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에 이어서 읽은 책인데.
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의 미시사를 보는 것 같다.
국제시장이 자주 떠오르더라. 훈훈하게 미화되었다는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다쳐도. 그래. 사람들은 열심히 나라가 요구하는 대로 희생한 만큼 인정받고 싶어했고, 그 부분을 감독은 나름대로 채워주려고 했다지. 그런데 그 사람들, 지금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 은퇴 후 경제난에 쪼들린 한국 노년층, OECD 노인자살률 1위를 기록중.
평범하고 선량한, 요령피우지 않고 마냥 성실한 보통사람으로서, 쉬지 않고 일했던 이 사람들은 어째서 워킹푸어로, 나날이 궁핍하고 각박한 나날을 보내야 하나.
두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에선 다들 너무 지치고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거.
어른들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고 지쳐있다. 사회적 안전망이라곤 없고. 이런저런 해고사태 볼 것 없이 노동자는 부속처럼 취급당한다. 고용정책이 또 바뀐다지. 해고하기 쉽게. 일하기도 힘들고. 부양하기도 힘들고. 가족을 충분히 돌아볼 시간도 없고. 다들 상처투성이가 되어 거친 말과 날선 태도로 너나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상처를 주고받고. 이런 속에서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고. 방치되고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힘이 들고. 스스로가 밉고.
왜 이렇게들 힘들게 사는 걸까.
왜인지 알고 있다. 시스템에 손을 대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허덕이는 세대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사회는 그들의 상처를 이용하려들고. 연대는 어렵고. 살아 생전에 내가 누릴만한 큰 변화를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보이고. 희망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책임의 무게를 떠안고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그래도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현실의 쓰나미가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 쉽게 넘어들어왔다는 글에,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는 말에,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라는 말에 작가의 씁쓸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어제도, 궁핍은 노력하지 않은 대가인 거고, 삶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누군가를 통해 들었더랬다. 주님께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기도하면 된다. 하며 버틴다던 사람. 종교의 그 가치도 이해하고, 효과 역시 익히 알고 있다. 상냥함으로 둘러싼 사람들과의 안온한 울타리에서. 사회의 다른 부분에선 눈을 떼고. 모든 일들이 예정되어 있으며 끝은 행복하다는 믿음과 함께. 일종의 진통제. 망각제.
잊고 싶어도 자꾸 실감하게 된다. 쓰나미 같기도 하고 심해 다이버를 눌러대는 수압같기도 하고. 잊고 있다가도 떠올리게 된다. 작가 아저씨도 그런 압박에서 매 순간 자유로울 수 없었던가보다.
그래. 개떡같은 세상인데, 이걸 같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그래도 종종 했더랬다. '나도 여기 있어.' 하는 글에 자꾸 눈물이 나서 혼이 났다.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진 그 투명인간. 다쳐도 죽어도 가시화되지 않는 투명인간들. 열심히 사회를 떠받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보장받지 못하는 삶. 보이지 않게 가려지고 무시되는 궁핍과 스트레스들. 노년의 이야기지만 우리세대나 우리 아랫세대라고 다르겠나. 그래서 불안하다.
http://1boon.kakao.com/h21/poverty
예전에 읽었던, 안수찬 기자의 이 글도 생각났다.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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