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에서는 예술의 힘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을 담금질해서 그 사람의 삶의 정수로 남는 예술작품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영혜의 매형이 자기중심적인 욕망에 빠지기 전, 영혜의 상태를 잠시나마 이해하고 그 고민에 동조하였던 수 있었던 것도. 예술가라는 소설 속 특권이 작용한 것 아니었을까.



예쁘지도 않고. 남성들에게 더 예뻐보이기 위해 꾸미려는 노력도 않으며. 그런 반면 남성의 성욕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예의로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도 거부하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며 남편을 위해 훌륭한 요리솜씨도 발휘하지 않는. 그것이 장인장모를 부끄럽게 하고 사위에게 사죄하게 하는 큰 죄가 되는. 그런 거부하는 여자.
반면. 더 예뻐지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했고. 아이도 잘 낳고. 아이를 낳으면서도 잠깐의 불가피한 때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가게를 늘리고 돈을 벌며. 이상을 좇느라 바쁜 남편을 위해 아이를 홀로 양육해내고. 남편이 다른 곳에서 묻혀 온 성욕의 처리기가 되어주고. 무력한 가족을 대표해서 부적응자를 돌보는. 그런 철저히 순응하는 여자. 



3개의 중단편이 실린 책인데. 그 세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이어져있다. 그 중 가운데 이야기가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으로 실린 몽고반점. 수상 소식을 듣고 내가 아는 그 한강의 작품인가? 이제껏 읽어온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 작품이려나. 싶었다. 호기심이 동했고 그래서 신청해서 빌렸고. 한 동안 읽을 엄두를 못 내고 다른 흥미거리들로 도피하고 있다가 오늘 새벽에야 읽겠다고 잡았다. 단편선인줄은 몰랐네. 읽다보니 읽는 데는 금방 걸렸다.
몽고반점의 이야기는 상당히 강렬했어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더랬는데. 앞뒤 이야기가 덧붙고 나니 인물들의 행동이 조금 더 이해가 갈듯... 말듯.ㅎㅎ

평범한 여자 영혜. 튈 곳이라곤 없는 여자. 음식솜씨만은 훌륭한. 그녀의 남편은 그 평범함을 유용하다고 판단하고 결혼한 승진지향주의자다. 남편의 바람대로 순탄한 나날이 계속되나 했더니 어느 날 아내는 그 평범함을 내팽개쳐버린다. 꿈 속에 나온 고기의 이미지, 고기를 먹기 위해 행한 이런저런 폭력적인 기억들에 진저리치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남편을 비롯해 영혜의 가족은 누구 하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녀의 결정에 격하게 노하는 것은 그녀가 진저리치는 그 폭력에 깊이 물들어있고 그것을 자랑스레 여기는 인물이다. 월남전 참전군인이자 그녀를 때리며 키운 장인은 억지로 고기를 입에 밀어넣으려다가 그녀가 거부하자 그녀를 붙들어놓고는 입가에 짓뭉개버리기까지 한다. 
그런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녀가 식물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어째서인지 읽어내고는 거기 매혹되는 인물이 있지만, 그 역시 그녀를 자신의 작품을 위한 뮤즈로 소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영혜가 그의 처제임에도, 그의 예술적인 욕망을 위해 그녀의 상태를 이용하려는 그의 걱정과 번민은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에 초점이 맺혀있다. 자신의 커리어. 자신의 사회적 위치. 그를 바라볼 사회적 시선. 그의 고매한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품은 모두 아내에게 미루어버리고, 아내의 희생을 인식하면서도 되려 별말없이 받아주는 아내가 불편하다며 자신의 죄책감의 원인마저 아내의 행동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도 어떻게보면 그의 장인과 성격은 다를 지 모르나 폭력성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글고보니 특공대출신이란 표현이 잠깐 나오기도 했더랬다. 그를 둘러싼 여자들의 삶은 일차원적인 폭력을 가한 장인보다도, 결과적으론 그로 인해 더욱 크게 망가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보고, 거기서 파생되는 온갖 파괴벅인 뒤치닥거리를 처리해내면서도 어떻게든 가족을 보듬어안고 가려는 영혜의 언니가 등장한다. 어린나이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내어 부모가 원하는 맏딸이 되고. 19살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찍 철 들고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제력까지 갖춘. 그녀가 원한 남자는 그녀처럼 피곤에 절은 사내였고. 그녀의 삶을 깊이 투영해 낸 듯한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그 남자는 항상 바빴고 그녀 홀로 생활을 꾸려가는 일은 날로 고독하고 버거워졌다. 남편은 자신의 이상만을 좇았고 그의 이상을 아내와 공유하려는 노력도 않았다. 그리고 가져온 결과는 커다란 범죄였고 배신이었다. 그녀는 나중에야 그녀가 정말 쉬게 해 주고 싶었던 이는 남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수라장의 뒤치닥꺼리를 짊어진, 한 아이의 삶 마저 머리에 인 그녀가 쉴 길은 요원해보인다. 

폭력에 대한 저항의 이야기라고 했던 것이 다 읽고나니 이해되는 느낌. 가부장적인 폭력,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어쩐지 요즘 보는 드라마인 디어 마이프렌즈와도 읽는 정서가 겹치는 듯도.?

병증의 발현이 어떠한지. 원인이 뭐였는지보다도. 고기를 거부하고 아무도 해치고 싶어하지 않는 영혜를 대하는 주변의 몰이해와 여전한 폭력성에 작가는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영혜가 원하는 것은 결국 아무도 해치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인데. 그런 그녀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녀는 결국 죽어가고 있을 뿐이고, 그녀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왜 죽으면 안 되는데?' 
그래서 당연한 수순으로 영혜는 정신이상자로 낙인찍혀. 정신병원에서 죽어갈 뿐이다.

폭력을 가하고. 폭력에 순응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이상한 세상. 그리고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연료로 소모되는 여자들. 영혜처럼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길을 택하든, 그 언니처럼 그 모든 폭력성에 순응하고 감내하든, 삶은 쉽지 않아보인다.

생각을 긁어모아 정리하니 대략 이런 얘기려나. 하는 느낌인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네. 많이들 읽으니까 평도 많겠지. 함 돌아다니며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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