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모임에 가서 받은 책. 김성효 장학사님을 직접 뵙고 옴.
교직 내의 남성주도적인 문화라든가, 여교사로서만 겪게 되는 엄마-교사-나 로서의 정체성을 다루는 일, 성장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 기타 등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간 멘토링책의 저자로만 알다가 뵌 것은 처음이었는데 부지런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교직생활에서의 이런저런 상처가 많았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떻든간에, 성공보다 성장을 택하고,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는 시간이었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내 중심을 제대로 세우고 다듬어 나가면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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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 대한 극찬은 익히 들어왔고. 여차저차하여 아무튼 손에 넣었긴 했는데. 안 읽어지네. 다 넷플릭스 때문이다...-_-
스트레인지띵스, 그레이스, 퍼니셔, 마인드헌터..보다보니 책을 잡을 새가 없군.

세계종말문학걸작선. 이었나.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SF단편선이 있는데, 거기 "소년과 개"라는 굉장히 강렬한 단편을 읽은 적이 있더랬다. 두고두고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원작자라고 하네. 할란 엘리슨은 본인이 터미네이터 원저자라고 주장했다고도. 이래저래 뒤져보니 굉장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더라.
아무튼. 두 번째 단편 읽다가 놓은 뒤 진전이 없다. 확 몰입할만한 단편이 초입에 없었던 것도 있지만, 짬 날 때마다 요 시리즈가 넷플릭스에게 지고 있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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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세 권을 전부 갖추었다. 시리즈의 2,3권까지 읽고 1권을 남겨둔 상태.
예상했던 것만큼, 인터넷 리뷰들이 극찬하는 만큼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마 한국팬들 대개는 수십년 전에 티비 시리즈나 영화같은, 다른 계기로 알게 된 작가가 아닐까 싶은데. 단편선으로 처음 접한 입장에서는 서술 방식이나 전개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이라 그런가.

묘사 방식이 상당히 독특하다고 느꼈다. 개인적이고 적나라하고 조금은 악에 받쳐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신성모독적인 단편이 몇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몇몇이 그랬다. 내게는 호감으로 작용했다.
디스토피아물들이 대부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몇 꼽자면.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자신을 개발한 인간들을 증오하는 AI에 의해 기한 없는, 다양한 지옥을 진행형으로 경험하는 이야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천국의 비인간성에 대한 색다른 우화랄까.
"하지만 사람들이 왔다면, 그들은 지옥이 그들과 함께했음을, 천국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음을, 그리고 모든 광기가 흘러나온 중앙이 그곳에 있었음을, 그래서 한때 그 중앙이 평화로웠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바실리스크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고문에 의해 기밀을 누설하고 돌아온 상병이야기. 장애와 PTSD에 시달리지만 국가의 반역자로 몰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그리고 그에게 씌인 사악한 신 마르스.
-매 맞는 개가 낑낑대는 소리
뉴욕에서 실제로 일어난, 방관자들에 둘러싸여 한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단편. 도시에서의 비인간적인 삶과 만연한 범죄상을 겪으며 떨던 인간들이 자연스레 안식을 찾아 검은 미사에 동참하게 된다는, 뒤틀린 상상.
-사이영역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아무도 모르지. 그러니 이런 상상 역시 가능하겠지.
안락사당한 영혼을 수집하여 다른 행성의 다른 생물체에게 주입하는 프리랜서가 있고, 그에 의해 안식은 커녕 다른 세계, 다른 생물체의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된 한 사람. 그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새로운 곳, 새로운 육체로 여러 번 보내져 기대되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지만, 종교와 신성의 탈을 쓴 규칙들과 음모들을 모두 경계하고, 휘둘리지 않으며 멋대로 죽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도록 강요받고, 또 멋대로 죽는다. 이 과정을 무수히 거치며 그는 점점 모든 생물체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태초의 신성과 가까워지고, 마침내 제멋대로인 골칫덩이 영혼의 존재를 알아차린 프리랜서의 앞에서 각성하여, 신으로서 응당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 창조된 것들의 결말을 불러온다. 모든 것의 끝.
신을 핑계로 내세운 부산하디 부산한 온갖 서열다툼, 거기 휘둘리다못해 지칠대로 지친 피로를 마침내 끝맺는 종말, 이란 느낌.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
육체를 옮겨다니는 괴물과의 사투. 야생종에서의 그 초인이 생각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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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근원 교수의 2018년 새 저서.
교육과정과 교사의 딜레마, 가 부제다.

