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를 넘긴 70대의 연쇄살인마. 그는 젊은 시절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고 나서 어째서인지 살인동기를 잃은 채 한적한 산자락에 딸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자신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여성 연쇄살인마로 동네가 떠들썩해진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마을에서 만난 젊은이가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한 눈에 알아본다. 그리고 그는 20대인 그의 딸을 노리는 것이 틀림없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죽인 여자에게서 '딸 만큼은 죽이지 않겠다'며 맹세한 뒤 홀로 키워 온 딸.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살인을 할 충동을 느끼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살인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알츠하이머가 그를 가로막는다. 그는 기억하기 위해 일지를 쓰고, 녹음을 하기 시작하지만...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불경 구절들. 인생에 대한 집착을 허망하다고 읊조리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의 구절이 소설의 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집착을 버려 자유로워지라는 교훈을 담은 구절들이 여기서는 음산하게 반복되는 저주처럼 다가온다. 붙들고 싶지만 의지가 미치는 영역을 이리저리 숨바꼭질하다 영원히 달아나버리는 기억들, 치매의 저주. 

사람의 자아나 그를 이루는 삶은 그 스스로의 인지능력에 기반한 것이다. 그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사실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것들(새로운 연쇄살인마가 나타났다! 그가 딸을 죽이려한다!) 아주 명백한 주변 인간관계조차도(십수 년 간 키워 딸은 진정 존재했는가) 온통 무너져내리고 만다.
신기루처럼 내려앉는 세상을 두고,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그는 무력하게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먼지처럼 아무 동기 없이, 무기질처럼 순수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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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생각이 났다.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내.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복수를 해야 한다. 복수에 대한 열망만큼은 강렬하고 잊을 수 없어서, 착실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 잊어버리고 만다. 계획의 진전을 확인하고 이어가기 위해 사진과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계획이 잘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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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로이드가 나온대서 찾아봤던 2012년 작 영국 드라마 The Fear 4부작 역시, 두목의 망각성 뇌질환으로 무너져 내리는 영국 갱조직 가문 이야기를 그렸더랬다. 치밀한 논리와 냉혹함으로 정계에까지 손을 뻗쳤던 강력하고 부유한 갱 두목이 있다. 희귀하고 치명적인 뇌 질환이 깊어져 가면서 그는 조금씩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잘못된 지시를 내린다. 정도는 점점 심해져가고, 조직 내에 상존하던 트러블들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서 늦게나마 상황파악을 한 2인자들이 어떻게든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하려 애쓰지만 불법이민자로 이뤄진 신흥 갱단과의 심한 갈등으로 조직이 몰락해 가고 마는. 그런 얘기였다. 그리고 냉혹함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인간에게 둑이 터진 뒤 몰아치는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다. 잘못된 판단보다도, 그 죄책감이 그를 더욱 철저하게 망가뜨려간다. 이성의 끈이란 얼마나 쉽게 망가지고 인간은 얼마나 취약하게 망가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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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젊은이들의 경우 몸이야 이제 140~150세까지도 유지할 수 있을 거고들 하더라. 자잘한 질환을 달고 지내더라도 약이며 수술이며 잘 받으면. 굶주림이나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대도 거의 끝났고. 되려 넘치는 열량이 문제가 되는 때가 됐다. 하지만 그만한 시간을 살아가는만큼 정신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이젠 온전한 정신, 급변하는 시대상황을 잘 파악하고 적응하는 정신이 중요한 시대다. 꼭 뇌 질환으로 인한 몰락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트라우마, 구닥다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나날이 발전되는 새로운 사회의 필요를 소화하고 적용하지 못하는 정신은 도태되면서 갈등을 조장한다. 
누구나 시대와 발맞춰 나가기 바라고, 몰락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런 병은 오래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넘치는 열량을 쓰레기처럼 몸에 쌓아두지 않고 소각시키기 위한 운동을 게을리하고 당뇨에 걸리거나, 혈관질환에 걸리게 두는, 그래서 치매 뇌를 만드는/사회 흐름을 넓게 조망하기 위한 노력을 않고 대충 사는 인간들 누구에게나. (2016년의 화두는 페미니즘이라지. 요즘 트위터를 보다가도 요 비슷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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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즈음에는 과거의 뒤틀린 영광에 집착하는(하지만 그를 향유하지는 못하는) 치매걸린 노인과 젊은 딸이 나오기에 무언가 은유가 섞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그른 시대를 유지하기 위한 부산물 같은 정책으로 뒤틀린 경제적 영광을 맞이했던 노인세대. 누군가에게서 강탈해 온 딸을 위한다지만 결국 딸을-실은 딸도 아니었던 선량한 젊은 부양인(선택권 없이 그들의 자식이자 손주 세대가 된 젊은이들)을 (딸 같아서 그러는거야-하는 중노년층의 무례하고 막된 행동을 캐릭터 관계로 투영한 건가?) 과거의 영광을 불렀던 방식대로 구해내려다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고 마는. 그러곤 자기가 그런지도 끝끝내 모르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상황을 보는 시각부터 잘못되었던. 심지어는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신념을 지닌 중노년 세대.
이런 세태 비판적인 무언가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너무 멀리 간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슥슥 잘 읽히는 책이었다. 간만에 독서하니 재밌었다. 드라마도 영화도 게임도 만화도 좋지만. 제대로 몰입하면 독서만큼 재미난 것이 없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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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에 이어서 읽은 책인데. 
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의 미시사를 보는 것 같다.
국제시장이 자주 떠오르더라. 훈훈하게 미화되었다는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다쳐도. 그래. 사람들은 열심히 나라가 요구하는 대로 희생한 만큼 인정받고 싶어했고, 그 부분을 감독은 나름대로 채워주려고 했다지. 그런데 그 사람들, 지금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 은퇴 후 경제난에 쪼들린 한국 노년층, OECD 노인자살률 1위를 기록중.
평범하고 선량한, 요령피우지 않고 마냥 성실한 보통사람으로서, 쉬지 않고 일했던 이 사람들은 어째서 워킹푸어로, 나날이 궁핍하고 각박한 나날을 보내야 하나.

