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불거지는 요즘, 덕분에 읽을 거리가 참 많아졌다고 느낌. 우에노 치즈코 이야기는 자주 접했고,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이라 읽어보겠다고 샀다.
'결혼제국'의 이야기와 많이 겹치는 내용도 있고 한데, 좀 논문스럽게 딱딱한 면도 있고 내 입장에서는 너무 깊이 들어간다 싶은 면도 있어서(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은데..일본신화 속의 여성혐오적 텍스트라..)적당히 흘려 읽을 부분은 흘려 읽음. 기억나는 몇 가지만 거칠게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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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의 갈등에 대해 조망한 부분.
이건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얘기기도 한데. 아무튼 인상적. 시대가 변하고 여성 역시 사회진출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어머니들은 딸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한다는 것. 아들처럼 출세해서 좋은 직업-아직 유리천장도 있으니 조직적인 회사보다는 고소득 자영업직을 구하기를 바라는 한편, 딸로서 좋은 혼처로 시집가서 여성으로서의 가치증명(어쩌면 어머니의 위신을 세워주는 제2의 인생?)을 해 주기도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후 역시 며느리보다 딸이 돌봐주기를 더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아들보다는 딸을 더 원한다는 말들이 별로 달갑지 않은 게 어렴풋이 이런 것들을 감지하고 있던 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음.. 아무튼 태어날 때부터 선별당하던 것 보다 나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딸들이 요구받는 것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은 맞는 듯. 주부가 요구받는 것들이 많아진 것과 마찬가지. 남성과 다름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로서나..돌봄을 행하는 여성으로서 동시에 기대를 짊어지게 된 것.
남성의 존재증명과 연애
예로부터, 진정한 남성으로서 남성공동체에게 인정받는 것이 남성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인정을 받기 위한 자격요건 중 하나가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었고. 여성을 소유하는 것, 여성과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것이 그래서 남성들에게는 중요해진다. 예전에는 남성공동체의 위계질서를 지키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던 여성이, 혹은 중매를 통해 어떻게든 얻어지던 여성이 구하기 어려워지고,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측면이 생기면서 아직 세태에 적응하지 못한 남성들이 '경제적으로나 외모적으로 딸려서 연애시장에서 인기 없는 남성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혹은 '여성들이 따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기적이다'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일본에서도 자주 있었다.(최근에 이슈가 된 책이기는 하지만, 십수년 전에 씌어진 책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외모적으로 딸리는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이슈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장애가 있는 남성의 성욕 해소에 대해서는 이슈가 되지만 반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도 않았고 말이다.(그 경우 성적인 권력관계나 힘의 차이가 너무 또렷해서 성사되기도 힘들겠고-되려 여성장애인의 가족들이 불행한 사태에 대비해 불임수술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니 말 다했지..)
여성 역시 오랜 세월동안, 결혼을 통해 남성으로부터 선택받고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증명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남성의 선택을 놓고 경쟁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때문에 여학교 내 문화와 같은 여성들간의 문화는 양성이 섞여 있는 곳의 문화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은 또 달라지는 추세가 있었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남성들은 소유하기 적합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만만한 여성을 더 선호하고, 여성들은 빼어난 외모보다는 수더분한 외모의, 털털하고 자조적인 농담을 하는 여성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던 것이 사실.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90년대 화제가 되었던 사건. 당대 처음으로 여성 역시 앨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 가능해진 세대. 그녀는 왜 억대 연봉을 받는 조직의 핵심, 엘리트였음에도 밤거리를 쏘다니며 헐값에 몸을 팔았는가. 그에 대해 여러 르포와 소설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우에노치즈코는 사건을 뒤집어 생각해보려 한다. 엘리트코스를 처음 뚫은 여성에 대한 세간의 어마어마한 기대와 거기서 오는 책임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들의 자리 중 '여성에게 허락된 자리'만을 얻을 수 있었던, 일반적은 OL과 다르다고 분류되었으나 실제로 모호한 대접을 받던, 결혼시장에서는 꺼려지는 존재가 되었던 여자. 저자는 그녀가 남성들이 꾸려놓은 여성혐오적인 사회의 스트레스로 인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느린 자살과도 같은 상태였으며, 매춘을 통해 남성들에게 복수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헐값, 또는 무료로 남성들을 받아들이고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메모한 것은 것은 그녀 역시 그 남성들의 가치를 그렇게 매겼다는 것. 여성을 인위적으로 자신보다 낮추지 않으면/혹은 자신의 것으로 하나 이상 소유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얻지도, 욕구해소를 보장받을 수도 없는 미약한 존재인 남성들의 모순을 자해의 방식으로 비웃은 것이라는 것이다.
(앞장에서 원조교제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다루고 있었다. 남성들이 너무도 원하기에 값이 뛴 어린 육체를, 스스로 매춘이라는 방식으로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자해의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세상에 복수하는 방식을 취하는 여자아이들이 많다고)
오랜 여성혐오의 역사
일본 신화에서, 이런저런 일본문학작품들에서, 춘화 우키요에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천황가의 대 잇기 풍습에서, 드라마 속 대사에서 등등. 남성중심적인 공동체 구성의 역사, 성녀-어머니-부인(가부장제속의 여성)거나 창녀-미혼여성-애인(가부장제밖의 여성)로서 갈라지며 끊임없이 정형화된 객체로서만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끊임없이 엿볼 수 있고..최근에도 '나는 아니니까' 라며 일부의 여성들을 타킷화 하여 악녀로 그려내고 전락시키는 류의 여성작가 문학작품이 화제가 되는 등 남성에 의한, 여성 자신에 의한 여성혐오는 뿌리 깊은 역사를 다져온 바 있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고, 그를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이 저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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