서근원 교수가 교육현장 속 교사의 입장에서 수업을 이해해 보려고 한 관찰과 탐구기록.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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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엮은 책으로, 41명의 회원들의 짤막한 일상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미혼, 비혼, 기혼 여성 뿐 아니라 20대에서 4,50대 중장년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일상에세이랄까.
일상에서 느끼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이중잣대적인 시선-왜 웃통을 까 제낄 수 없는가, 왜 여자가 담배피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가 등등-에서부터. 혼자 사는 여성의 주거위협,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만연한 성폭력, 피임약 재분류 같이 여성의 몸과 관련된-그러나 정작 여성은 배제된 다양한 이슈들에서의 경험, 동성친구와의 동거와 노후에 대한 생각, 기혼여성의 명절치르기, 자녀 키우기, 해사대학에서의 여성배제, 의사로서의 경험 및 의료생협을 이끌어가는 경험, 여성동료의 장례를 맡아 치른 경험 등등. 다양한 여자들의 일상과 사색을 다루었다. 개중에는 성별이분법적인 사회에 대한 남성 크로스드레서의 고찰이라든가, 여초회사에서 커밍아웃을 시도한 남성 게이의 이야기도 있다. 일시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이의 장애체험기도 있다. 여성민우회는 성소수자와 장애인들의 권익운동과도 궤를 같이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래디컬 측에서는 당장 급한 여성인권 외에 딴 곳에 신경쓴다고, 남성게이들 역시 여성혐오를 내면화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며 쓰까라고 욕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암튼.

연대와 네트워크에 대한 생각은 막연하게 해 왔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꿈꾸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섬과 같은 헐렁한 연대. 다양한 계층,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과의 연대를 꿈꾸고 있다. 수도권이 최적의 장소겠지만, 한동안 지방에서 살아가게 될 거라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찾아서 함께 네트워크를 꾸리고 싶다. 좀 더 자유롭고, 주입된 가치관으로 속박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의미에서, 연대 하고 있는 이들의 주기적인 결과물 같은 이 책이 특출날 것 없지만 좀 훈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생각이 이어지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또 다른 생각과 방향을 낳고, 착착 결과를 쌓아가겠지.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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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에 누가 빈부격차는 자연스러운거다, 피케티도 20세기 때보다 최근 부의 집중현상이 완화됐다고 그랬다. 그러면서 어그로 끌고 있길래 빡쳐서 피케티 자료 찾아봄.
모 대학에서 올려둔 pdf 슬라이드 자료.

피케티가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이랑 완전 딴 얘기 딱 중간만 떼어 와가지고 '사실을 적시한 자료 찾아서 얘기해라'운운하면서 어그로 끌고 있더라.
화딱지 나서 장문의 댓글 달아놓고 왔음.
걍 21세기 자본론을 처음부터 읽어봐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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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가 나쁘지 않다...계층간 격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한 세대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계층간 사다리가 여러 곳에 있다면야 빈부격차가 경제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돈이 돈을 버는 것이 노동이 돈을 버는 것을 이미 능가하고 있고, 계층사다리가 있어도 걷어차고는 이미 굳히기가 완료된 현실에서 빈부격차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다? 저는 아니라고 봐요. OECD 지니계수 평균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좀 그런 것이, 지니계수는 상위계층과 중산층, 빈곤층의 비율을 잘 드러내주지 않죠. 전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고 빈곤층이 늘고 있어요. 토마스 피케티가 최근 몇 년 새 괜히 센세이셔널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만 봐도 상위 3명이 소유한 재화가 하위 50%가 소유한 재화와 맞먹는다는 조사가 나왔는가 하면, 우리나라 종합부동산세를 10%가 88% 냈다는 올 1월 뉴스도 있죠. 세계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경제상황을 그만큼 반영했기에 호응이 있는 거예요. 이런 경제적 상황이 정상이라고 보십니까?
https://bit.ly (토마스 피케티 관련, 2017 기사)
https://bit.ly (한국 종합부동산세 관련, 2018 1월 기사)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 중 몇 퍼센트나 상위 10%에 해당하게 될까요?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심해지면 좋을 게 없어요.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범죄가 늘어납니다. 그러다보면 저소득층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늘어나죠. 지금은 재분배를 강조해야 하는 시기이고,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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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시던데 계속 토마스 피케티 21세기 자본론 얘기를 하시네요. 피케티의 주장은 선생님 주장과 완전히 다릅니다. 피케티가 "About Capital in the 21st century" 에서 "Wealth inequality is currently much less extreme than a century ago"라고 한 맥락은 선생님이 말하듯 부의 불평등이 자본주의적 경쟁에 의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완전히 다른 시각입니다.
아래 21세기 자본론 27~41쪽에 해당하는 내용을 읽어보세요.
(https://bit.ly)