두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에선 다들 너무 지치고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거.
어른들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고 지쳐있다. 사회적 안전망이라곤 없고. 이런저런 해고사태 볼 것 없이 노동자는 부속처럼 취급당한다. 고용정책이 또 바뀐다지. 해고하기 쉽게. 일하기도 힘들고. 부양하기도 힘들고. 가족을 충분히 돌아볼 시간도 없고. 다들 상처투성이가 되어 거친 말과 날선 태도로 너나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상처를 주고받고. 이런 속에서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고. 방치되고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힘이 들고. 스스로가 밉고.
왜 이렇게들 힘들게 사는 걸까.

왜인지 알고 있다. 시스템에 손을 대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허덕이는 세대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사회는 그들의 상처를 이용하려들고. 연대는 어렵고. 살아 생전에 내가 누릴만한 큰 변화를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보이고. 희망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책임의 무게를 떠안고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그래도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현실의 쓰나미가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 쉽게 넘어들어왔다는 글에,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는 말에,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라는 말에 작가의 씁쓸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어제도, 궁핍은 노력하지 않은 대가인 거고, 삶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누군가를 통해 들었더랬다. 주님께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기도하면 된다. 하며 버틴다던 사람. 종교의 그 가치도 이해하고, 효과 역시 익히 알고 있다. 상냥함으로 둘러싼 사람들과의 안온한 울타리에서. 사회의 다른 부분에선 눈을 떼고. 모든 일들이 예정되어 있으며 끝은 행복하다는 믿음과 함께. 일종의 진통제. 망각제.
잊고 싶어도 자꾸 실감하게 된다. 쓰나미 같기도 하고 심해 다이버를 눌러대는 수압같기도 하고. 잊고 있다가도 떠올리게 된다. 작가 아저씨도 그런 압박에서 매 순간 자유로울 수 없었던가보다.
그래. 개떡같은 세상인데, 이걸 같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그래도 종종 했더랬다. '나도 여기 있어.' 하는 글에 자꾸 눈물이 나서 혼이 났다.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진 그 투명인간. 다쳐도 죽어도 가시화되지 않는 투명인간들. 열심히 사회를 떠받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보장받지 못하는 삶. 보이지 않게 가려지고 무시되는 궁핍과 스트레스들. 노년의 이야기지만 우리세대나 우리 아랫세대라고 다르겠나. 그래서 불안하다.

