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

일지/일지 2015 2015. 9. 17. 23:06

J는 평소 눈물이 많은 아이다. 수업시간에 초콜릿을 소재로 영어발문을 유도하였다.

Can I~? 표현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다. 입을 잘 떼지 못하는 아이에게 연습할 시간을 더 부여하였고 그 뒤 모두가 한 마디 씩 말한 것으로 알고는 넘어갔다. 그런데 녀석에게 다시 발문 기회를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 말해줘서 녀석이 우는 이유를 알았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울기만 하니 뭔 일인가 싶었다. 

샘이 그러니까 울잖아요! 대꾸하는 아이들에게 좀 기분이 상했고. 이유를 물으러 접근한 나를 불쾌하다는 듯이 무시하고 눈물을 흘리며 연필을 집어던지는 녀석에게 속이 상했다. 따로 불러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대화를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왜 우는지 이유부터 차근차근 물어볼 참이었고, 들을 준비를 했지만.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내가 건넨 휴지를 찢으며 앉아있었다. 분노의 표현. 화가 났구나. 상한 속을 그렇게 달래고 있구나. 아무 말이 없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연필을 던지고 등을 돌릴 정도로, 그 건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토라져 앉아있을 정도로 이게..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내 물음에 침묵하고 휴지만 찢고 앉아 있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기에 그냥 내가 말을 시작했다.

네가 내게 선생님, 저를 빼놓으셨어요. 한 마디 했더라면 그래? 미안하구나, 하고 답했을 것이고, 기회는 다시 돌아갔을 것이고, 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볼 때 너는 평소 화를 울음으로 터뜨려버리는 경향이 있다-과거의 일을 끄집어 낸 것은 잘못인가? 그런데 이런 경향을 언젠가 짚어주어야 겠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면서 말을 꺼냈다. 그런 경우 네게 피해를 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또 운다'고 얘기하는 것을 간혹 듣는다. 네 마음을 표현하고 토로해야 사과를 하든지 할 것 아니냐. 네 서운함은 언어로 표현해야 확인할 수 있다..

아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되려 나만 주절거린 꼴이 되었다. 나는. 그냥. 상한 기분을 들어주고 싶었고 속을 달래주며 앞으로는 눈물을 참고 자제해보자고 약속하고 싶었는데. 

혹시 기분이 풀리거든 발문을 다시 연습해 보자고 했을 때, 아이가 꺼낸 말은 '싫어요'였다. 

참지 못하고 덧붙이게 됐다. 애당초 너희에게 즐겁게 공부하자는 기회를 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실수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이냐..


그냥 아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지독하게 싫은 모양이다. 신뢰도 안 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짜증이 날 뿐이고, 내 말은 그냥 아무 무게가 없고. 그냥 싫고 만만하기만 해서 내 말에 매번 그렇게 대꾸하고 소리를 지르고 앞에서 욕을 하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는,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인가. 그래서 어쩌라고. 시발. 네~네. 샘, 샘! 아이씨! 안해! 싫어요! 왜 해요! 왜요~! 미친! 졸라 싫어. 짜증나! 

이젠 일일이 따지고 대꾸하는 것도 버거워서 반쯤 무시한다. 버릇이 나빠지려나. 하지만 일일이 터치하는 게 힘겹다. 내 자식도 아닌데 버릇이 되든 막 살게 되든, 너희 말대로 내게 무슨 상관이람..하고 지내라고, 학교 얘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은 이야기한다. 신경 끄고 버티라고. 하지만 마냥 그냥 둘 수는 없다. 교사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짓이고. ..그렇다고 열심히 노력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난 왜 여기서 너희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무기력하고, 통증을 감내하며 버틴다. 학부모들에게 알릴까 하다가도 상담할 시간도 없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뭐라고 할까 싶어 관둔다. 이게 문제인지도 모르지. 그들이 그들의 아이에게, 담임교사에게 실망하든 어쩌든, 아이들이 마냥 집에서 호통을 들으며 윽박질러지든가 맞든가 간에 전화로 있는 족족 알려야 하는건지도.