당시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유럽 국가들(예로 드신 지표의 스웨덴,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은 1%의 경제인구가 80~90%에 달하는 부를 차지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이 집중현상이 대폭 완화되는데, 피케티는 이렇게 묻습니다.
"Key finding: there was no decline in wealth concentration prior to World War shocks; was it just due to shocks?"
"세계대전 쇼크 이전까지는 부의 집중 감소세가 없었다. 쇼크 때문만이었을까."

(28~31쪽 그래프 참고.)
그래프 보시면 나옵니다. 세계대전 이후 부의 집중현상이 뚝 떨어지는 거. 그리고 최근 들어 슬금슬금 고개를 들며 하락이 완화되어가죠.

아무튼. 계속해서.
Q.: Apart from shocks, what forces determine the long-run level of wealth concentration?
"쇼크와는 별개로, 어떤 힘들이 장기적 부의 집중 수준을 결정했나?"
•A.: In any dynamic, multiplicative wealth accumulation model with random individual shocks (tastes, demographic,returns, wages,..), the steady-state level of wealth concentration is an increasing function of r - g
(with r = net-of-tax rate of return and g = growth rate)
"동적으로,임의의 개별적 쇼크들(취향,인구통계학적, 수익,임금,... ),부의 집중의 정상상태 수준과 함께하는 곱셈의 부의 축적 모델은 r-g의 함수의 증가다." (r = 수익에 대한 총 세율, g = 성장률- 역자 주)


(여기부터는 33쪽 r-g그래프 참고. 보면 g(세금내기 전 자본의 수익)는 거의 유지인데 세계성장률인 r은 뚝 떨어지죠. 이 갭이 문제예요. 근데 피케티는 이 갭이 더 커질거라 예측. 34쪽에서는 "자본성장률은 언제나 세계성장률보다 높았고, 전쟁후 떨어졌다가 점차 회복해서 다시 능가할 것"이라고 하고 있어요.)
•With growth slowdown and rising tax competition to attract capital, r - g might well rise in the 21c → back to 19c levels
"성장이 둔화되고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금깎아주기 경쟁을 함에 따라, r-g는 21세기에 잘 상승한다.→ 19세기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Future values of r also depend on technology (σ>1?)
"r의 미래가치는 기술에 달려있다.(σ>1?)" 기술로 얼마나 세계성장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까요?

(37쪽 빌리오네어 상승률 보십쇼.)
• Under plausible assumptions, wealth concentration might reach or surpass 19c record levels: see global wealth rankings
"그럴듯한 가정하에, 부의 집중은 기록된 19세기 수준에 도달하거나 능가할 것이다: 세계적 부자 순위를 보라."


결국 피케티는 선생님이 중간에 떼어 온 근거자료에서 더 나아가서, "전쟁에 의해 불가피하게 완화된" 부의 집중현상이, 현대에 와서 점점 다시 심화되어서 세계대전 이전으로 돌아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40쪽에 나온 피케티의 결론 보세요.
"Between 1987 and 2013, the highest global wealth fractiles have grown at 6%-7% per year, vs. 2.1% for average world wealth and 1.4% for average world income. All growth rates are net of inflation"
1987~2013에 이르기까지, 최상위 세계 부는 6~7% 성장했으나 세계성장률은 그에 비치지 못하는 1%였다. 이 사이에 일어난 모든 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이었을 뿐이라고.

