진짜 매력적이었고. 좋았네. 락콘 가고 싶어지는 영화였고..그런 점에서 좀 아쉽기도 했음. 음악에 좀 더 푹 녹아들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관객석으로의 화면전환이 너무 잦아서 좀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많았음. 좀 더 잘 찍을 수 있었다는 얘기에 공감하는 게. 공연장면을 좀 더 보여주든가. 아니면 프레디머큐리의 방황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보여줬어도. 선택과 집중이 잘 안 된 느낌. 어중간한 느낌임. 그래도 좋았다만.

프레디 머큐리 역으로 사샤 바론코헨이 꼽히기도 했다는데. 얼핏 보면 그가 외모면에선 훨씬 실물에 가까워보임. 더 단단하고 머슬있는. 다만 프레디의 방황 부분을 좀 더 19금으로 심도있게 다루자는 그의 의견에 퀸의 메이옹이랑 로저 옹 등이 반대했다는 듯. 퀸 멤버들은 프레디의 사생활을 파기보다 뮤지션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더 다루고 싶으셨다나봄.

캐스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제 밴드 멤버랑 싱크로율이 장난 아님. 영화 보고서 팬들이 올린 사진 보는데 와. 기타 브라이언 메이옹 역의 귈럼은 완전 판박이. 드럼 역 배우 벤 하딩?도 꽤 비슷. 캐스팅 담당 상줘야됨.

퀸의 tmi를 이래저래 찾아보고 있는데 이 밴드 진짜 매력적인 듯. 싸우는데도 먼가 꽁냥꽁냥하고 별로 안 험하고 귀엽기까지 한 느낌임. 차랑 사랑에 빠지는 곡 안 넣어준다고 로저 옹 삐져서 장롱 시위 했다는 거나. 로저 옹이 승질 드러워서 드럼 종종 집어던졌다는 거나. 던진 거 우연히 무대 뒤  프레디가 맞아서 실려갈 뻔 했다는 거나.
프레디 옷에 대해 한 마디씩 했어도 입는 거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 안했다는 멤버들 얘기나. 한 술 더 떠서 프레디가 직접 디쟌한 쫄쫄이옷들 같이 입자고 했는데 다들 학을 떼고 자기들은 얌전한 옷 입었지만 프레디가 입는 거에 대해선 뭐라 안하고 넘어간 거나. 프레디는 누구에게나 달링이라 불렀고.
그밖에 메이옹이 천문학 박사에 대학총장님까지 하셨단 거나.
디콘 옹이 전자공학 전공이라 기자재 직접 고치고 할 때 멤버들 와서 구경했다는 거나. 디콘옹이 특수녹음 구현해서 오페라 스타일 가능했다는 거나. 긍겡 임페리얼 칼리지 이과수재들 틈에 낀 유일한 예과인간 프레디니..등등등.
뭐 밴드간의 불화나 프레디의 방황은 나름 심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껏 락밴 덕질하면서 본 게 만만찮다보니..신생아 강간이나 살인죄 복역이나 칼부림.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 경우. 자살 등등. 별의 별 경우가 락씬엔 워낙 많아서. 이 정도면 진짜 훈훈한 밴드고 서로 가족이라 할 만 하네 싶은 것.

자주 들어왔던 7080노래들 중 퀸의 히트곡이 생각보다 많은 데 놀랐고. 은근 취향에 맞는 곡들이 많아서 신났고. 락공연 가서 미친듯이 슬램하면서 떼창하고 싶어지고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음. 당장 가까운 데서 싱얼롱관 했음 가사 외워서 갔을텐데.ㅎㅎㅎ

오늘 두 번째로 보고 왔지만 첫 번째보다 만족스러웠음. 아...좋다. 자기 전에 아직 못 본 퀸 tmi 더 찾아봐야게씀. 이히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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