http://1boon.kakao.com/h21/poverty
예전에 읽었던, 안수찬 기자의 이 글도 생각났다.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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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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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 빌려놓곤 연장까지 할 정도로 미적대다 오래 걸렸는데. 
정작 읽기 시작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사야되겠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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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엽편집. 기분이 다운돼 있어서 좀 즐거워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더랬음. 오래 전 다른 엽편집에서 시덥잖지만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마침 신간 투명인간도 같이 빌려서 먼저 읽었는데 두 책 분위기가 전혀 딴판. 투명인간이..이제까지의 성석제씨 노선과 달리 상당히 진지하고 심각한데 울림이 꽤 컸던 탓에. 너무 소소한 얘기만 잔뜩 들어찬 요 책을 바로 뒤에 이어 읽자니 제대로 페이지가 안 넘어가더라. 반도 채 못 읽고 반납했음.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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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사람들이 꿈꿔오고 투쟁했던 굵직굵직한 목표들인 계급철폐. 산업화. 민주화. 같은 것들은 모두 달성되었고. 위대한 이론과 사상도 어지간히 다 나온 더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 더 이상 목숨걸고 투쟁할 거리도 없고. 새로운 철학이랄 것도 나올 길 없고. 소소하게 조정하고 답습할 거리만 남은 세상에서 야망 있는 젊은 세대들은 자신만의 위대한 위업을 이룰 기회를 박탈당했다. 피땀흘려 현재를 이룩한 윗세대들이 가르치는대로 따르기를 요구받을 따름. 머리를 더 쥐어짜더라도 보다 더 나은 대안이 나올 길이 없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런 완성된 체제 안에서 보다 더 잘 순응한 모습이 성공이라 세뇌받고, 자신들에게 할당된 지엽적인 몫을 얻어내기 위해 서로 쓸데없이 치열한 경쟁을 치러내야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윗 세대의 편의에 따라 이용당하고, 팽당하고, 좌절감을 맛보지만. 결국 사다리를 기어올라 꼭대기에서 얻은 성공이래봤자 그들이 원하던 것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재능있지만 작은 성취따위엔 만족할 수 없던 젊은이 하나가 이에 반기를 내건다. 그는 윗세대들의 기준으로 충분히 성공하고도 남을 천재적인 인물이지만, 젊은 세대가 지닌 다양한 시도와 야망을 눌러 죽이고 흡수해 표백시켜버리는 작금의 세상, '더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를 선언하고는 자살한다. 그가 대학시절부터 교주같은 카리스마와 논리로 자신의 오랜 지인들,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탓에, 그의 죽음을 필두로 그 지인들 역시 하나하나 자살선언에 동참한다.
그만하면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뛰어난 성취를 이룬 직후의 젊은이들이 24시간의 텀을 두고 자살선언을 하고 자살을 감행하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 삼성전자 특채합격자, UCLA합격자, 치열한 능력검증 끝에 후계자가 된 재벌가 자제에 이르기까지. 윗세대가 말하는만큼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자살선언과 실행궤적은 인터넷을 타고 흐폭풍을 부르고, 이에 뜻을 같이하는 자살자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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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조절할 소소한 문제들 외에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가 없는 사회에서, 인생을 내 걸 굵직한 목표가 사라진 세대. 빈틈 없는 가치를 내건 사회에서 순응하며 살 도리밖에 없는 세대..라. 적당히 조율할 문제라고 꼽은 것들도 충분히 두통을 일으키는 것들인지라 별로 공감할 수 없던 대목. 양성평등이나 소수자차별 같은 인권문제나 수정자본주의의 레버를 어느 쪽으로 돌리는가의 문제도 한국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한데. 그러지 않아도 될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로 오랜기간 꾸준히 부당한 피해를 입고 해마다 죽어나간다. 글고..우주의 탄생비밀이야 밝혀졌다지만 아직 외계생물체 하나 못 찾았고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도 아직 안 나왔구만 목숨 걸고 사고를 불태우며 발견하고 발명할 거리? 없지 않은데.
다만 지금의 젊은 세대가 지나치게 작은 파이만이 허락된 세대라는 데에나 소설 속 젊은이들의 감성에는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꼈다. 어느 세대보다도 오래 투자받고 교육받은 탓에 똑똑하고 재능있지만 9급 공무원, 대기업 취업자리에 젊은이들이 어마어마한 경쟁률로 몰리는 현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들어간 이들이 노력한만큼 행복한가 하면 의문이 있고.
이렇게 되면 88만원 세대론과 겹치는 듯 하네. 하지만 88만원 세대론에서 내건 세대간 대립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얘기가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소득수준에서 분배가 제대로 안 되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고 정책적인 뒷받침이 안 따라주는 탓에 계급고착화가 되는 거고 이제 취업하게 되는 청년층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거지. 작가가 얘기하는대로 윗세대의 성취와 장악 때문이라고 풀 건 아닌 것 같다. 자살자 중 굳이 재벌청년을 넣어 세대론을 탄탄히 하려 애쓴 점은 알겠는데. 그도 세대론보다는 경제적 계급을 공고히 하려는 재벌가 중에서 드물게 나오는 비극 정도로 풀 수 있지 않을까. 제2의 후계가 될법한 뛰어난 누이도 있어 중압감을 벗어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같은데 외면하는 것이나 자살을 결심하는 이유로 사이코패스 설정을 굳이 덧붙인 것도 약간 억지스럽다고 느낀 인물. 타 젊은이에 비해 남들 우러르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는 디폴트로 해결된 상태고 몇 차원 건너뛰어 숭고한 목표를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기회도 큰데. 정말로 야망을 채워줄만큼 가치있는 목표가 아니어서? 매력적이지 않아서? 앞에서도 적었지만. 글쎄.. 딴 애들은 고시원과 원룸과 알바의 지리멸렬한 얘기와 고시생활 얘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으면서, 부친같은 카리스마를 유지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사이코패스라니.