결론은.
빈부격차 자체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노동하고 근로하면서, 그렇게 생산된 부를 최대한 공정하게 나누어야 하는 것은 맞지 않겠습니까? 이걸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지는 맙시다.
지니계수가 세계전쟁 전과 비교해서 나아졌는지는 몰라도. 거기 만족해서야 되겠습니까. 근로자들이 10시간 이상 몸과 머리를 써서 일하는 것과, 기업체의 수장이 비전을 가지고 기업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 그 사이에 그렇게 천문학적인 차이의 가치차이가 있는 겁니까. 거기부터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기업을 이끌어가는 비전은 훨씬 소중한 거니까 그건 당연하다고 하시려나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게을러서 가난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최저입금보다 못한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습니다.

빈부격차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치고, 그것을 최대한 줄여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근로자들의 의욕도 늘고, 생산성도 높아지고, 뭣보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줄어들지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고르게 양질의 교육을 받고 건강한 세대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요. 우리 교육자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이 가능한 한 그리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아닙니까?


문제는 기울어진 시스템입니다. 정당하게 돈 벌어서 부자되는 거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정당하게 돈을 법니까? 정당하게 벌었으면, 정당하게 분배합니까?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혼자 당연한거라고, 현재의 빈부격차는 나쁜 거 아니라고 합니다. 피케티 근거 중에 전쟁 이후의 데이터 부분만 딱 잘라와서, 나아져 가고 있다고 짜깁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부분 고소득층의 꼭대기에 앉아있지 않아요. 고소득층은 날로 얇아질거고, 최하위층에 속할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 중 몇이나 빈곤에 시달리게 될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경제성장기에 정부의 푸쉬와 특혜를 받아가며 제대로 된 분배 없이 돈을 벌어들인 자본가들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판을 짜 놓고 제대로 분배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문제가 됩니다. 그 과정을 당연하다고 보신다면, 현재의 빈부격차도 문제가 없는 거겠지요.
그들의 공장 돌려가며 노동법 얼마나 지켰습니까. 16시간 넘게 굴리면서 휴식도 못 쓰게 하고 근로자들 몸을 망가뜨려가며 성장해서는, 그들에게 얼마나 월급을 제대로 줬답니까. 최근에도, 안전장치 하나 제대로 안 갖춰두고 적당히 굴려가며 혹사시키고 벌어들인 돈으로, 소득신고 제대로 안 하고 탈세하고 조세피난처에 숨겨놓는 기업가들이 제대로 된 겁니까? 그들이 80% 이상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들은 됐다고 쳐도, 자녀들에게까지 부가 증여되는 과정은 공정한 겁니까.
워킹푸어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하는데도 박봉을 받고, 어떤 이는 대대로 증여받은 돈으로 별 노동 없이 호의호식하지요. 이건 불공평한겁니다. 대기업 자녀들이 어떤 또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를 실행할만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치열한 검증을 거쳐서 수장으로 추대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런데도 윗자리에 앉아서 기업체를 좌우하면서 수천명의 일자리를 결정지을 판단을 하곤 합니다.

노동이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게끔 시스템이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맞춰져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일반인들 월급 수준 보셨어요? 10년 전이랑 크게 차이 없죠. 그나마도 우리나라 세율 재분배 등 지수를 보면, 세금을 통한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보시죠. OECD 조사 결과, 한국이 세금을 통한 소득재분배 31위라는 기사입니다.
https://bit.ly

주식이나 채권 이야기 하셨는데, 주식, 채권, 부동산 거래 등의 투자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에 대한 세율도 높여야 한다는 논의는 예전부터 있어왔어요. 저도 거기 매우 동의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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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으로 빌려읽음. 마이너스 금리가 나오게 된 경제사의 흐름과. 마이너스 금리가 초래하게 될 미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줌. 시물레이션을 보는 듯한 스토리텔링. 쉽게 풀어 쓴 책인데 두어 번 더 읽어야 이해가 착 갈 듯;
경제불황 속에서 투자와 소비를 늘리기 위한 방책으로서 마이너스 금리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실제로 도입중인 유럽과 일본의 상황은 어떤지 등등을 짚고있고.
앞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한국에도 도입될지 어떨지는 몰라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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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네뷸러 등 SF계의 다양한 상들을 한꺼번에 획득한 단편모음집.
'엔더의 게임' 작가로 유명한 오슨 스콧 카드가 제안한, 유토피아에 대한 단편집에 참여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특출나다고 할 만한 작품. 정작 해당 단편 모음집은 발간된 적이 없지만.

