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가 갖는 무수한 설정과 이미지에 기여한 뱀파이어 고전 단편들.
고전 호러 클리셰들을 하나하나 훑는 기분이다. 
그게 별로란 건 아니고. 나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옛날사람들은 이런 걸 읽으면서 떨었단 말이지..호옹호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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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page꿈에서 모호하고 기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강물을 거슬러 움직일 때나 목욕을 할 때처럼 온몸에 전해지는 유쾌하고 차가운 전율이었다. 곧이어 전율과 함께 간헐적으로 꿈에 나타나는 장면이나 사람 혹은 그들의 행동 따위는 너무도 어렴풋해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오랫동안 엄청난 정신력을 쏟으며 위기를 헤쳐 나온 것처럼 탈진감과 오싹한 여운이 남았다. 잠에서 깨어 있을 때도 거의 칠흑처럼 어두운 어느 공간에서 낯선 이들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 지속되었다. 특히 맑고 웅숭깊은 여자의 목소리가 멀리서 천천히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강했는데, 그 목소리는 언제나 형언할 수 없는 엄숙함과 공포감을 자아냈다. 손 하나가 부드럽게 내 뺨과 목을 쓰다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따스한 입술이 내 목에 이르러서는 더 오래, 더 사랑스럽게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애무의 여운은 그것을 느끼는 순간, 멈추어버렸다. 내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고, 숨결이 높아졌다가 푹 꺼지듯 내려앉았다. 나는 목을 졸린 듯 흐느끼다가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감각과 의식을 잃었다.

란-조셉 셰리든 레퍼뉴, '카르밀라' 中 고치기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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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page기이하고 아름다운 내 친구는 한 시간 내내 냉담하다가도 어느새 내 손을 잡고 다정히 어루만질 때가 있는데, 그때는 좀처럼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약간 홍조를 띤 얼굴, 나를 쳐다보는 나른하면서도 이글거리는 눈빛, 드레스가 살랑거릴 만큼 가쁜 숨결, 그것은 연인의 열정과도 같아서 나를 당혹하게 했다. 혐오스러웠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흡족한 눈빛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뜨거운 입술로 내 뺨 구석구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거의 흐느낌에 가깝게 속삭였다. 
"너는 내 거야. 내 것이어야 해. 너와 나는 영원히 하나야."