그러니까. 책 속 인물들이 겪는 좌절과 암담함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체감했었고 해서 어느 정도 공감하겠는데. 윗세대가 만든 완벽한 더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 운운 하는 전제는 좀 갸우뚱갸우뚱 하다.

장강명을 누군가가 추천하길래 한 권씩 읽어보고 있는데. 기자출신이라 그런지 최근의 세태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모아서 분석해 내려는 면이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 는 소설이라기보다 한국 젊은층의 이민 러쉬에 대한 르포같았고, 이번 표백, 도 인물들을 내세웠다 뿐이지 작가가 분석한 내용을 노골적으로 인물이 대신 말해주는 형태라서.이 사람 소설들은 소설의 탈을 쓴 월간지 칼럼?스럽단 생각이 든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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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서 살아가는 상상의 인물과 벌이는 이야기 배틀? 캐릭터들의 온갖 변주. 상상의 향연. 잔혹동화처럼 뒤틀린 로맨스들. 근데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카페에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는데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 책도 오랜만이다.
이승열의 영미문학관에서 한국을 방문한 오이예미가 직접 책을 읽어줬더랬는데, 그 이야기 꼭지만큼은 꽤 흥미로웠던 터라...
아무래도 책 선정에 실패한 듯. 이런 류는 나랑 안 맞나보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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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이가 읽고 있대서 다 읽으면 빌려달라고 했더랬다. 어제 잠깐 업무 관련해서 생글이네에 들렀는데 다른 책을 찔끔찔끔 읽고 있길래 다 읽었으면 약속대로 빌려달라해서는 빌려왔지.
꼬맹이가 뭘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책을 자주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아서, 조금이라도 책에 대한 기억이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교실 뒤켠에 큰 매트를 사 놓고 둘이 같이 끼고 책이나 읽을까..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좀체 여유가 없다. 재량껏 한 주에 한 시간이라도 구성해서 책을 좀 자주 읽히고 싶은 마음임.
방과후 독서논술시간에 가져가야 한다며 꼭 빨리 돌려달라고 그랬던 터라 오늘 저녁에 시작했는데, 금방 읽었다. 몇 쪽 안 되는 책이고 글자가 커서. 
예전 생각이 나더라. 내가 녀석 나이일 적에는 학교 쉬는 시간마다 항상 학급문고에서 뭐든 빼서 붙들고 있었는데. 이런 글자크기의 동화책을 열심히 가져다가 읽었더랬다.
읽다보니 생글이에게는 좀 생소하겠다 싶은 지명이나 표현들이 좀 나오길래. 녀석, 이거 읽고 이해가 잘 됐을까 걱정도 되고. 그래도 이야기 구성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눈이 많이 내리는 시골마을. 생글이 또래의 아이가 주인공이고. 아이 주변에는 아이와 아주 친밀하고 신뢰할만한 인물들이 있다. 부모는 등장하지 않는데,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듯. 독논 선생님께서 울 애들 상황을 고려하셔서 꽤 신중하게 선정하신 책인 것 같다. 또래와 조금 다른 환경이지만 주변의 어른들이나 반려동물과 함께 하면서 충분히 사랑받고. 노력한 바에 대해서나 스스로 선택한 바에 대해 충분히 경청받으며 존중받는 아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무기력해져서 삶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자 할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해드리려 직접 수소문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존중이 드러나는 언행, 다른 사람을 대하는 차분하고 심지 굳은 아이의 태도를 보면서 지금의 내 주변상황을 많이 생각해보게 되더라. 있는 아이들은 잘 키워내야지. 아이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주게 된다면야. 어떻게든 그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게끔 해주고 싶다. 안그래도 버거운 삶인데. 그 이런저런 흐름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건강하고 든든한 마음을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마지막엔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되기까지 누군가를 순수하게 걱정하고 사랑했던 모습으로 그려진 그 강아지가. 그 마음이 세상에 없는 허구든 아니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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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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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무력한 젊음이 헐거워 견디지 못할 때 동걸은 이토록 몸에 꼭 끼는 생활을 치러내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나는 더욱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깨진 병조각 같은 침묵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곤 하였다.
..나는 상한 음식인 줄 알면서 그것을 삼킬 때 느끼는 물컹하고 우울한 느낌을 받았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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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에서는 예술의 힘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을 담금질해서 그 사람의 삶의 정수로 남는 예술작품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영혜의 매형이 자기중심적인 욕망에 빠지기 전, 영혜의 상태를 잠시나마 이해하고 그 고민에 동조하였던 수 있었던 것도. 예술가라는 소설 속 특권이 작용한 것 아니었을까.