오슨 스콧 카드는 유토피아에 대한 작품을 제안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Europe+Utopia->Eutopia, 즉 유럽인들에 의해 구성된 근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유토피아를 전제로 하며, 작품은 그곳 거주자의 시각으로 쓰여야 한다. 작품 내의 유토피아 거주자들은 언제고 그 유토피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헤이븐'-유럽인들이 운영하는 우주왕복선 센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원래의 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다, 는 것이 그것.

'키리냐가'는 마이크 레스닉이 아프리카 문명에 심취해 있을 때 쓴 옴니버스 단편인데, 독특하게도 케냐의 '키쿠유'족 노인 '코리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키쿠유족이 속해 있던 동아프리카는 19세기 영국의 동아프리카 회사가 처음 당도한 이래, 끝없는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문호를 열었다. 식민지화되어 착취당하는 과정에서 키쿠유를 비롯한 많은 부족의 문화가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멸시받으며 소멸당했고, 부족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빼앗긴 사람들은 유럽인들의 편의에 맞게 '케냐인'으로서 뭉뚱그려져 살아왔다. 24세기가 된 현재, 오랜 자원 착취와 부패로 인한 환경오염이 케냐 전체를 뒤덮고 있고, 유럽의 것을 본딴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사방에 들어 차 초원을 뛰놀던 거의 모든 동물들은 멸종된 상태이다. 공원에서야 간신히 새 같은 작은 동물들을 볼 수 있을 따름.

코리바는 젊은 시절, 예일을 위시한 서구의 명문대학들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한 바 있는 지식인이지만, 유럽인들에 동화되지 않고 키쿠유족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그는 수 세기 동안 침투해 들어온 유럽인들의 법과 정치, 사상과 문화적/과학적 산물들을 현재의 삶에서 모두 배제하고, 오래 전 키쿠유족들이 살았던 방식 그대로를 고스란히 재현하며 키쿠유족의 진정한 신,'응가이'의 뜻에 따라 살아가길 열망한다.

유럽인들과의 협상 끝에, 코리바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주하기 적합한 소행성을 하나 획득하는데, 그는 그곳에 키쿠유족이 살았으나 현재는 잊혀진 '빛의 산', '키리냐가'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부족의 제사장이자 마법사인 '문두무구'가 되어, 키리냐가로 이주하여 부족민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삶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로 한다. 오랜 시간 연구한 결과를 녹여내어 우화를 통한 가르침을 주는 것도 그 일환이지만, 소행성의 궤도를 수정하는 유럽인들과 음성인식 컴퓨터를 통해 소통해서 햇빛과 비를 포함한 다양한 기상현상을 '신의 이름으로' 관장하는 것 또한 그의 일이다. 염소의 배를 갈라 내장을 보거나 뼈를 던져 앞일을 점치고는, 길하면 축복하며 '비'를 내리고, 부족민들이 '응가이'의 뜻에 반해 엇나가려할 때마다 '가뭄'을 벌로 내리는 식이다.

코리바의 요청에 따라 키리나갸 소행성의 기상을 실제로 조종하는 유럽인들은 키리냐가의 운영 방식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간섭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이를테면 코리바가 '발부터 나왔으므로 마귀가 붙었다'는 이유로 갓난아기를 키쿠유의 방식에 따라 죽였을 때, '쌍둥이 중 하나는 마귀이므로' 역시 갓난아기를 죽일 때. 유럽인들은 찾아와서 '인권'을 들먹이며 코리바의 행동을 비판하지만, 늙고 꼬장꼬장한 코리바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유럽의 방식과 키쿠유의 방식은 혼재되어서는 안 되니까. 조금이라도 유럽의 것이 섞여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은 엉망이 되고 결국 지구의 케냐와 다를 바 없는 퇴락의 길을 걸을테니까.

외부의 간섭은 결국 코리바의 고집으로 막아내었다. 유럽인들로부터 불간섭특권을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도 문제 없어 보인다.그렇다면, 키쿠유족의 유토피아는 진정 도래할 수 있는 걸까.

코리바가 원하는 유토피아는 끊임없이 위협받는데, 이야기는 이 다양한 요소들에 따라 옴니버스로 엮여 있다.

-코리바 앞에 천재적인 아이가 하나 등장한다.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는 코리바에게서 글을 포함하여 코리바가 부족의 우두머리로서 기능하게 한 바탕, 유럽인들의 지식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하지만, 코리바는 아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배움을 차단해 버린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는 낙담한 나머지, 자살을 택한다.

