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검은 상자.
감응상자. 손잡이를 잡으면 월버 머서라는 인물과 공간을 뛰어넘어 감응할 수 있다. 영적 교감을 나누고 죽음을 앞둔 그의 고통을 생생히 느낄수있다. 한때 파라코딘에 빠졌던 대도시 사람들 사이에선 마약이 아닌 이 감응상자가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하고. 국방부에서는 머서의 존재와 감응상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없애려는 시도를 한다. 지구인이 아닌 듯한 머서와 감응상자회사 관계자들. 머서와 접촉하고 혼자가 아니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막으려는 정부. 방해에도 불구하고 더시 머서와 교감하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는 텔레파스 레이와 그의 일본인 연인, 선불교 학자 조앤.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서민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어느 정부나 똑같은 모양. 고통을 나누고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으려는 이들을 외계인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디나 있게 마련이고. 그 와중에서도 그런 시도를 계속해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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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

영상 2015. 2. 14. 00:08
원래는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서울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있었음. 걍 내려가는 걸 내일로 미루고 다녀오는 길에 트라이브 상영관을 찾았다. 마침 씨네코드 선재에서 하는 게 있길래 찾아갔다. 도중에 좀 우왕좌왕. 그래도 여차저차 어떻게든 찾아갔다.
수화로만 이루어진 영화라기에 호기심이 컸다. 음악도 하나 나오지 않는,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사용하지 않는, 평행세계의 동떨어진 종족 이야기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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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새로운 기술학교에 전학한 철부지 소년이 학교 내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갱 활동에 몸담게 되고,와중에 첫 섹스와 애착을 경험한다. 갱단 아래서 섹스를 팔아 돈을 버는 소녀에 대한 소유욕에 불타오르지만, 갱에서는 그녀를 꾀어 이탈리아로 보낼 생각이고, 소녀는 그를 그저 돈 대오는 호구 정도로 봐 줄 뿐. 뒤늦게 소녀가 떠날 거란 걸 알고는 막으려 하지만, 갱에서는 그를 처참하게 후드려 패고 좌절시킨다. 이후 소년은 갱단에 대해 막나가는 복수를 한다.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은 오로지 화면만 보며 유추해 가는 수밖에 없어서, 소소한 부분은 틀렸을지 몰라도. 얼추 저런 내용인 건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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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상황은 잘 모르고, 사람들이 청력을 모두 상실한 듯한 세계이기에 현실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은 훅 하고 날것의 느낌이 난다. 소리는 작거나 없지만 온갖 표정과 몸짓들이. 당연하다는 듯 절망과 폭력에 찌든 험악한 일상과 기복어린 감정들을 파닥파닥 물고기가 튀어 오르듯 표현해낸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 소소한 기술을 배우며 학교를 다니지만 그것들은 그들에게 전혀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소녀들은 그저 화물트럭운전수들에게 피임도 않고 몸을 팔며 돈을 모으고, 갱단소년들은 도둑질하고, 삥 뜯고, 뒤치기하고, 소녀들을 이용한다. 어른들 역시 그들의 사업에 수저를 얹는다. 더러운 현실에 순응하고 더러운 놈이 되거나. 더러운 놈들 틈바구니에서 적당히 이용당해주면서 돈을 벌어선 타국으로 떠나거나. 그들은 그 정도 선택지 밖에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랑놀음은 그래서 적절치 않다.

소소한 일상의 작은 소리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흐르는 가운데, 몸짓들만이 점점 파들거리며 격렬해져가고, 그러자 가끔 가쁜 숨소리에 고통섞인 울음이 뒤섞이고, 그것들은 머리통이 깨져나가는 처참한 소음으로 확대되고서야 조용히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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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아주 기묘했다. 아무도 옆사람이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을 듣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가 하나씩 처참하게 머리통이 깨져나가는데, 그 소리가 영화 내내 울리던 어떤 소리보다도 커서 사람들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거친 분노와 증오를 아주 선명하게 각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별의 별 영상물을 보아오면서 비위를 길러왔지만 난생 처음으로 눈을 감았더랬다. 하지만 소리는 여전히 생생했다.
현실과 사랑 모두에 진저리나고 지쳐버린 소년이 기숙사로 향하는 철문을 닫고나자 영화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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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시점에서 인류의 언어를 하나도 모르는 외계인이 우릴 바라보면 이런 느낌일까. 인간사회의 집약판같다는 느낌도 얼핏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들에 쉽게 잠식당하고,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추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 작게 훅훅거리고 쉿쉿 거리며 서로서로 위협하고 감정을 강요하고 살아남으려 버둥거리고 부숴버리는. 인간종. 그래서 트라이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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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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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보고왔다.