예쁘지도 않고. 남성들에게 더 예뻐보이기 위해 꾸미려는 노력도 않으며. 그런 반면 남성의 성욕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예의로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도 거부하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며 남편을 위해 훌륭한 요리솜씨도 발휘하지 않는. 그것이 장인장모를 부끄럽게 하고 사위에게 사죄하게 하는 큰 죄가 되는. 그런 거부하는 여자.
반면. 더 예뻐지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했고. 아이도 잘 낳고. 아이를 낳으면서도 잠깐의 불가피한 때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가게를 늘리고 돈을 벌며. 이상을 좇느라 바쁜 남편을 위해 아이를 홀로 양육해내고. 남편이 다른 곳에서 묻혀 온 성욕의 처리기가 되어주고. 무력한 가족을 대표해서 부적응자를 돌보는. 그런 철저히 순응하는 여자. 



3개의 중단편이 실린 책인데. 그 세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이어져있다. 그 중 가운데 이야기가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으로 실린 몽고반점. 수상 소식을 듣고 내가 아는 그 한강의 작품인가? 이제껏 읽어온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 작품이려나. 싶었다. 호기심이 동했고 그래서 신청해서 빌렸고. 한 동안 읽을 엄두를 못 내고 다른 흥미거리들로 도피하고 있다가 오늘 새벽에야 읽겠다고 잡았다. 단편선인줄은 몰랐네. 읽다보니 읽는 데는 금방 걸렸다.
몽고반점의 이야기는 상당히 강렬했어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더랬는데. 앞뒤 이야기가 덧붙고 나니 인물들의 행동이 조금 더 이해가 갈듯... 말듯.ㅎㅎ