1학년 선생님이 그러듯, 체벌을 주고 윽박질러서 눌러놓으면, 그게 된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결국은 강한 인간 앞에서 조용해지고 약한 인간에게는 공격성을 드러내는 인간들이 되겠지. 소심하게 아이들의 학력이 좀 상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당신의 아이는 공부라고는 관심도 없고 놀 궁리만 하고 있으며 나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해내기를 바라고 자율을 주었지만 매일같이 나를 입으로 행동으로 무참히 난자하고 있다고 말하나.

그냥. 비극이다. 

사랑이 부족해서, 누군가의 관심을 더 받고 싶어서-그 사랑과 관심이 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내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모습으로 드러날지라도. 거기 만족해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걸수도 있지. ...사랑과 관심이라. 나 나름 노력했다. 기초를 다진답시고 남겨도 봤고. 따로 불러서 좋게 타일러보기도 했고. 먹을 거리를 제공해보기도 했고. 함께 저녁을 먹어보기도 하고. 속내가 담긴 얘기를 나누어보려고도 했고.

하지만 너희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내 어설픈 노력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같다. 그 일련의 과정은 그저 너희를 더더욱 망치기만 하는 것 같다.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무례해질 뿐인 것 같아 얼굴이 굳을 때가 있다. 공부도 안 하고 버릇만 없어지는데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 당장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혹은 내가 정말로 지독하게 끔찍하게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이해한다. 지금의 나도 딱 내 자신에게 그런 기분이거든. 교재 연구도 부실하고 울증 때문에 자꾸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기는 커녕 상황을 더욱 나쁘게만 만드는 내가 저주하고 싶을 만치 밉거든.

잠을 자기도, 일어나기도 버거운 나날.

..내가 사라져 버려야 만족하겠니... 싶어지고 마냥 사라져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럼 그 가학성이 온전하게 충족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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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일지/일지 2015 2015. 9. 16. 22:23

C가 눈이 가렵다고 가렵다고 가렵다고 호소해서 보건소에 데려갔다. 3일 쯤 전부터 가렵다고 비비적대더니만. 부모님에게서 눈병이 다시 옮은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다.

여전히 말은 안 듣고. 수업시간에 책도 안 펴고. 아이들이랑 거칠게 놀고. 난리부르스에 예의도 삶아먹어버린 양 굴지만. 내 충고라고는 아무것도 안 들으려 들지만. 나도 뭐...녀석 버릇 고치는 건 글렀다고도 생각하지만. 말이 먹혀야 말이지. 뭐가요 그래서 어쩌라고. 의 연속이니.

쨌든. 녀석이 집으로 돌아간 뒤 한동안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수업시간이 그나마 조금은 덜 소란해졌지만. M과 M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달라진 것이 없고. 열심히 대답해내는 인간은 J뿐이고. 다들 지루해 죽을라카지만.

...

걱정되니까 전화는 해 보아야지. 내일. C부모님도 내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아이 하나 확 잡아서 버릇 좀 고쳐주었으면. 공부 좀 잘 가르쳐 주었으면. 하시겠지만. 이제와서 녀석 마음을 잡는 것도 글렀고. ...1대 1로 대화할 때는 좀 이쁜 구석이 있는데. 협조도 잘 해주고. 요즘은 수업도 아주 가끔 듣는 것 같기도 했다. 


---

교장샘의 일장훈계를 듣고 왔다. 아주 간단한 업무 관련 검사맡는 일이었는데. 1분이면 끝날 일이었는데. 붙들려 앉혀져서 이것저것. 

그래도 날 나름 위해주려 한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는 본인이 90년대 초에 북적이는 시골 아이들과 했던 이런저런 즐거운 경험들을 다시 살려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딱딱하게 앉아서 하는 교과진도보다도. 아이들과 낚시하고.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이곳저곳 밖에 나돌아다니며 경험하는 생생한 것들. 그에 대한 향수가 강해서 현장체험학습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지도.