란-조셉 셰리든 레퍼뉴, '카르밀라' 中

꺄악 >ㅁ<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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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page내가 그 문제로 끊임없이 그녀를 성기시게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그쳐 묻기보다는 교묘하게 기회를 엿보았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한두 번 직설적으로 물은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수를 써도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으르고 달래고,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대답을 회피하는 방식은 너무도 구슬프고 애원에 가까우리만큼 상냥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무수히 그것도 열렬히 말하면서 내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약속했다. 그랬기에 그녀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해도 내가 그것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았음을 여기서 덧붙여야겠다. 
그녀는 종종 내 목을 끌어안고 뺨을 부비면서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얘, 마음이 상했구나. 내 정신력과 심약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해서 나를 잔인하다고 생각지는 말아줘. 너의 어여쁜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 내 거친 마음에도 피가 난단다. 너의 따스한 삶 속에서 나는 굴종하며 사는 황홀을 맛봐. 너도 내 안에서 죽을 거야. 달콤하게 죽을 거야. 어쩔 수 없단다. 내가 네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너는 다른 이에게 가까워질 거야. 그렇게 사랑인 동시에 잔인한 환희를 배우는 거지. 한동안은 나와 내 것에 대해 더 알아내지 못할 거야. 하지만 사랑스러운 네 영혼으로 나를 믿어주렴." 
그렇게 열정적으로 말할 때면 그녀는 떨리는 손길로 나를 더 세게 껴안고 부드럽게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왜 그리도 흥분하는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멋쩍은 포옹이 있을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손길에 따르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맥이 풀려서 그러지도 못했다. 귓가에 자장가처럼 전해지는 그녀의 속삭임이 도망치려는 나를 황홀경으로 이끌었고, 언제나 그녀가 팔을 놓아주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란-조셉 셰리든 레퍼뉴, '카르밀라' 中 고치기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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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page야브투흐와 도로슈가 돌아갔고, 호마는 또 혼자 남았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위협적이었다. 그는 잠시 서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시체의 관은 여전히 교회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섭지 않아, 죽어도 무섭지 않아!"그는 전처럼 주변에 원을 그렸고, 생각나는 대로 구마 주문을 전부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소름끼치는 침묵 속에, 촛불이 깜박이며 교회 전체를 환히 비추었다. 그는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러나 문득 자신이 성경을 잃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 속에서 성호를 긋고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은 용기가 났다. 기도문이 시작되었고, 빠른 속도로 책장이 넘어갔다. 돌연, 정적 속에서 굉음과 함께 관의 쇠뚜껑이 확 열리더니 시체가 일어섰다. 전보다 더 끔찍한 광경이었다. 시체의 이가 맞부딪쳐 덜덜거렸고, 일그러진 입술에서 새된 소리의 거친 주문이 쏟아져 나왔다. 소용돌이가 일고 성상들은 바닥에 떨어졌으며, 유리창이 산산이 깨졌다. 돌쩌귀에서 문이 떨어져 나가자 무수한 괴물들이 교회 안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교회 안은 온통 날갯짓과 발톱 긁어대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모두가 날아다니며 호마를 찾아내려고 법석이었다.호마를 사로잡은 황홀경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졌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기억할 수 있는 기도문을 되풀이해 외우기 시작했다. 주변에 쇄도하는 악령들 소리가 들려왔다. 날개와 역겨운 발톱이 몸에 닿을 듯 스쳐갔다. 호마에겐 그들을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그가 본 것이라고는 숲처럼 털이 뒤엉킨 거대한 괴물이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자였다. 북슬북슬한 털 사이로 오싹하게 번뜩이는 두 개의 눈동자, 약간 치켜올라간 눈썹. 그 위로 거대한 거품 모양의 뭔가가 허공에 매달려 있엇고, 그 한복판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집게발과 전갈의 독침이 뻗어 나왔다. 그것들은 한꺼번에 그를 노리며 찾아다녔지만 마법의 원에 둘러싸인 그를 볼 수는 없었다. "비이를 데려와! 가서 비이를 데려와!"

란-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비이' 中 고치기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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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page키예프의 아침, 브라츠키 수도원 정문에 걸린 신학교의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순간, 마을 곳곳은 바삐 움직이는 어린 학생들과 신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문법학도와 수사학도로 구성된 하급생, 철학도와 신학도로 구성된 상급생들이 저마다 옆구리에 교재를 끼고 강의실로 몰려들었다. 아직은 앳된 얼굴의 문법학도들은 나란히 걸어가면서 서로를 밀치기도 하고 날카로운 고음의 목소리로 욕설을 주고받았다.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한 옷차림인데,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양의 척골 조각이나 가죽피리, 먹다 남은 파이나 이따금씩 조그마한 참새 새끼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교실에서 느닷없이 참새가 짹짹거리는 날이면, 수도사 선생에게 자 혹은 벚나무 가지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에 비해 수사학도들은 조용히 걸어가는 편이었다. 이들의 옷차림은 꽤 단정할 때가 많은데, 얼굴에는 거의 예외 없이 수사학적인 표현처럼 모종의 장식을 하고 있다. 이마 바로 아래에 있어야 할 한쪽 눈이 다른 데 있다거나 입술에 커다란 물집이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표시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테너의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말하고 욕을 한다. 철학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목소리는 한 옥타브 낮다. 이들의 호주머니에는 독한 담배 말고 아무것도 없다. 먹을거리를 따로 챙겨오지 않지만 즉석에서 손에 넣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이들이 내뿜는 파이프 담배와 보드카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 지나가던 노동자가 발길을 멈추고 경찰견처럼 오랫동안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릴 정도다.

