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글'에 해당되는 글 221건

  1. 2021.02.03 오랜만.
  2. 2019.10.12 제미니 맨. 2019.
  3. 2019.10.12 여성인권영화제.2019.
  4. 2019.10.09 2학년 수업참관.
  5. 2019.10.07 연휴
  6. 2019.09.24 나한테 집중.
  7. 2019.09.22 수포자 신분세탁 프로젝트. 2016.
  8. 2019.09.16 돈이란.
  9. 2019.09.15 어른되기
  10. 2019.09.09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2019.

오랜만.

일상 2021. 2. 3. 15:05

올해 1월 이후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블로그인데. 오랜만에 들어와보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온갖 인간관계에 푹 담궈져 있다가 나왔고. 정신 없이 바쁘고 잠을 쪼개가며 책도 써 보고.

주변에서는 천박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싶지만 돈과 경제기사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작게 나마 스터디 모임도 하고 있고. 

발전이라면 발전이고. 피곤함이 늘었다면 늘었고.

 

학교를 옮기고 나서, 그간 내 일상을 지배하다시피하던 학교 이슈에서 많이 벗어나기도 했다.

전처럼 수업준비를 위해,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깨어있는 일이 좀 줄었다.

선배 선생님들이 학교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몇 발짝 떨어져 관망하면서 이렇게 평온할 수도 있구나..

저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구나.. 하고 있달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은 부드럽고 잔잔하다. 두루두루 서로 마음다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런 아이들은 처음 만나보았다. 속 썩이는 사건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납득 가능한 감정들이어서. 사는 건 원래 재미 없고 내적 동기를 찾기 힘든 일이니까, 그럴 땐 아이들도 때때로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려니 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원하는 것과 반하는 거대한 강요의 흐름에 이리저리 치이며 사는 것이려니..

무기력하고 짜증내는 자아를 어떻게든 부둥부둥 일으켜서, 희미하게나마 즐겁게 느껴지는 실마리를 찾아 그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그 아이들도 조금씩 터득하게 되겠지.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내가 준비하는 일련의 수업들이나 활동들이 그 과정을 좀 수월하게 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올해는 조금 뻔뻔하다 느낄 정도로 힘을 많이 빼고 지내서.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제 2020학년도도 마무리를 앞두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집착도 많이 버렸다. 나는 어중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가고 있다.

아주 좋은 교사도 아니고, 아주 악랄한 교사도 아니고.

좋은 친구도 아니고, 나쁜 친구라기엔 어중간하지.

아무튼. 그렇다. 모두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 나는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적당히 나쁜 사람이고.

 

기존에 만난 이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지니려고 노력은 한다.

그들도..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저, 되는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이들이 좀 있었을 뿐. 

그 양반들도 사는 게 그냥 힘들었을 것이다. 힘든 삶이니까...그러니까 뒤틀리는 거다.

뒷담은 까겠지만. 더 만날 일 없는 이상은 안쓰럽게 여기고 있다. 

다들 고생한다. 잘 견디어가기를. 그래도 종종 웃기를. 괜찮은 기억 한두 개 정도씩은 나누고 가기를.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진심으로 그렇게 바란다.

아예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고. 진심으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미니 맨. 2019.  (0) 2019.10.12
여성인권영화제.2019.  (0) 2019.10.12
나한테 집중.  (0) 2019.09.24
관심사.  (0) 2019.09.07
오랜만이네.  (0) 2019.09.01
Posted by 에크멘
,

제미니 맨. 2019.

일상 2019. 10. 12. 14:20

윌 스미스 나오는 영화. 윌 스미스가 1인 2역하는데, 50대와 20대를 연기했다고-기술력을 잘 활용한 영화라고 해서 궁금해서 보러갔다.

 

짧게 평하자면. 초반 액션씬은 꽤 신박했다. 특히 오토바이씬. 거기까진 괜찮았음.