내게 교실 밖으로 나가 놀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수업 빨리 끝내고 놀고. 그러면서 관계를 잘 쌓아가라는 말을 아주 오래오래 해 주었다. 대성학원 강사처럼 수업을 하는지, 어떤지 다 알고 있다는 말도. 좀 부끄러웠다. 모둠활동을 포기하고 주입식으로 나가고 있으니. 나는 활동중심 수업을 하다 수업 자체가 실종되어버릴까봐 아무 시도도 못하고 있다. 대신 아이들이 입다물고 집중할만한 동영상과 사진자료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말 그대로 따르기도 힘겨운 것이. 아이들은 스스로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타 학교의 2,3학년 수준 정도로 기초가 무척이나 부진한 상태고. 그것을 무시할 수 없을 뿐더러. 진도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배워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은 알려주고 넘어가야 하므로. 남겨서 함께 얘기하고 놀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산다. 띄엄띄엄 한 마을에 한 두명 사는 아이들을 남겨서 공부를 가르치다가 내 차로 바래다주는 것도 버거울 지경인데. 스쿨버스가 오기 전에는 어김없이 방과후 시간표에 맞춰 수박 겉핥기 수업을 한다.

차라리 붙들고 앉혀서 공부를 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계급이 이미 고착화되어버린 사회에서 공부로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그 부분을 포기할 수도 없다. 

행복한 경험들의 사이사이에. 몰랐던 것을 아는 것도 포함되면 좋지 않을까. 근데 수업은 아무리 잘 해도 놀이만큼 즐거울 수가 없다. 


그의 말 중에서 내가 그나마 적용할 수 있는 것은. 학급규칙을 제정하고 당근처럼 놀이를 써먹는 것이다. 조금 일찍 마치고 놀기. 놀이의 종류를 많이 알아두고 틈틈이 많이 논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아이들은 그냥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넘겨 버리고 당근을 모두 뽑아 먹어버리고 싶어한다. 당장 먹을 수 없다면 필요 없다는 투다. 당근이 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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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일지/일지 2015 2015. 9. 9. 15:42

구질구질한 날.

나는 인간이 싫다. 애쓰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보는 것도 마음아파 싫고 그런 아이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난 아이들도 보기 버겁고 분위기에 휩쓸려 공부할 순간을 놓치는 아이들도 갑갑하고 농담따먹고 노래부르는 분위기를 주도하며 어디선가 얻어온 상처를 헤집어보이는 아이들도 힘들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버티듯이 허술한 수업을 이어가는 나도 싫다. 노력한다고 했나.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충분하지 않고 허술해서 나 스스로도 내가 용서가 안 된다. 그냥 나는 여기 있지 말아야 하는 인간인가보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모두를 감싸안고 잘 끌어가 주었더라면 다들 행복했겠지. 

이러다 내가 죽겠다. 정말이지 살기가 싫다. 다시 울증이 찾아왔다. 사직서를 내고 신경정신과에 내원할까 생각하다가 추하게 버티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강한 충동이 찾아오면 다시 버틸 수 있을까 싶다.

이 아이들은 나로는 한참 부족하고. 아무리 내 마음을 내보이고 눈물을 쏟고 돈을 들이고 발악을 해도 이렇게 초라한 인간으로는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이젠 폭력만 아니다 뿐이지 무관심이라는 폭력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 아니다.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고. 잘도 상처를 안 줬겠다. 나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공부한다고 답했던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12만원짜리 연수는 3분의 1 듣고 내버려두었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들은 나의 모든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들이 아닌 나를 위한 노력으로 여긴다. 내가 어설픈 호의를 베풀어 그런 태도를 기르고. 그들의 삶을 망쳐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윽박질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천하에 몹쓸 부진아들이라고 욕을 하면서 1학년 선생님처럼 소위 조져야 했는지도 모르지. 그럼 조용해지겠지. 타율과 폭력에 젖어. 근데 지금의 나라고 마냥 인격적인 것도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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