-건기로 인해 초식동물들의 수가 줄자, 먹이를 구하지 못한 하이에나들이 아이들을 습격한다. 부족장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구로부터 사냥꾼을 들이자는 주장을 하고, 코리바는 반대하지만 결국 다수결에 따라 사냥꾼이 도착한다. 거만하고 건장한 마사이족 사냥꾼은 사람을 공격하는 하이에나를 손쉽게 물리치지만 이내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행패를 부리고, 그가 즐기는 문물과 유흥거리로 마을 젊은이들을 물들여간다. 마을 사람들이 사냥꾼의 행패에 질려 그를 쫓아달라하자, 코리바는 꾀를 내어 그를 패배시키고 떠나게 만든다.

-지구로부터 새로운 부부가 도착하여 함께 살고 싶다고 하자, 코리바는 최대한 키쿠유족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그러나 마을 여자들은 새로 도착한 부부 중 아내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녀가 남자들과 대등하게 행동하려 한다는 이유로-'마나모우키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법인데!'', 지식을 갖추고 다른 이들보다 작물을 더 잘 경작한다는 이유로-'마녀 아니야?', 집에 꽃을 들여 장식하는 사치를 부린다는 이유로-작물경작에나 힘쓸 일이지 무슨 사치를!', 부족장의 아내들보다 훨씬 아름다운 옷을 만든다는 이유로-'부족장의 아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을 빼앗는다!', 지나치게 젊어보인다는 이유로 그녀는 비난의 화살을 맞는다. 모든 면에서 새로 온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맞추고자 노력했지만, 불임인 그녀가 남편이 첩을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았을 때는 코리바도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떠날 밖에는.

-부족장의 늙은 어미가 노인으로서 대접받는 것을 거부하고, '나도 일할 수 있다!'며 가출한 사건.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하던 일을 위임해야 하지만, 노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놓고 싶어하지 않고, 아들의 집에서 나와 문두무구만 거주할 수 있는 언덕으로 옮겨와 살려 한다. 노파를 쫓아내려 하지만 노파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코리바는 화가 난 나머지 '응가이의 뜻에 따라' 수 개월에 걸친 가뭄을 내리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다.

-차기 문두무구로 삼으려고 가르치던 사내 아이, 은데미는 커 가면서 코리바 홀로 정보의 원천을 독점하고 사람들에게 전파하지 않는 데 대해 반감을 갖는다.
문두무구 업무의 핵심이 되는, 음성인식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은데미는 컴퓨터를 통해 역사와 과학을 비롯한 외부 문명을 더 배우고 싶어한다. 외부를 잘 이해해야 진정한 키쿠유를 일궈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굳이 고통에 찬 일상을 개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였다.
코리바는 강하게 반대한다. 키쿠유족의 정체성을 종내는 잃어버릴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둘 사이의 갈등은 조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은데미는 결국 유럽인들이 있는 헤이븐으로 가서, 지구로 향한다.

-마을 사람들도 점점 은데미처럼 변해가기 시작한다. 코리바가 나이들어감에 따라, 코리바와 함께 키쿠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이주했던 1세대 이주민들은 거의 다 죽었다. 새로운 키리냐가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마을사람들은 유럽인들이 지닌 의학적 지식을 보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어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보다 편리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코리바는 이 모든 것에 질색을 하며 새로운 키리나갸 역시 유토피아로서의 빛을 잃고 유럽인들처럼 변해 퇴락할 것이라 여긴다. 좌절한 코리바는 키리나갸를 버리고 지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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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절은 참 지독하기 짝이 없었고보면, 코리바 같은 이들이 있다고 해도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통째로 빼앗기고, 원치 않는 삶을 강요받으며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살 기회를 영영 잃었으니까.

하지만, 과거의 한 정지된 단면에서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그것은 결국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싶다. 더군다나 그 이상향이 한 사람의 독단으로 단정지어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두뇌와 풍부한 지식을 지녔을지라도.
모두가 평등하게 인권을 누리는, 인권이 점점 신장되어 가는 삶, 편리한 삶을 위해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 본연의 것이고, 특정한 이상을 좇는다는 명분으로 그것들을 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군가는 그 속에서 상처받고, 절망하게 된다.