평범한 여자 영혜. 튈 곳이라곤 없는 여자. 음식솜씨만은 훌륭한. 그녀의 남편은 그 평범함을 유용하다고 판단하고 결혼한 승진지향주의자다. 남편의 바람대로 순탄한 나날이 계속되나 했더니 어느 날 아내는 그 평범함을 내팽개쳐버린다. 꿈 속에 나온 고기의 이미지, 고기를 먹기 위해 행한 이런저런 폭력적인 기억들에 진저리치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남편을 비롯해 영혜의 가족은 누구 하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녀의 결정에 격하게 노하는 것은 그녀가 진저리치는 그 폭력에 깊이 물들어있고 그것을 자랑스레 여기는 인물이다. 월남전 참전군인이자 그녀를 때리며 키운 장인은 억지로 고기를 입에 밀어넣으려다가 그녀가 거부하자 그녀를 붙들어놓고는 입가에 짓뭉개버리기까지 한다. 
그런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녀가 식물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어째서인지 읽어내고는 거기 매혹되는 인물이 있지만, 그 역시 그녀를 자신의 작품을 위한 뮤즈로 소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영혜가 그의 처제임에도, 그의 예술적인 욕망을 위해 그녀의 상태를 이용하려는 그의 걱정과 번민은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에 초점이 맺혀있다. 자신의 커리어. 자신의 사회적 위치. 그를 바라볼 사회적 시선. 그의 고매한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품은 모두 아내에게 미루어버리고, 아내의 희생을 인식하면서도 되려 별말없이 받아주는 아내가 불편하다며 자신의 죄책감의 원인마저 아내의 행동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도 어떻게보면 그의 장인과 성격은 다를 지 모르나 폭력성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글고보니 특공대출신이란 표현이 잠깐 나오기도 했더랬다. 그를 둘러싼 여자들의 삶은 일차원적인 폭력을 가한 장인보다도, 결과적으론 그로 인해 더욱 크게 망가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보고, 거기서 파생되는 온갖 파괴벅인 뒤치닥거리를 처리해내면서도 어떻게든 가족을 보듬어안고 가려는 영혜의 언니가 등장한다. 어린나이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내어 부모가 원하는 맏딸이 되고. 19살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찍 철 들고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제력까지 갖춘. 그녀가 원한 남자는 그녀처럼 피곤에 절은 사내였고. 그녀의 삶을 깊이 투영해 낸 듯한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그 남자는 항상 바빴고 그녀 홀로 생활을 꾸려가는 일은 날로 고독하고 버거워졌다. 남편은 자신의 이상만을 좇았고 그의 이상을 아내와 공유하려는 노력도 않았다. 그리고 가져온 결과는 커다란 범죄였고 배신이었다. 그녀는 나중에야 그녀가 정말 쉬게 해 주고 싶었던 이는 남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수라장의 뒤치닥꺼리를 짊어진, 한 아이의 삶 마저 머리에 인 그녀가 쉴 길은 요원해보인다. 

폭력에 대한 저항의 이야기라고 했던 것이 다 읽고나니 이해되는 느낌. 가부장적인 폭력,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어쩐지 요즘 보는 드라마인 디어 마이프렌즈와도 읽는 정서가 겹치는 듯도.?

병증의 발현이 어떠한지. 원인이 뭐였는지보다도. 고기를 거부하고 아무도 해치고 싶어하지 않는 영혜를 대하는 주변의 몰이해와 여전한 폭력성에 작가는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영혜가 원하는 것은 결국 아무도 해치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인데. 그런 그녀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녀는 결국 죽어가고 있을 뿐이고, 그녀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왜 죽으면 안 되는데?' 
그래서 당연한 수순으로 영혜는 정신이상자로 낙인찍혀. 정신병원에서 죽어갈 뿐이다.

폭력을 가하고. 폭력에 순응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이상한 세상. 그리고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연료로 소모되는 여자들. 영혜처럼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길을 택하든, 그 언니처럼 그 모든 폭력성에 순응하고 감내하든, 삶은 쉽지 않아보인다.

생각을 긁어모아 정리하니 대략 이런 얘기려나. 하는 느낌인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네. 많이들 읽으니까 평도 많겠지. 함 돌아다니며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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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출신의 체격 건장하고 외모 반듯하며 돈 많은 집의 독자. 머리가 비상한 인물. 한국에서 가장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이런 인물일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런 인물은 왜 살인범이 되어야 했는가. 타고난 성정과 그를 잘 조율하지 못한 양육방식.
사이코패스가 치유할 수 없는 악이라면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케빈에 대하여나 덱스터가 생각나는 질문이다. 차라리 주인공의 어머니는 진단에 대해 알리고 철저하게 안락한 미래를 위한 이해득실을 따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나았을까. 많은 사이코패스들이 있지만 그들이 꼭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사회적 스킬을 하나하나 가르친다고 본 것 같기도. 주인공의 주변 어른들은 너무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레데터는 그게 안 먹히는 인물들인가. 모를 일이다.

