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출신의 체격 건장하고 외모 반듯하며 돈 많은 집의 독자. 머리가 비상한 인물. 한국에서 가장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이런 인물일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런 인물은 왜 살인범이 되어야 했는가. 타고난 성정과 그를 잘 조율하지 못한 양육방식.
사이코패스가 치유할 수 없는 악이라면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케빈에 대하여나 덱스터가 생각나는 질문이다. 차라리 주인공의 어머니는 진단에 대해 알리고 철저하게 안락한 미래를 위한 이해득실을 따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나았을까. 많은 사이코패스들이 있지만 그들이 꼭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사회적 스킬을 하나하나 가르친다고 본 것 같기도. 주인공의 주변 어른들은 너무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레데터는 그게 안 먹히는 인물들인가. 모를 일이다.

거칠 것 없는 조건을 갖춘 주인공이 여자들을 놀잇감으로 삼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이슈가 떠오르기도. 이런 조건을 갖춘 젊은 것들이 성폭력 사건이서 얼마나 쉽게 빠져나가는지, 앞길 창창한 젊은이라면서 피해자보다 훨씬 동정표를 얻곤 하는 양상을 뉴스에서 종종 보기도 했고..이런 짓을 꼭 사이코패스만이 해대는 것은 아닌 것이. 많이들 경험담이 나오고. 작중에도 아재가 하나 나오기도 했고..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 나의 권력으로 좌지우지하고 싶는 욕망이 성범죄의 요인이라지. 사회적으로 약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려는 움직임과 암묵적인 합의가 튼튼하지 않으면. 분위기가 확고하지 않으면. 누군들 이 사이코패스와 다르겠는가. 얼마 전 인터넷 기사를 보니 어떤 기자가 자신의 동료들을 상대로 강간에 대한 설문을 했다는데. 이들은 남성들이 가진 강간 판타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을 뿐 아니라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길가에서 만취해 있는 여성을 기꺼이 강간하겠다는 응답도 했다지.http://m.ildaro.com/7415 통계 축에도 못 들 얘기긴 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라면 셋 다 그건 미친 짓이라고 했어야 옳다..



범죄자의 심리를 범죄자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리노 나쓰오 생각이 났다. 미미여사라든가 기리노 나쓰오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이 2000년대 초반에 이슈였고 인기몰이를 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용어들이 대중에게 두각을 나타냈고 그런 자들을 다룬 작품도 많았다. 그밖에도 이슈가 된 살인이나 사회적인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며 몰락해버린 사건들을 파헤친 작품들도 꽤 있었다. 대개 그런 작품들은 왜 그런 기괴한 인간들이 나타났는가. 그들의 범죄양상을 두각시킨 뒤 과거로 돌아가 그들의 성장과정을 차근차근 짚었고 기괴한 성정의 발현, 그 기괴함이 한지에 먹물 퍼지듯 퍼져나가 주변인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명하는 그런 양상의 진행이 많았던 것 같다. 모방범이라든가 그로테스크, 아웃, 아임쏘리마마, 검은 집 같은 소설들. 
그간 한국작가들 중에 이렇게 꼼꼼하게 범죄 미스터리를 차근차근 되짚어가고 범죄자나 피해자의 심리를 파헤친 작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느낌인데. 뒤늦게 찾아든 유행 같아 보이기도 한다. 사회경제적인 추세도 그렇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다룬 사회파 추리소설들도 그런 사회흐름 속에서 태어나는 뒤틀린 인간들을 조명하는 것이고 보면. 한국이 일본의 딱 10년 뒤를 좇고 있는 게 맞나..싶기도.
정유정 작가 책을 읽어 본 것은 이번이 고작 두 번째일 뿐이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도 직접 만든 가상의 배경을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지리적인 특성들과 거기 따른 인물들의 알리바이들이 주인공들의 머릿속에서 추리가 시작될 때면 톱니바퀴 맞물리듯 착착 맞아 떨어지는데, 그 꼼꼼함과 예리함이 몰입을 돕는 듯. 그렇지만 기왕에 한국작가 소설이니만큼, 실제 있는 곳을 배경으로 하면 훨씬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일본이나 미국의 추리소설 보면서 막연하게 떠올리던 지역들이 이젠 좀 지겨워서. 좀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지역들을 떠올려보고 싶은 탓. 근데 곡성 건도 있고..한국은 일본처럼 추리나 기괴한 이야기들의 역사가 그리 깊지 않아서 지역민들의 반감을 유발하려나.

종의 기원. 이라는 제목을 지은 까닭에 대해서는 작가의 말에 언급돼 있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내 온 과정에서 선과 악은 공존했으며, 우리 내부에도 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이 소설은 악이 태어나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라고. 새로운 것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작가의 창작동기나 이야기 전개양상은 그리 특출날 것 없고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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