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작가가 연재하는 'SF, 미래로 가는 이야기' 칼럼에 나오길래. 관심이 생김.
http://hankookilbo.com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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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인가 90년대 쯤에 나온 책이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들이 사회현상화 하던 때였던 듯. 그를 바라보는 두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의 대담집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최근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저서가 재조명되면서 한국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회학자인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검색하니 우에노 치즈코 관련 서적이 이 책 밖에 없어서 일단 빌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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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을 돕는 심리상담센터를 오랜 시간 운영해 온 노부타 사요코와, 페미니즘 저서로 유명한 우에노 치즈코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둘러싼 사회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방식.
30대 비혼 여성들은 왜 비혼으로 남았는가, 성과 사랑에 대한 그들의 사고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무엇이 그들을 비혼으로 이끄는가, 비정규직 비혼 30대 여성,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당시 일본에서) 그들을 끼고 사는 일본의 베이비부머들, 부모세대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뿐만 아니라 결혼을 둘러싸고 사회에서는 어떤 성역할을 양성에게 밀어붙이고 있는가-여자들은 결혼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여성들을 혐오하는 남성들은 왜 나타나는가, 폭력적인 결혼생활을 접지 못하는 여자들은 왜 그런가, 등등에 대해 의논한다.
그런대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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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후에 읽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겹쳐지는 감이 있기는 한데, 몇 가지 추려보면 이런 얘기들이 나옴. (나머지 주제들은 잘 기억이 안 나서 못 적겠다.)

-남성이 진정한 남성이 되려면? 연애 못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남성들을 진정한 남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실은 여성이 아니고 남성공동체이며, 남성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일종의 자격조건 같은 것으로 굳어져 왔음. 실상 오래 전부터 남성공동체의 서열에 맞춰 여성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었고, 중매결혼이 있던 시기까지는 남성들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결혼하여 아내를 소유하고, 번듯한 남성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었음. /여성을 소유하지 못한 남성, 동성애자 남성들은 진정한 남성이 아닌, 여자 같은 존재로 배척당하며, 연애하지 못한 분노를 일부 남성들이 폭력이나 분노로 표출하는 것은 이런 연유. 그들은 여전히 여성을 일종의 배부받는 자원 정도로 여기고 있음./ 연애하지 못하는 남성들(경제적으로, 외모적으로 등등 경쟁에서 밀리는)을 사회적으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일부 남성들의 주장이 일본에서도 수십년 전부터 이슈를 불러 일으킨 바 있었으나, 저자는 여성의 경우 이슈조차 되지 못하던 사안이지 않으냐, 아직 선택받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며..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느냐고 제안.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여성혐오
남성에게는 여성 그 자체보다도 남성공동체의 인정이 더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또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여성이 불가피하게, 수단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관계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여성혐오.

-30대 비혼, 비정규직 여성을 바라보는 대담자들의 시각 -부정적인 듯.
보수적인 성 관념과 자유로운 성 관념 사이에 낀 세대.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 세대. 30대 비혼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 경제적으로 부를 쌓은 베이비 부머 부모와 함께 안락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을는지 몰라도, 부모의 부가 끊기고 더 이상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버틸 수 없게 되면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비혼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맡아 개호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복지의 하위계급으로서 배척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 일본의 비정규직 비혼 여성 30대(당시)들은 결혼 전의 유예로서 비혼을 택하는 경향이 있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태이기에 위험. 베이비부머들은 이런 상태를 두고보고 있는데, 딸이 자신들의 뒷날을 개호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심 때문이기도 함(현 2,30대 한국의 비혼여성들과는 다른 듯)

-결혼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
남성은 결혼을 통해 남성공동체로부터 번듯한 자격을 갖춘 진정한 남성으로서 인정받게 됨. 여성의 경우 남성으로부터 선택받음으로써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게 됨. 어떤 조건의 남성과 결혼하였는가는 여성들 사이에서 일종의 척도로 분류되기도. 여성이 이런 '여성으로서의 가치증명'을 남성으로부터 수동적으로 부여받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롭게 비혼을 택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 이야기 하고 있음.

-결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유
결혼을 '자신의 선택' 이라고 여기고, 남편을 '자신이 선택한 남자'로 '내가 없으면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음. 일종의 자존심. 이런 여성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행한 결혼에서 벗어나면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자립하지 못한 상태의, 초라한 중년 여성'으로 남는 것이 두려운 탓에, 가정을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가정 주부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함.
(학습된 무기력 이론과는 또 다른 이야기라 신선한 감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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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0대 비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것도 컸는데, 대담에서 다룬 수십 년 전의 일본 상황은 현재와는 좀 맥락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다.
최근의 여성들은 이 대담집 속에서처럼 부모가 지닌 부의 그늘 아래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며 미래에 대한 대책 없이 결혼 전의 유예로서 비혼을 한다기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비혼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현재와 노후를 대비하고자 하는 흐름이 더 크다고 보는데 말이다.
반면 결혼과 관련된 화두는 꽤 흥미롭게 읽었다. 연애나 결혼을 통해 두 성은 어떤 것을 노리는가-말이다. 진정한 남성이 되는 자격조건을 얻기 위해, 진정한 여성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것. 사회 속에 녹아들고, 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 두 대담자는 당시 그런 수동적인 인정받기는 필요없다고 외치는 비혼자가 참 드물거라고 아쉬워했지만, 요즘을 보면 인정따위 없어도 된다고 외치는 자유로운 비혼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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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불거지는 요즘, 덕분에 읽을 거리가 참 많아졌다고 느낌. 우에노 치즈코 이야기는 자주 접했고,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이라 읽어보겠다고 샀다.
'결혼제국'의 이야기와 많이 겹치는 내용도 있고 한데, 좀 논문스럽게 딱딱한 면도 있고 내 입장에서는 너무 깊이 들어간다 싶은 면도 있어서(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은데..일본신화 속의 여성혐오적 텍스트라..)적당히 흘려 읽을 부분은 흘려 읽음. 기억나는 몇 가지만 거칠게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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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의 갈등에 대해 조망한 부분.
이건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얘기기도 한데. 아무튼 인상적. 시대가 변하고 여성 역시 사회진출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어머니들은 딸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한다는 것. 아들처럼 출세해서 좋은 직업-아직 유리천장도 있으니 조직적인 회사보다는 고소득 자영업직을 구하기를 바라는 한편, 딸로서 좋은 혼처로 시집가서 여성으로서의 가치증명(어쩌면 어머니의 위신을 세워주는 제2의 인생?)을 해 주기도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후 역시 며느리보다 딸이 돌봐주기를 더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아들보다는 딸을 더 원한다는 말들이 별로 달갑지 않은 게 어렴풋이 이런 것들을 감지하고 있던 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음.. 아무튼 태어날 때부터 선별당하던 것 보다 나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딸들이 요구받는 것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은 맞는 듯. 주부가 요구받는 것들이 많아진 것과 마찬가지. 남성과 다름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로서나..돌봄을 행하는 여성으로서 동시에 기대를 짊어지게 된 것.