거칠 것 없는 조건을 갖춘 주인공이 여자들을 놀잇감으로 삼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이슈가 떠오르기도. 이런 조건을 갖춘 젊은 것들이 성폭력 사건이서 얼마나 쉽게 빠져나가는지, 앞길 창창한 젊은이라면서 피해자보다 훨씬 동정표를 얻곤 하는 양상을 뉴스에서 종종 보기도 했고..이런 짓을 꼭 사이코패스만이 해대는 것은 아닌 것이. 많이들 경험담이 나오고. 작중에도 아재가 하나 나오기도 했고..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 나의 권력으로 좌지우지하고 싶는 욕망이 성범죄의 요인이라지. 사회적으로 약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려는 움직임과 암묵적인 합의가 튼튼하지 않으면. 분위기가 확고하지 않으면. 누군들 이 사이코패스와 다르겠는가. 얼마 전 인터넷 기사를 보니 어떤 기자가 자신의 동료들을 상대로 강간에 대한 설문을 했다는데. 이들은 남성들이 가진 강간 판타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을 뿐 아니라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길가에서 만취해 있는 여성을 기꺼이 강간하겠다는 응답도 했다지.http://m.ildaro.com/7415 통계 축에도 못 들 얘기긴 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라면 셋 다 그건 미친 짓이라고 했어야 옳다..



범죄자의 심리를 범죄자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리노 나쓰오 생각이 났다. 미미여사라든가 기리노 나쓰오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이 2000년대 초반에 이슈였고 인기몰이를 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용어들이 대중에게 두각을 나타냈고 그런 자들을 다룬 작품도 많았다. 그밖에도 이슈가 된 살인이나 사회적인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며 몰락해버린 사건들을 파헤친 작품들도 꽤 있었다. 대개 그런 작품들은 왜 그런 기괴한 인간들이 나타났는가. 그들의 범죄양상을 두각시킨 뒤 과거로 돌아가 그들의 성장과정을 차근차근 짚었고 기괴한 성정의 발현, 그 기괴함이 한지에 먹물 퍼지듯 퍼져나가 주변인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명하는 그런 양상의 진행이 많았던 것 같다. 모방범이라든가 그로테스크, 아웃, 아임쏘리마마, 검은 집 같은 소설들. 
그간 한국작가들 중에 이렇게 꼼꼼하게 범죄 미스터리를 차근차근 되짚어가고 범죄자나 피해자의 심리를 파헤친 작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느낌인데. 뒤늦게 찾아든 유행 같아 보이기도 한다. 사회경제적인 추세도 그렇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다룬 사회파 추리소설들도 그런 사회흐름 속에서 태어나는 뒤틀린 인간들을 조명하는 것이고 보면. 한국이 일본의 딱 10년 뒤를 좇고 있는 게 맞나..싶기도.
정유정 작가 책을 읽어 본 것은 이번이 고작 두 번째일 뿐이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도 직접 만든 가상의 배경을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지리적인 특성들과 거기 따른 인물들의 알리바이들이 주인공들의 머릿속에서 추리가 시작될 때면 톱니바퀴 맞물리듯 착착 맞아 떨어지는데, 그 꼼꼼함과 예리함이 몰입을 돕는 듯. 그렇지만 기왕에 한국작가 소설이니만큼, 실제 있는 곳을 배경으로 하면 훨씬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일본이나 미국의 추리소설 보면서 막연하게 떠올리던 지역들이 이젠 좀 지겨워서. 좀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지역들을 떠올려보고 싶은 탓. 근데 곡성 건도 있고..한국은 일본처럼 추리나 기괴한 이야기들의 역사가 그리 깊지 않아서 지역민들의 반감을 유발하려나.

종의 기원. 이라는 제목을 지은 까닭에 대해서는 작가의 말에 언급돼 있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내 온 과정에서 선과 악은 공존했으며, 우리 내부에도 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이 소설은 악이 태어나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라고. 새로운 것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작가의 창작동기나 이야기 전개양상은 그리 특출날 것 없고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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