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

일지/일지 2015 2015. 9. 26. 13:50
생일 맞은 아이들을 위해 3월 산 것과 같은 초코케잌을 사고. 과자를 한 봉지 씩 나누어 주고.

어제 이후로 비슷하게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어르고 소리지르고 째리고 하면서 수업을 대충 진행하고-지네가 알아먹든 말든, 더 이상 쉽게 가르치는 건 잘 못하겠다, 내가 너무 어렵게만 설명하게 되나본데...뭘 어째야 더 쉬워지는지 나도 잘 못하겠다. 

C가 적어낸 각서에 대해 언제 한 번 모두의 의견과 이의를 반영하고, 서명을 받고. 각서를 어겼을 때의 규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지키지 않는 각서는 의미가 없으니. 다만 벌칙이 너무 배타적이고 처벌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방향을 어떻게 끌어낼지 잘 모르겠다. 학습지 풀이를 시킬까..

C와 J와 H와 G를 남겨 수학과 영어를 조금 가르치고. 숙제를 내 주고. 리코더 연습을 봐 주고. 아이스크림을 약속대로 사서 하나씩 물려주고. 어둠 내린 잔디밭에서 그네를 타다가 달리기 경주를 하고. 철봉에 앉아보려 버둥거리는 J를 보며 낄낄거리고. 옷을 잊어버린 C를 기다려주고. 왁자지껄하게 낄낄거리는 꼬맹이들을 차에 태워 데려다 주고.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 쳐 주고. 바이바이 하고.

뭐..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끝까지 나는 만만하기만 한 어른 아닌 어른이겠지.

그래도 이런 기억들이 어떻게든 훈훈하게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이런 나에게 불만을 가지게도 되겠고. 소란하고 통제되지 않는 교실이란 게 학력 면에서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걸 타계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더 이상 뭘 어떻게는 못 할 것 같고.. 나는 매일 이 정도의 훈훈함이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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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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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일지/일지 2015 2015. 9. 23. 16:30
말 그대로 조울증같은 하루였다.

아침 미술 1교시에 강당으로 옮겨가 리코더 연습을 대신 하다, 2교시에 1,2학년 체육에 밀려 피아노실로 옮겨 계속 연습을 했더랬다. 리코더에 고인 타액을 뺀다고 휴지를 떼어다 쓰는 것 까지 보고, 피아노실로 옮기기 전에 치우라고 하였더니 자기가 사용한 것들은 다 버렸다고, 가장 늦게 나온 아이들도 다 버렸다고 하기에 다시 강당으로 불러들여 청소를 시킬까 하다가 그냥 아이들 말을 믿기로 했다. 피아노실에서 안되는 아이들 얼러가며 연습을 하고 있는데, 대뜸 체육선생님께서 오셔서 나더러 밖에 나가 있으라시더니만 소리지르며 혼을 내셨다. 이유인즉 휴지를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는 것. 

아이들 나름대로 강당을 치우고 왔다지만 이리저리 뒹굴며 흝어진 휴지를 미처 못 줍고 왔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아이들의 허점을 채우는 건 내 몫이다. 

체육 선생님 입장에서는 항상 내가 못미더우실 것이다. 생활지도도, 수업도 항상 엉망진창이라서 전교생 행사 때마다 두드러지게 소란하고, 교무실과 교장실까지 고함 소리가 들리게 만들고 있으니. 이해한다고 하시면서도 화딱지 나시겠지.

그 분이 매번 마구 화를 내시는 것은 아니다. 평소 칭찬을 무척 강조하시고, 아이들 입장에서 놀이교육을 하려고 애쓰시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잘 교정되지 않는 잘못한 부분은 큰 소리로 따끔하게 혼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기실 것이다...

아이들이 막 혼나고 분위기가 싸해져 있는데 밖에 서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막 혼나는 기분이었다. 책임자로서 아주 개떡같다고, 너는 뭐하고 있냐고 야단맞는 기분이었다. 그런 의도도 있으셨을 것이다. 정신 좀 차리라고. 너는 좀 더 꼼꼼해야 하는 사람 아니냐고.

그리고 교실은 뒤집어졌다. 

C는 아주 화가 많이 났다. 야단치는 방식이 조금이라도 폭력적이다 싶으면 거기 민감하게 반응해서 폭발해버리는 아이다. 꾹꾹 눌러담고 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만만한 담임에게 모조리 쏟아낸다. 욕이란 욕은 다 튀어나오고, 제재하면 뭐 어쩌라고? 가 튀어나온다. 그러고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 주변의 물건을 던지고 거슬리는 인물들을 팬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해도, 상처를 봉합할 줄을 모른다. 아예 학예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타일러도 듣지 않았다. 

나도 네 맘 이해 못하는 것 아니다. 나도 어릴 때 학예회 싫어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연습 열심히 했으니 아깝지 않느냐, 마음 다 잡고 다시 해 보자. 여러 번 읊었지만 듣지 않았다. 어쩌면 접근 방식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냥 화나서 내가 이걸 왜 해? 하는 기분에 다 내팽개치고 싶은 기분에 잠시 잠겨있는 것 뿐인데 아이의 감정적인 말에 일일이 논리를 달고 있었으니 먹힐 리가 없다. 학예회를 그만두겠다, 뭣하러 하냐, 우리가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는 녀석의 강짜는 여자아이들 틈으로 확 불길 일듯 번졌다. 

차라리 우리 반도 기분이 나쁠 때 안을 수 있는 곰인형이 하나 있었더라면 불필요한 궤변따위로 머리 아플 일 없이 조용히 끝났을 수도 있다.