란-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비이' 中 고치기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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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page바버라가 그를 이층으로 데려왔을 때 나는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어. 사내가 말하길, 자기가 모시는 매우 고귀한 부인이 지금 임종의 순간에 신부를 뵙고자 한다는 거였어. 나는 곧 가겠노라 대답하고, 병자성사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아래층으로 서둘러 내려갔네. 문밖에선 밤처럼 새카만 말 두 필이 초조히 땅을 박차면서 콧구멍으로 김을 내뿜고 있었지. 사내는 말고삐를 잡아주고 나를 먼저 말에 태운 다음, 다른 말에 올라타서 안장 앞머리에 능숙하게 한 손을 올려놓더군. 그러고는 말 옆구리를 양 무릎으로 지그시 누르고 말고삐를 놓았어. 말들이 쏜살처럼 달리기 시작했네. 내 말의 고삐를 그 사람이 잡고 있어서 말 두 필이 똑같은 속도로 질주했어. 발밑으로 땅이 잿빛 줄무늬처럼 미끄러졌고, 나무의 검은 그림자들은 퇴각하는 군대처럼 멀어졌지. 숲속이 너무 어둡고 쌀쌀해서 미신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듯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 말굽이 돌에 부딪치면서 불꽃이 일었고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불의 꼬리가 길게 늘어졌어. 그 시간에 누군가 우리를 보았다면 몽마(夢魔)에 올라탄 유령들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때때로 길 위로 도깨비불이 날아다녔고 무성한 숲에서 갈가마귀가 오싹하게 울어대는가 하면 간간이 들고양이의 눈알이 번뜩이기도 했어. 갈수록 말이 난폭하게 머리를 치켜들었네. 말 옆구리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콧구멍에서 뿜는 숨소리도 몹시 빠르고 거칠었지. 그러나 말들이 지쳐가는 것을 본 사내는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은 괴상한 고함을 질러 말들을 재촉했고, 광란의 질주는 다시 이어졌네. 마침내 맹렬하던 질주가 끝나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불빛이 비치는 검은 건물이 난데없이 눈앞에 버티고 있더군.

란-테오필 고티에, '죽은 연인' 中 고치기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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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page어느새 마을이 가까워졌어. 해가 저문 지 삼십 분쯤 지나고부터, 약간은 요란스레 산간과 계곡에 메아리치는 교회 종소리가 선량한 사람들에게 하루가 저물었음을 알리고 있었지. 안젤로는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 섰어. 왼쪽은 마을로 가는 길이었어. 골짜기로 향하는 오른쪽의 오솔길은 밤나무들로 드리워져 있었지. 그는 닳아빠진 모자를 벗고 잠시 가만히 서서 서녘으로 빠르게 희미해져가는 바다를 응시했어. 그러다가 익숙한 저녁 기도문을 조용히 읊조리듯 입술을 달싹였지.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머릿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채 다른 것으로 바뀌었고, 곧이어 우렁차게 이름 하나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었어. 크리스티나!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의 의지는 순식간에 허물어졌어. 현실은 사라졌고 다시금 꿈에 사로잡힌 그는 몽유병자처럼 민첩하고도 확신에 차서 밑으로 밑으로, 어둠이 모여드는 가파른 길을 내려갔어. 그 곁에서 함께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크리스티나가 귓가에 기이하고도 달콤한 말을 속삭였지. 그가 깨어 있었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말이었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생 처음 들어보는 가장 경이로운 언어였지. 그녀는 그에게 키스했지만 입술에 한 것은 아니었어. 그는 자신의 하얀 목에서 그녀의 날카로운 키스를 느꼈고, 그녀의 입술이 빨갛다는 것을 알았지.

란-프랜시스 매리언 크로퍼드, '피는 내 생명' 中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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