다만 영화 속 설정이 지나치게 단순함. 조직이 은퇴한 조직원을 죽이려는 의도란 것도 신통찮고. 거대 조직이라는데 별로 설득력이 느껴지는 규모도 아니고. 미친인간은 너무 단순해서 재미없고. 클론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그리는 씬도...그냥 그러함. 후반에 50대 주인공이 20대 클론에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조언하는데..그냥 꼰대스럽다.

초반부터 이어지는 윌 스미스와 여 조연의 썸은 불편하다. 50대와 20대의 썸이라니. 아니아니. 그냥 여자 조연의 모습이 아이캔디 이상이 아니어서 더 시무룩해지는 것도 있었지.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전개를 보진 않았어서 영화가 그나마 양심있다고 생각했음. 

중국자본이라 그런가 중국인 배우도 한 명 나온다. 착하고 재미 있고 의리 있는 중국인 친구. 음.

 

콰이가 물어보길래 그냥 굳이 볼 것 없이, 유툽에 오토바이 액션씬만 올라오면 그거나 좀 보고 말아도 될 것 같다고 그랬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  (0) 2021.02.03
여성인권영화제.2019.  (0) 2019.10.12
나한테 집중.  (0) 2019.09.24
관심사.  (0) 2019.09.07
오랜만이네.  (0) 2019.09.01
Posted by 에크멘
,

여성인권영화제.2019.

일상 2019. 10. 12. 14:11

지난 연휴 때 콰이랑 같이 다녀왔다. 압구정 CGV. 서울숲이랑 가까운 곳.

귀찮아서 미루다가 기억으로 남겨놓으려고 쓴다.

이날 공연 관람 일정이 잡혀있어서(세종문화회관 말러) 13시 언저리에 하는 단편 시리즈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미니 미스. 난세포. 앤드 유. 빼라는 놈을 패라. 네 편을 봤더랬다. 20분 남짓의 짧은 영화들이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우먼 인 할리우드나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같은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지.

다음에는 혼자서라도 기회가 있으면 영화제 같은 곳은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니미스는. 콜럼비아였나. 라틴문화권 영화였는데. 10살 미만의 여자아이들이 미인대회에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유치원 아이 때부터 여성적인 것의 특징을 캐치하고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동화홀씨 모임에서도 들었는데-그래서 한 번 씩 놀이를 시켜주신다는 말도. 3살 무렵부터 성별 정체성을 발달시킨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던지라, 결국 그것도 주변 어른들을 남/녀로 특정짓고 자신이 해당하는 성별의 어른을 따라하려는 움직임이지..하고 속으로 넘겼는데. 이 영화가 다루는 부분이 그거다. 여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성스러움을 좇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런 압박을 받고 순응해 나가는 것인가.

어떻게든 미인대회에 딸을 출전시키고 상을 타고 싶어하는 엄마들의 지극정성. 껄끄럽고 귀찮은 의상을 참아가며 입는 아이들. 어른들 하는 대로 얌전히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엉뚱하게도 보라색으로 입술을 발라달라고 하는 아이의 모습 등등.여자아이라면 당연히 이래야지~의 틀에 자기 아이들을 열심히 욱여넣는 어른들이 있고. 어른들의 예상과 다른 선호를 갖고 행동하려 하지만 어른들의 애원과 부드러운 훈육의 손길에 의해 차단당하는 아이들이 있고. 여러 번 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이미 온갖 화학약품을 머리와 온몸에 바르고 까끌거리고 조이는 드레스를 입고 워킹하는 데에 익숙하게 행동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아이는 매 과정에서 버거움을 나타낸다. 온 건물에 울리도록 으르렁대는 비명을 지르는 꼬맹이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성중립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꼭 필요하겠다 싶고. 불필요한 과소비와 시간소모를 불러 일으키고 행동을 제약하게 만드는 의상과 몸을 혹사시키는 다이어트에 집착하게 만드는 사회의 여성성 압박에 대해 어른 여성이자 멘토로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저항할 필요가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아용 화장품까지도 팔아먹겠다는 온갖 광고들이 나오는 요즘 작태를 보면, 중딩이 된 아이들이 벌써부터 화장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속이 복잡해진다.