M도 M도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아한다. C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똑같이 응해온다. C는 그네들의 세상에서 얼마 안 되는, 친구 삼고 싶을만한 명민한 아이이기 때문에.

다음 3,4교시는 엉망이 되었다. 아무리 설득하고 타일러도 소용없었고, 여자아이 둘은 교감선생님께 내려가 떼를 쓰기까지 했다. 교감선생님께 죄송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보고 있기도 버거워서 올라와버렸다. 


수업시간 내내 딴짓을 하고 있기에 잔소리를 하다가 하다가 나도 화가 나서 야단을 치다가 치다가 동영상을 찍니, 부모님께 문자를 보내니, 온갖 협박을 하게 되더라. 당연히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권침해대응처에 보낸다느니,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하라느니..별 말도 안 되는 협박들을 했었고. 당연히 아이들은 반감을 가지고 싫어했고 더 뒤틀리게 나왔다.

선생님은 우리를 싫어하니까, 말은 싫지 않다고 하지만 죽이고 싶고, 보기 싫어 미치겠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 아니냐며 막 쏟아내기에 내가 너희를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너희 행동이 나를 상처입히고 있는 거라고 대답했다. 계속 대거리를 하니까 속내가 확 튀어올라왔다. 네가 미운 게 아니라 내가 밉다. 너는 내 마음을 전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너희 버릇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밉다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하고 마음을 전하려 노력해도 내 노력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 같아서 비참하다고. 내가 그렇게 싫고 받아들이기 힘들겠거든,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교육청에 민원이라도 넣으라고 쏟아내며 울어버렸다.

..그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나보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얌전히 리코더 연습을 하러 갔다. 

나는 점심 내내 교실에 처박혀서 울다가 아이들 무용시간이 반쯤 지나서야 겨우 참관하러 들어갔는데 애들을 보니까 또 눈물이 났다. 도저히 자리를 지키기 힘들어서 6학년 선생님에게 미안하다 하고 나와버렸다. 

6학년 선생님도 부실한 5학년 담임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허비하고 있다. 나 대신 애들 잡겠다고 열심이시고..나 대신 리코더 연습 시키시고. 나 대신 애들 필요한 거 공지해주시고.

그런데 내가 너무 물러서 잡아놓으면 애들은 또 내 앞에서 왕창 쏟아놓고 풀어져버린다.

..울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주성이가 쓴 쪽지가 배와 함께 남겨져 있었다. 나중에 드세요, 라는. 양샘이 주고 간 물컵도 보이고. 

아이들도 고생이다. 서투른 담임 때문에 수업도 재미없고. 잔소리 폭탄에 맞아가며 버티고. 그러면서도 내가 힘들어하면 이런 식으로 날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진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 성악설은 사실이 아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힘든 것이다. 나름대로의 부진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그런데도 내 말을 들으려고 노력 한다. 노력하다가 의미없다고 느껴지니 억누르지 않는 내 앞에서는 걍 놀아버리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구는 것이 독이 되리란 것은 아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진심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걍 내가 불쌍했든가. C의 제재 하에 영어시간은 조용히 흘러갔고, 15분만에 마쳤다.

아이들과 신규 기사 선생님이 주신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고,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려는 와중에 M이 먼저 포옹을 제안해왔다. M과도 했다. C와 포옹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네 덕분에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것이 어디까지 진심으로 전해졌을지는 모른다.

내가 볼 때도 나는 좀 피곤한 사람이다. 매력적이지 않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좋아하기 어려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포옹한다고 해 보았자 달갑지 않은 마음도 이해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말 여러 발자국 물러서 주었다. 


...나는. 좀 무섭다. 이제 아이들이 조금 내 마음을 헤아려주었는데. 아이들은 아이들이므로 다시 제멋대로 굴고 싶어할 것이다. 이후에도 얌전하게 내 말에 마냥 응해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하는데, 내가 거기 부응하지 못할 것이 두렵다. 아이들을 다시 실망시키게 되는 수순이 다시 올까 두렵다. 

언젠가부터 좌절이 당연해진 것 같다. 아이들은 내 말을 안 듣고. 나는 꾸역꾸역 하루를 버팅기는 데에 익숙해져서. 다시 아이들이 실망할 지루한 수업이 되고. 나는 혼내고. 짜증나는 선생님이 되어 있을까 겁이 난다. 부담스럽고. 어렵다..

고맙고 미안하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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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일지/일지 2015 2015. 9. 22. 00:00

C를 둘러싼 두 M들의 쟁탈전. 서로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함께 어울리기엔 그나마 수준이 맞는 좋은 상대라는 이유에서 아이들은 C를 중심으로 돈다. 그리고 C와 어울리기 위해 서로를 배척한다. 그러다 오늘은 M 싫어! 하고 배격질을 해대는 C패거리 탓에 M이 우는 사건이 벌어졌다. 

8년 가까이 함께했지만 아이들 사이에는 그다지 친근함이 없다. 사귈만한 사람이 없어서 차선을 택하고. 밀려나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러지 않기 위해 친구의 잘못에 동참하고..


아이들 마음에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있다. 윽박지르지 않고 들어주고. 헤아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수록 버릇없어지고. 나에게 막 대하는 것이 상처가 된다. 그래서 냉랭하게 대하게 된다. 격려해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장 조용해져서 수업에 집중하게 만들려 하는데. 조용해지기는 하지만 정작 수업을 듣지는 않는다. 규칙. 규칙제정. 휘둘리지 않고 법을 제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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