코리바가 정보는 좀 독점하더라도 권위를 좀 내려놓고, 협의를 통해 마을을 이끌었더라면, 마을은 식민지배 전의 키쿠유를 계승하는 데 보다 근접해 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과거의 키쿠유도 그들 내부의 의견 교환을 통해 어떻게든 발전해 갔을테니까. 온전히 그들만을 위해,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담아.
식민지배 하에 있었던 나라에서 이미 살고 있는 나는, 식민지배의 순간을 완전히 덜어내버리고 온전히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게 과거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이미 근방에 고스란히 베끼기 좋은 발전된 문물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숨길 수 있을지, 얼마나 배제할 수 있을지 모르고, 늙은이가 얼마나 독단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결국 결말은 예상한 수순대로. 각자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저마다 다르고, 다른 이들과의 타협 없이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재현해 내고자 한다면.
홀로 고립되는 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

 

애들이 조금 더 머리가 컸더라면 이 책의 일부를 읽고 같이 토론해봐도 재밌었겠는데.

전통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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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대체 행성 아르테미스로 향하는 2,500여 명의 인간들이 냉동되어 있는 우주선 내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들은 우주선을 조종하고 유지하는 업무를 맡은 클론들. 수십~수백 년 묵은 이들 클론들은, 무언가 범죄를 일으켜 사형이나 구금 대신 우주선 행을 택한 이들이었고, 아르테미스까지 임무를 완성하고 나면 사면되는 것이 탑승 조건이었다. 
우주선의 생체데이터는 모두 날아간 상태고, 우주선을 운용하는 AI역시 제기능을 못하는 상태. 다행히도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가까스로 이들의 마인드맵-뇌를 스캔하여 전자상으로 옮긴 데이터-을 따서 새로운 몸으로 재생시켰기에, 다시 살아난 클론들은 누가, 어떻게, 왜 그들을 죽였는지 추리하기 시작한다.


이야기 자체도 스릴있고 재미있지만, 복제인간에 대한 윤리적 이슈, 종교적 이슈 등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괜찮은 책이었다.
클론이 된다면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수명, 재산, 직업, 취미, ..여섯 클론들의 과거를 통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온갖 것들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도-쓸 데 없는 일이긴 하지만 즐거웠고.
클론은 다른 사람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영속인가..하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문제를 소설 속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지, 클론과 마인드맵이라는 뇌 처리 기술이 결합되면서 등장할 수 있는 범죄들로 어떤 것들이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클론 이슈가 가져올 종교적인 혼란-인간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클론 자신이 갖게 될 혼란이나 수용에 대해 가능성이나, 클론이 등장하면서 죽음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과 무게가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가, 그런 것도 다루고 있어서.

아무튼. 사고 실험 한 번 대차게 즐긴 느낌이었음.
클론의 삶은 한 분야에서 혹은 여러 분야에서 기술을 한계 너머로 갈고 닦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혹은 오래도록 그저 방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긴 하지만. 

어차피 나야 인간으로서 제한된 시간을 살 뿐인지라.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다각화된 삶을 살아보려 애써야겠지.
덜 생각하고, 더 행동해야. 좀 더 재밌겠지.
혹은, 간접경험 횟수를 더 늘린다거나-단순한 게임 따위에 매몰되지 말고, 심심할 땐 역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어.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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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박경리 문학관에 들른 후에. 대하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져서 최근 김약국의 딸들부터 해서 토지도 빌려다 읽고 있다. 술술 읽힌다. 다만 평소에 딴데 한눈팔 때가 잦아서 맘 먹고 책을 펼쳐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 문제임. 일단 펴면 재밌는딩.