 

 

난세포는 영미권 영화였는데. 낙태결정을 앞둔 여성에게 가상현실기기로 온갖 if를 들이밀며 선택에 부담을 주려는 시도들이 나온다. 낙태가 가능한 시기인 6주 이전까지는, 수정된 태아는 그저 세포에 불과할 뿐이다. 무척 작은 크기에, 통각도 느끼지 못하는.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은 여성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아직 인간으로서 완성되지도 않은 난세포와 태아에 대해 이미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여성의 안전과 복리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두는 것 같다. 한국사회도 결혼하지 않는 것, 출산하지 않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죄책감을 강요하는데. 정작 정자제공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기이한 일이고. 가부장적 결혼 제도 밖에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인 편모가정 아이들이나 고아들에 대한 복지도 별반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 역시 웃긴 일이다. 그건 그냥 '니들은 걸어다니는 자궁이고, 가부장제를지탱하는 하수인이다. 가부장제 밑에서만 아이를 낳으라'는 메시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드 유. 미국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을 그렸다. 성범죄수사대 SVU를 1시즌부터 정주행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해 다루던 에피소드들도 몇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내 학생클럽들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정재계에서 날리는 부모들을 둔 자제들이고, 이런 클럽 행사에서 무수히 많은 신입생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곤 하지만 학교측은 가해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아 유야무야 묻히곤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2010년대가 되어서도 크게 나아진 게 없던 모양이다. 학교측은 성폭행 사건에 대해 심리할 때 가해자의 인간성을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자 편의 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와 평판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참고하는가 하면, 가해자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가해자가 과거에 어떤 인간이었건, 성인군자였건 아니건 그가 저지른 범죄 자체는 끔직한 짓이고 처벌받는 것이 당연한데도. 과거의 행적과 주변에 대한 평판이 범죄 처분에 영향을 발할 수 있게 한단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그래서 가해자는 여전히 피해자를 조롱하고, 부러 마주치는 짓도 하면서 무난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피해자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있고. 다행히 그녀는 용기를 내고 스스로 피해자들을 규합하고, 지지해 주는 학생들을 만나 함께 교내 성폭력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한국은 원래 개차반이지만, 미국은 그래도 훨씬 나아져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저기도 미친 나라구나.. 당연히 피해자의 편에서 위드 유 하겠지만, 저건 진짜 정책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피해자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안타까웠다.

 

빼라는 놈을 패라. 독일 영화였는데. 고도비만 여성들이 힙한 스타일을 과시하는 화면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스러운 영화였다. 비만여성들은 또 그 나름대로 사회적인 압박을 받을테지. 아름답지 않다,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로 재단당하고. 수군거림받고. 그래서 그런가. 원하는대로 예쁜 옷을 입고 화장할거야! 당당하게 뽐내며 살 테다! 하는 자기주장 가득한 영화였다.

하지만...아름다운 여성이다, 천상여자다 칭송받는 것도, 너는 여자도 아니다, 추녀다 손가락질 받는 것도. 결국 프레임 안에서 검열당하며 사는 건데. 거기 휘둘리면서 신경쓰느니 어떤 체형과 외관을 갖추든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성성을 무시해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일 아닌가. 굳이 돈 들여가면서 반짝이 드레스 사 입고, 피부에 좋지도 않은 화장품 사들여서 얼굴에 그림그리고 할 필요 없잖나.. 좀 씁쓸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  (0) 2021.02.03
제미니 맨. 2019.  (0) 2019.10.12
나한테 집중.  (0) 2019.09.24
관심사.  (0) 2019.09.07
오랜만이네.  (0) 2019.09.01
Posted by 에크멘
,

광주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수업참관 일정을 진행했다.

 

1. 우리 학교.

 우리는 면 소재지에서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6학급 학교이고, 30명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초임발령자이고 5년 이하의 저경력 교사다. 이 학교 교사들이 고민하는 것들을 크게 아우르자면 대충 이렇다. 

ㄱ. 돈 처리: 시골 학교로 쏟아내려오는 수천 만원 사업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홍보를 위한 공사와 체험학습을 선호하는 학교장의 의도를 적당히 거스르지 않고.)