남성의 존재증명과 연애
예로부터, 진정한 남성으로서 남성공동체에게 인정받는 것이 남성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인정을 받기 위한 자격요건 중 하나가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었고. 여성을 소유하는 것, 여성과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것이 그래서 남성들에게는 중요해진다. 예전에는 남성공동체의 위계질서를 지키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던 여성이, 혹은 중매를 통해 어떻게든 얻어지던 여성이 구하기 어려워지고,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측면이 생기면서 아직 세태에 적응하지 못한 남성들이 '경제적으로나 외모적으로 딸려서 연애시장에서 인기 없는 남성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혹은 '여성들이 따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기적이다'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일본에서도 자주 있었다.(최근에 이슈가 된 책이기는 하지만, 십수년 전에 씌어진 책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외모적으로 딸리는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이슈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장애가 있는 남성의 성욕 해소에 대해서는 이슈가 되지만 반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도 않았고 말이다.(그 경우 성적인 권력관계나 힘의 차이가 너무 또렷해서 성사되기도 힘들겠고-되려 여성장애인의 가족들이 불행한 사태에 대비해 불임수술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니 말 다했지..)
여성 역시 오랜 세월동안, 결혼을 통해 남성으로부터 선택받고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증명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남성의 선택을 놓고 경쟁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때문에 여학교 내 문화와 같은 여성들간의 문화는 양성이 섞여 있는 곳의 문화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은 또 달라지는 추세가 있었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남성들은 소유하기 적합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만만한 여성을 더 선호하고, 여성들은 빼어난 외모보다는 수더분한 외모의, 털털하고 자조적인 농담을 하는 여성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던 것이 사실.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90년대 화제가 되었던 사건. 당대 처음으로 여성 역시 앨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 가능해진 세대. 그녀는 왜 억대 연봉을 받는 조직의 핵심, 엘리트였음에도 밤거리를 쏘다니며 헐값에 몸을 팔았는가. 그에 대해 여러 르포와 소설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우에노치즈코는 사건을 뒤집어 생각해보려 한다. 엘리트코스를 처음 뚫은 여성에 대한 세간의 어마어마한 기대와 거기서 오는 책임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들의 자리 중 '여성에게 허락된 자리'만을 얻을 수 있었던, 일반적은 OL과 다르다고 분류되었으나 실제로 모호한 대접을 받던, 결혼시장에서는 꺼려지는 존재가 되었던 여자. 저자는 그녀가 남성들이 꾸려놓은 여성혐오적인 사회의 스트레스로 인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느린 자살과도 같은 상태였으며, 매춘을 통해 남성들에게 복수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헐값, 또는 무료로 남성들을 받아들이고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메모한 것은 것은 그녀 역시 그 남성들의 가치를 그렇게 매겼다는 것. 여성을 인위적으로 자신보다 낮추지 않으면/혹은 자신의 것으로 하나 이상 소유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얻지도, 욕구해소를 보장받을 수도 없는 미약한 존재인 남성들의 모순을 자해의 방식으로 비웃은 것이라는 것이다.
(앞장에서 원조교제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다루고 있었다. 남성들이 너무도 원하기에 값이 뛴 어린 육체를, 스스로 매춘이라는 방식으로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자해의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세상에 복수하는 방식을 취하는 여자아이들이 많다고)

오랜 여성혐오의 역사
일본 신화에서, 이런저런 일본문학작품들에서, 춘화 우키요에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천황가의 대 잇기 풍습에서, 드라마 속 대사에서 등등. 남성중심적인 공동체 구성의 역사, 성녀-어머니-부인(가부장제속의 여성)거나 창녀-미혼여성-애인(가부장제밖의 여성)로서 갈라지며 끊임없이 정형화된 객체로서만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끊임없이 엿볼 수 있고..최근에도 '나는 아니니까' 라며 일부의 여성들을 타킷화 하여 악녀로 그려내고 전락시키는 류의 여성작가 문학작품이 화제가 되는 등 남성에 의한, 여성 자신에 의한 여성혐오는 뿌리 깊은 역사를 다져온 바 있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고, 그를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이 저자의 말.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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