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렸다가 갖다주고, 빌렸다가 갖다주고, 빌렸다가...의 연속이로고. -_-
언젠가는 이것도 사야지. 하지만 일단 다 읽어보고나서.
작 가가 선정한 중단편선. 초기작부터 한창 잘 나가던 때 작품들까지 여럿 실려있다. 작품마다 작가가 쓴 소개글-그 작품을 쓸 당시의 상황이나 심경-언제 어떻게 영감을 받아 집필했고, 누구에게 팔렸고, 무슨 상을 받았고, 동료 작가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고..따위가 시시콜콜하게 씌여있는데 그걸보고 느낀 건 역시 이 냥반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 집에 가는 길에 떠올린 아이디어를 집에 도착하자마자 써내려가서 완성~! 도 있고.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날은 하루 새 세 편씩 써내려가기도 하고.
신화와 문학을 포함한 인문쪽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분야에 대해서도 무수한 책을 읽은. 상당히 열정적인 독서가이고, 다양한 취미를 찾아 즐겼고, 그 경험들 모두를 빨아들여 내면화해서는 번뜩번뜩 자신만의 아이디어대로 섞고 발효해서 뽑아낼 줄 아는 비상한 머리와 재치를 지닌. 대단한 냥반임은 분명한 듯. 처음 만들어낸 기발한 아이디어를 의미있게 구체화하고 멋드러지게 적어내려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새삼 감탄을.
한 달에 한 번은 소설을 한 편 쓴다던가. 상당히 다작하는데도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자주 뽑아내는 아이디어 뱅크형 작가, 배명훈씨가 잠깐 떠올랐음. 그분도 독특한 아이디어를 완성도 높은 이야기 한 편으로 만들어내는 비상한 작가라는 인상이 강한데.
내 빈곤한 상상력과 독서량, 직관적인 것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맹한 머리론 젤라즈니의 소설은 종종 과하게 차려진 만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풍성하고 재기발랄한 인용이나 패러디들, 종종 심도있게 등장하는 철학적인 고찰들도 나오는 족족 슥슥 빨아들일 수 있으면 보다 훨씬 즐겁게 읽을 수 있을텐데. 종종 으음..하고 거듭 읽어야 하는 과부하가 일어나서리.
게으르게 읽느라 절반도 채 못 읽고 도로 갖다줬지만 흥미로운 작품이 많았다.
' 기사가 왔다!'나 '형성하는 자' 등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은 후에 나온 앰버연대기의 설정을 벼려가는 과정을 본 것 같아 흥미로웠고. 설명되지 않은 곁가지에 대한 얘기 같기도 하고, 이게 그렇게 재구현된 건가? 싶기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ShadowJack 은 꽤 뒷부분에 실려 있지만 "그림자 잭"의 프리퀄이라고 해서 앞부분들을 건너뛰고 읽었다.시종일관 나르시시스트적인 잭은 역시 사랑스러웠다.ㅋㅋㅋ 큭큭 웃기도 엄청 웃었고.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잭이 망토를 휘날리며 그림자를 좇아, 그림자들과 함께, 열심히 폴짝 뛰고, 날아내리고, 달려가고 하며 활극을 펼치는 것이, 애니메이션 한 편을 굴리는 느낌이었다. 원작은 일러스트와 함께 발간되었다는데 어지럽게 공중을 선회하며 잭을 잡아채려는 가고일들이나 사방으로 달려나가는 그림자 분신 샷 따위를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진다.
나머지는 다음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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