여러 사람의 삶의 양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보니 한두 주인공에 집중되어 서술되는 소설들과는 또 느낌이 좀 다르다.
시대상이 좀 더 눈에 잘 들어오고. 이런저런 인간군상의 다양성도 눈에 띄고. 온갖 일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생의 고리들이 대단하다 싶고. 삶 자체가 참 고생스럽고 지루하고 버거운 것인데 참아내며 새끼를 길러내 온 옛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상과 자식이 다 뭐고 그렇게들 되뇌던 인간의 도리란게 뭔가..바보같구나 싶어 혀를 차고 싶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특히 옛 시대의 여자들의 삶이란 것이. 왜들 그렇게 매여 살아야 했을꼬 싶고 신분고하 막론하고 노예와 다를 것 없다 싶기도 하고. 갑갑해져오는 구석이 있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찰나의 사랑이나 야망이나 그런 것들이 그 진저리나는 구덩이 속에서 화르륵 불타올랐다 스러지는 걸 보면 또 눈길이 끌리고. 그렇다. 
토지같은 경우는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라. 인물들이 그 시대적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버티다가. 느슨한 신분적 경계를 타고 들떠서 뒤엎기를 시도하다가. 이래저래 스러지고. 뭐 그런 양상들이 또 그럴싸하다.
중독성이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21권까지 쭉 잘 볼 수 있길. 지금 3권 읽고 있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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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 의 단편선. 
도서관 신간 목록에서 발견하고는 표제작만 읽고 빌려왔다.
표제작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추리물로 보자면 별로 미스터리한 면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전개도 예측가능한 것이..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지만. 수상하기 그지없는, 생판 모르는 타인의 호의가 진정한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란 게, 행복하게 느껴지더라. 버석버석한 이야기들 좋아하는데. 아주 가끔 이렇게. 무구한 이야기가 턱.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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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단편들일거라 생각했는데, 읽어가다보니 한 사람을 개연점으로 두고 펼쳐지는 일종의 연작소설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각각의 이야기마다 아직 젊은, 미래가 확정되지 않은 인물들이 품은 꿈.사랑.희망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꿈을 좇는 고달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꿈을 그리는 와중 찾아오는 사랑.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 있는 충만하고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 그런 거. 
단편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가진 꿈, 추구하는 목표의 형태는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작가 특유의 성실한 조사의 흔적이 읽는 인간을 감동시켰다..크어ㅜㅠ. 세세하게 조사한 자료들을 매끄럽게 녹여내는 솜씨도 역시 좋고..
다만..주요 등장인물들-대부분 여성-의 미래가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갈 것이란 식으로 암시되고 얘기가 마무리된 경우가 몇 있었는데..('화목한 가정' 자체가 나쁜 건 결코 아니지만) 그게 작가가 떠올리는. 여자로서의 '이상적인 미래상'은 어떤 건가...하고 조금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일본 드라마들 중에서도 커리어우먼들이 잘 나가다가 자꾸 '결혼'이니 '혼기' 같은 데 자격지심을 갖고 약해지는 모습이 나오곤 해서(주변인물들도 그런 류의 눈치를 꽤 많이 주는 것 같고) 좀 의아한 적이 있었던지라. 한 두번 겪은 후론 그런 묘사들이 아니꼬워도 일본은 그런 식인가..하고 으레 넘어가곤 했지만. 그래도..이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내심 그런 류보다 직업적/사회적인 성취쪽을 암시해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좀 남았다. 등장인물 성별에 상관없이 작가 스스로가 가정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타입이라 그렇게 그리고 싶었던 걸수도 있겠지만. 뭐.. 에이. 미미한 아쉬움은 넘어가기로 하고.

전체적으로 초능력이나 타임슬립같은 설정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큰 요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심령틱한 설정도 있다. 적절히 잘 매만져진 느낌. 
(+ 실은 제목에서도 암시되듯. 이 연작소설들에는 예지능력이 주요 소재이자 각 소설들의 구심점으로 등장한다. 초반의 몇 작품에서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지만. 그럼 그렇지. '미래를 보는 힘'이 존재-'인간의 미래는 정해져있는가', 하는 주제를 결국엔 다루고야 만다. 어쩐지 그 답다. 그가 내린 결론은..너무 성실한 듯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주억이게 하는 그런 거였음..)

다카노 가즈아키는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를 써내려가는 것도 잘 하지만, 따뜻하게 감성을 건드리는 데도 공을 기울이려는 그런 작가인 것 같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작가 지망생처럼. 열의도 있고. 재능도 있고. 민감한 주제에 대해 빡센 자료조사를 기반으로 치밀치밀 차근차근 정공법을 택하는 성실함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작가. 아..좋구나아. 그런 면에서 상당히 대중적인 작가기도 하고. 

고로 이번 단편 연작도 나쁘지 않았다. 13계단이나 그레이브 디거같은 장편들보단 한결 어깨가 가볍고 온기가 더해진, 그런 책이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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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단편 드라마화 되었다고 함.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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