ㄴ. 생활지도: 학부모와의 연계 자체가 불가능한 소외 계층 아이들의 돌발행동(도벽, 막무가내로 떼 쓰기 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들은 정신과 진료, 상담을 받고 있음에도 변화가 더디다. 교사는 다른 학생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학생들을 무섭게 눌러 통제해야 하는가, 사랑을 표현하며 끌어 안아야 하는가. 군대식 통제를 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감을 느끼고 자유를 허용하는 이들도 있으며, 이들은 서로 반목한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서열 정립'에 대한 거부감과, '애들을 버릇없게 만드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ㄷ. 기초학력 신장: 읽기부진으로 교과서 지문 자체를 이해하기도 어려운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성취기준에 도달할 것인가. 교사들 중 일부는 쉬는 시간도 없이 꽉 잡고 전 교과서 2회독 수업을 하는 이도 있고, 매 시간 복습하고 격일로 수학 복습 숙제를 주고 단원평가를 치르고 남겨서 가르치는 이도 있고, 아이가 스스로의 언어로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려는 이도 있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ㄹ. 각종 이해관계로 인한 두통: 각종 승진 점수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 승진에만 집중하고 수업에 신경쓰지 않는 선배들, 부장점수를 놓고 다투다 나간 선배들에 대한 실망. 기타 가산점을 둘러싼 다툼과 오해.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서로 뾰족해진 경우도 많고. 점수는 받되 맡은 일은 타인에게 미루는 선배로 인한 갈등도 지금은 나간 선배들이 있을 때는 굉장히 심했다. 원거리 출퇴근이 어려운 교사들 특성상 한정된 수량의 관사를 둘러싼 치졸한 눈치 싸움과 물밑 정치와 눈물들을 목격하기도 했고. 관리자를 둘러싼 편가르기나 욕설이 오가는 상황도 보았고. 여성 교사를 동등한 동료로 보지 않는다고 느낀 상황(불필요하게 감정을 실은 다그침, 부적절한 접촉과 발언 등)로 인한 균열도 일부 있었고-대충 뭉개며 지나간 것도 있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 부분도 있고. 사과받은 것도 있고. 나 역시 반감을 가진 경우 뾰족하게 굴었기 때문에 별반 다를 게 없긴 하지만. 수년 간에 걸쳐 스트레스가 많았던 건 사실이라서. 나를 포함해 다들 살짝 미쳤을 수도 있지.

 

고민은 있으되 교내의 다른 교사들과도 소통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 관심사와 의견이 다르며, 지역 특성상 코드가 맞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꾸리기도 어려워서. 보통 이런 고민들은 학교 교사들 각자만의 고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수업 준비 자체에 공을 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 어떻게 보면 각자 도생하는 학교다. 이야기 시작도 쉽지 않고,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도 쉽지 않고, 항상 답은 없고.

 

올해 연구부장 자리를 고집해서 맡은 데에는, 매번 학교의 서열 피라미드 저 아래에서 물부장을 맡으며 점수를 양보하니 어쩌니 하며 치이는 데 대한 피로 탓도 있었지만. 연구부장 감투 쓰면 자연스레 불려 다니는 교육청 주관 연수에 다니면서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도 만나 그쪽 사정들도 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솔직히는 교육청에서 나오는 돈을 마음껏 써서 내가 듣고 싶었던 연수들을 듣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컸다. 나 혼자 찾아 듣는 연수, 학교의 다른 샘들과도 함께 듣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일을 추진한 것은 나의 독단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소한 나 자신에게라도 울림이 있는 일이라면 나쁠 것 없지 않나. 그리고 신규 선생님들에게도 좋은 기회일 것 같았다. 적어도 나는 엉망인 교실을 부여잡고 울던 신규 시절, 이런 자리를 원했으니까.