영상 2015. 2. 12. 00:23
용산 롯데시네마에 예약해둔지라 미적미적 기어나와서 다녀왔음. 분명 네이년지도앱에서 버스노선을 찾아뒀는데 아무리봐도 정류장에선 노선번호를 찾을 수가 없어 택시를 잡아탔더랬다. 퇴근시간이라 무지막지하게 막혀서 영화값만큼 택시비로 지불하고도 늦었음.
해리와 애그시의 만남 이전 스토리를 못 챙기고 날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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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인물들의 코드네임이 아서왕 신화의 인물들로 되어 있어 흥미로웠음. 관련 신화를 차용한 젤라즈니 소설이며 아발론의 안개 소설 드라마며 아서왕을 다룬 역사드라마도 몇 편인가 보았을 정도로 좋아하는 이야기라서.
해리의 코드네임 갤러해드는 원탁의 기사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청년이자 빼어난 기사였다지. 랜슬롯의 아들. 원탁의 자리 중 저주가 깃든 위험한 자리는 오직 그를 위해 남겨져 있었다 했다.
코드네임 멀린역 배우는 아서왕을 다룬, 게다가 에바 그린이 모게인으로 나온 다른 드라마 시리즈에서도 멀린 역으로 나온 적이 있는 배우..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조셉 파인즈.. 뭔가 이미지가 닮아서 착각을...아니. 별로 안 닮았는데..;; 거기서 멀린은 마키아벨리적인 킹메이커로서 멋모르는 청년을 끌어다가 신화를 직접 제조해나가는 인물로 그려졌었다. 아무튼..철부지 색정광 아서보다도 멀린과 모게인의 포스가 대단했는데 몇 편 못 가 캔슬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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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즐거운 영화였다. 늘씬하고 날렵한 인물들이 몸에 딱 맞는 단정한 수트를 입고 화기와 암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가차없이 쏘고. 베고. 찌르고. 부순다! 멋졌다!ㅋㅋㅋ
악역 곁의 비서이자 보디가드로 따라붙었던 가젤언니도 무쟈게 멋졌음. 킬힐액션이 끝내줬음. 슝슝! 단면조차 깔끔하게 뭐든 베어버리는 모양새가 정말 멋졌음.. 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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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고착화가 심한데다 왕족이 있고 귀족들이 상원의원하고 있는 영국. 언어로 출신이며 계층 구분이 되는 곳 답게 에그시네 양아치들과 해리의 말투가 다른 것도 인상적이었음. 코크니와 상류층의 어투..해리의 뒤를 이어 멋지게 맞춤정장으로 빼입은 에그시가 말투도 싹 바뀌고 해리처럼 술에 대한 까다로운 취향마저 연기해내는 게 암튼. 인상적임.

영국은 멀찍이서 문화상품들 핥기엔 재밌는데 직접 들어가 살라면 절대 못 견딜 것 같단 생각이 새삼. 아무리 특색있고 멋져도 난 왕족이랑 귀족이 세습된 부를 가지고 눈에 띄게 영향력을 발휘하는데다..계급적인 요소 강하게 풍기는 나라에선 못 살 것 같고..지성인스러움 물씬 풍기는 오이씨도 은연중에 인종차별적인 단어 뱉고 사과하는 동네인데..차별 어련하겠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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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씬이 3D 게임스러웠달까. 타임래그와 함께 주변을 좀 더 보여주면서 다시 빠르게 진행되는 식인데 그만큼 행동에 리듬을 주고 타격감이 두드러져서 멋지구리.
그런 액션 씬들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해리-갤러해드가 초반의 술집 양아치들 손봐주는 장면, 그리고 미국 극우 교회에서 갤러해드가 정줄 놓고 몰살하는 장면. 특히나 교회씬은 꽤 긴데, 무척 잔인한데도 사이다를 연상시키는 씬.
몰지각과 차별주의로 완전무장하곤 합리화시키는, 공격적인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마구 휘몰아치는 장면. 정줄 놓기 전에 날린 대사도 위트 넘쳤음.
이걸 원 테이크로 찍었다니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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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퍼스 캐릭터가 영화 내내 등장하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활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끝나고 나서도 그 액션씬들이 계속 머릿속 에서 플레이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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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단정하고 날렵한 멋드러진 외견과 제대로 절도있는 몸가짐을 갖춘 신사가 될 수록, 누구보다도 완벽한 암기와 가공할 체술을 갖춘 스파이가 된다는 발상이 참 재밌는데다가..
그에 걸맞는 때깔과 액션을 제대로 갖춘 영화였음.

인류와 바이러스를 동급으로 놓은 악역의 발상도, 여기저기서 종종 보던 얘기들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었지. 설득력 있는 악역이랄까.
뭐 우리나라야 애 안낳는다니 국가가 사라지니 호들갑이지만, 세계 전체적으로는 인구증가가 계속되고 있고.
자손을 많이 낳는 경우는 통계적으로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한 숙주의 열병이란 말도 얼추..공감이 가는 바라..
이런 냉소적인 시각에서 좀 더 훼까닥. 하면..하등한 인간들을 죽이니 어쩌니 하는 저런 미친놈이 나올 수도 있겠군. 싶은 거임.

해서. 신경신호에 정줄놓은 사람들이 마구 싸워대는 장면도. 돈과 권력과 오만함을 두루 갖춘 인간들 머리통이 펑.펑. 예쁘게 터지는 쇼도 둘 다 적당히 거리감을 두고 흥미롭게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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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어로도 그렇고. 이 작품도 DVD나오면 사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음.

요즘 괜찮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듯. 은근 화제가 되고 있는 트라이브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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