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평소 눈물이 많은 아이다. 수업시간에 초콜릿을 소재로 영어발문을 유도하였다.
Can I~? 표현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다. 입을 잘 떼지 못하는 아이에게 연습할 시간을 더 부여하였고 그 뒤 모두가 한 마디 씩 말한 것으로 알고는 넘어갔다. 그런데 녀석에게 다시 발문 기회를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 말해줘서 녀석이 우는 이유를 알았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울기만 하니 뭔 일인가 싶었다.
샘이 그러니까 울잖아요! 대꾸하는 아이들에게 좀 기분이 상했고. 이유를 물으러 접근한 나를 불쾌하다는 듯이 무시하고 눈물을 흘리며 연필을 집어던지는 녀석에게 속이 상했다. 따로 불러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대화를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왜 우는지 이유부터 차근차근 물어볼 참이었고, 들을 준비를 했지만.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내가 건넨 휴지를 찢으며 앉아있었다. 분노의 표현. 화가 났구나. 상한 속을 그렇게 달래고 있구나. 아무 말이 없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연필을 던지고 등을 돌릴 정도로, 그 건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토라져 앉아있을 정도로 이게..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내 물음에 침묵하고 휴지만 찢고 앉아 있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기에 그냥 내가 말을 시작했다.
네가 내게 선생님, 저를 빼놓으셨어요. 한 마디 했더라면 그래? 미안하구나, 하고 답했을 것이고, 기회는 다시 돌아갔을 것이고, 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볼 때 너는 평소 화를 울음으로 터뜨려버리는 경향이 있다-과거의 일을 끄집어 낸 것은 잘못인가? 그런데 이런 경향을 언젠가 짚어주어야 겠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면서 말을 꺼냈다. 그런 경우 네게 피해를 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또 운다'고 얘기하는 것을 간혹 듣는다. 네 마음을 표현하고 토로해야 사과를 하든지 할 것 아니냐. 네 서운함은 언어로 표현해야 확인할 수 있다..
아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되려 나만 주절거린 꼴이 되었다. 나는. 그냥. 상한 기분을 들어주고 싶었고 속을 달래주며 앞으로는 눈물을 참고 자제해보자고 약속하고 싶었는데.
혹시 기분이 풀리거든 발문을 다시 연습해 보자고 했을 때, 아이가 꺼낸 말은 '싫어요'였다.
참지 못하고 덧붙이게 됐다. 애당초 너희에게 즐겁게 공부하자는 기회를 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실수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이냐..
그냥 아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지독하게 싫은 모양이다. 신뢰도 안 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짜증이 날 뿐이고, 내 말은 그냥 아무 무게가 없고. 그냥 싫고 만만하기만 해서 내 말에 매번 그렇게 대꾸하고 소리를 지르고 앞에서 욕을 하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는,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인가. 그래서 어쩌라고. 시발. 네~네. 샘, 샘! 아이씨! 안해! 싫어요! 왜 해요! 왜요~! 미친! 졸라 싫어. 짜증나!
이젠 일일이 따지고 대꾸하는 것도 버거워서 반쯤 무시한다. 버릇이 나빠지려나. 하지만 일일이 터치하는 게 힘겹다. 내 자식도 아닌데 버릇이 되든 막 살게 되든, 너희 말대로 내게 무슨 상관이람..하고 지내라고, 학교 얘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은 이야기한다. 신경 끄고 버티라고. 하지만 마냥 그냥 둘 수는 없다. 교사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짓이고. ..그렇다고 열심히 노력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난 왜 여기서 너희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무기력하고, 통증을 감내하며 버틴다. 학부모들에게 알릴까 하다가도 상담할 시간도 없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뭐라고 할까 싶어 관둔다. 이게 문제인지도 모르지. 그들이 그들의 아이에게, 담임교사에게 실망하든 어쩌든, 아이들이 마냥 집에서 호통을 들으며 윽박질러지든가 맞든가 간에 전화로 있는 족족 알려야 하는건지도.
1학년 선생님이 그러듯, 체벌을 주고 윽박질러서 눌러놓으면, 그게 된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결국은 강한 인간 앞에서 조용해지고 약한 인간에게는 공격성을 드러내는 인간들이 되겠지. 소심하게 아이들의 학력이 좀 상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당신의 아이는 공부라고는 관심도 없고 놀 궁리만 하고 있으며 나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해내기를 바라고 자율을 주었지만 매일같이 나를 입으로 행동으로 무참히 난자하고 있다고 말하나.
그냥. 비극이다.
사랑이 부족해서, 누군가의 관심을 더 받고 싶어서-그 사랑과 관심이 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내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모습으로 드러날지라도. 거기 만족해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걸수도 있지. ...사랑과 관심이라. 나 나름 노력했다. 기초를 다진답시고 남겨도 봤고. 따로 불러서 좋게 타일러보기도 했고. 먹을 거리를 제공해보기도 했고. 함께 저녁을 먹어보기도 하고. 속내가 담긴 얘기를 나누어보려고도 했고.
하지만 너희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내 어설픈 노력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같다. 그 일련의 과정은 그저 너희를 더더욱 망치기만 하는 것 같다.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무례해질 뿐인 것 같아 얼굴이 굳을 때가 있다. 공부도 안 하고 버릇만 없어지는데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 당장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혹은 내가 정말로 지독하게 끔찍하게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이해한다. 지금의 나도 딱 내 자신에게 그런 기분이거든. 교재 연구도 부실하고 울증 때문에 자꾸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기는 커녕 상황을 더욱 나쁘게만 만드는 내가 저주하고 싶을 만치 밉거든.
잠을 자기도, 일어나기도 버거운 나날.
..내가 사라져 버려야 만족하겠니... 싶어지고 마냥 사라져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럼 그 가학성이 온전하게 충족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