 

 

2. 수업참관

보통 우리학교에서의 수업참관은 담임들이 모여서 수업을 보고, 수업설계한 부분들 하나하나의 의도를 묻고, 잘 된 점에 대해 칭찬하고, 아이들의 학습목표 달성을 위해 해당 교사가 어떻게 접근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는 각자의 아쉬움을 이야기함으로써 끝나곤 한다.

-도입, 전개, 정리 시간배분의 적절성과 충실도=정리가 잘 안 되어서 학습목표 달성이 어렵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구 활용이나 컨텐츠의 수준이 학생 수준에 잘 맞지 않거나 불편한 것 같다=어떻게 맞출 것인가.

-학습목표-수업-평가가 일관성이 없거나 연계성이 모호하다=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지도안 작성시 주의해야 하는 오류=다음에는 어떻게 써야 되나.

등등.

'~했으면 더 좋았겠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다'는 분명 일반적인 수업에서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캐묻듯이 지나치게 세세하게 흘러서 이미 흘러간 수업인데 어쩌라고,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거나 트집잡기로 흐르기도 한다. 실은, 지난 수업공개 시즌이 좀 그랬다. (다른 이의 수업참관으로 화제가 넘어간 후에도 이전 수업자의 수업에 대해 이미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를 또 꺼내고, 활동 하나하나 '왜 그렇게 했어?' 하고 의도를 묻고, 그에 대해 아쉬운 부분을 계속해서 지적하는 과정에서 이전 수업자는 자연히 방어적으로 흐르고, 정작 수업내용을 공유하고자 앉은 수업자는 수업나눔을 진행할만한 시간을 10분 남짓 남겨 놓기까지 계속 외면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이런 행태가 수업 개선을 위한 지적이라고만은 보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했다. 수업 전에 다함께 논의하며 나온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수용해 만든 지도계획이었는데, 의도에 대해 그렇게까지 캐물은 것도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했다. 물론,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좀 더 깐깐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도. 이전에 둘 사이에 큰 소리가 날 만한 갈등이 있었던 뒤라 그런 상황이 더더욱 불편해져서, 바보같은 행동인줄 알면서도 거북스러워서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교원들 사이에서 학생을 보는 시각에 대한 공유, 허용 범위에 대한 것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진행은,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지적을 수용해서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도 적다.

우리끼리 융화하기 어렵다면, 외부에서 흘러온 완전히 새로운 물결을 경험해 보고 각자 나름의 충격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승진에 아웅다웅하는 좁은 지역, 고민을 고민으로만 끝내는 우물에서, 더 넓은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교사로서 매일 아이들과 만나는 나는 어쩌고 싶은가...새로운 관점에서 세세하게 함께 살피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이의 눈으로 수업과 관계를 바꿔 바라보는 경험.

이번 컨설팅 연수는 그런 의도였는데. 다른 샘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됐다.

 

새삼스럽게 '앗' 하고 와닿았던 이야기들.

1. 교원으로서의 전문성은, 아이 탓, 부모 탓에서 그치지 않고,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는 전제.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끊임없는 푸념-좌절의 악순환을 끊기 힘들다. 어차피 안될거야-힘들어-어차피 안될거야. 교사로서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시도해야 한다.

2. 가르침 VS 배움

--교사가 가르침을 주입하고자 노력해도, 항상 빛을 보긴 힘들다. 학생은 스스로 배움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배움을 선택하도록, 수업에 직접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수업놀이를 재구성하는 것도 그 일환.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중간중간 수업 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수업 내용 정리와 내면화를 위해 직접 조작할 거리, 활동할 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 수업 중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담임은 소극적인 아이들의 참여, 산만한 아이의 집중을 염려했다. 발표하지 않는 아이. 대답을 꺼리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수업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산만한 아이가 집중할만큼 몰입도 높은 수업이 되려면 어떡해야 할까.

--평균의 종말; 교사는 평균적인 아이를 상정하며 수업하지만, 그 평균적인 상에 완전히 일치하는 아이는 사실 한 명도 없다. 학생들이 멍때리지 않고 배움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학생의 수업참여도를 높이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즐거움을 도입하고,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상태를 파악해서 지원해주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한다. 보충학습과 수월학습.

--수업 중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을 규칙으로 지정해도 참여도를 높이는 데에 효과가 있다. 무조건 돌아가며 전원 발표가 원칙이라든가. 수업놀이 상황에서는 질서와 정리가 전제되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다거나. 보상 상황은 경쟁이 아닌 협력상황을 전제로 하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에게 보상을 준다거나. 잘한 학생은 다른 이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보상: 경쟁보다는 협력상황시 보상. 교사의 점수계산이 필요하고, 갈수록 큰 보상을 하게 되는 누점제는 지양. 보상이 통하지 않는 경우에는 참여를 끌어내기 힘들다. 굳이 보상하려면, 수업시간 안에 보상을 끝내도록 하되,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하고, 잘하는 학생이 여러 번 보상받게 되면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갈등을 줄이기 위한 규칙을 미리 고안하여 약속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4. 교사의 말과 행동-이 부분은 미처 다 나누지 못했음.

새삼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서는 발문을 짧게 끊고 벼려서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하고, 아이들이 머리를 굴릴 수 있게 열린 발문을 하는 연습을 자주 해야겠지, 생각했다. 산파술같은 수업. 그리고 그 산파술에 가능한 한 모든 학생이 이해하고 반응하여 답하는 수업. 일부만 발표하지 않게 하려면. 써 보게 하고 돌아가며 얘기해야 할까. 발표하지 않은 학생들을 지적해야 하나.

5. 컨텐츠 활용. 수업목표, '마음을 전하는 글 쓰기'와 관련지어

+그림책 및 문답 활용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복사본을 준비했다. 왜 흑백본인가, 페이지 넘길 때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내 생각엔 분명 태블릿PC도 고려했을 것이라 본다. 어쩌면 태블릿PC 화면을 넘기다 버튼을 잘못 눌러 꺼버리거나 딴짓할까 염려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전하게 인쇄물로 준비한 것일지도. 컬러복사 가격 상 여러 개 준비하기 힘드니까 흑백으로 하지 않았을까.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다면 책을 여러 권 사서 개인/모둠별로 보며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그림책 '점' 자체가, 3학년 이상이 배우는 도덕 교과서에 등장했던 기억이 있다. 직접적인 표정이나 마음 변화가 씌어있지는 않은 책이라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그림을 보며 순간순간의 마음을 잘 읽어내더라.

-그림책을 아이들 1회, 교사 1회 두 번 읽고, 내용과 마음파악을 위해 처음부터 한 번 더 훑어보며 질답했다.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도 나름대로 큰 소리로 열심히 읽었다. 원래 소리내어 잘 읽었는지, 담임의 격려와 치료효과 덕인지 궁금했다. 다같이 돌아가며 읽는 읽기 열차 활동이 좋아보였다. 선생님이 한 번 더 읽으며 문자와 발음을 서로 매칭하는 연습을 한 번 더 해 보게끔 한 것도 아직 줄글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좋은 활동.

-앉아서 발문 듣고 일부 아이들이 대답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모든 아이들 대상으로, 좀 더 활동적인 시간을 제공하자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봤다. 읽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멈춰 교사가 상황+마음파악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아이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발표하고-시간흐름과 마음변화를 정리하기 위해 학생들이 그림만 보고 직접 순서를 배열하며 한 눈에 조망하는 활동을 넣었어도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또 그림 카드 내지는 학습지를 준비해야 하는 고충이 있으니.

-마음을 전하는 글이기에, 주인공이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 막막해 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주는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언급하고, 편지 예시문이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전하는 글에서는 '구체적인 상황'과 '마음을 표현하는 낱말'이 들어가야 한단다~하고. 베티의 입장에서 감사나 용기를 전하는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았겠다. 소재에 대한 고민 시간을 줄여주니까. 잘 쓰는 친구에게는 수월과제를 제공해도 좋았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담임 샘은 쓰기활동이 어려운 친구에게는 따로 미션을 주고자 했다.

+태블릿PC활용.

수업 중 태블릿PC활용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더라. 적절했다고 생각.

6. 기타-학급 생활지도 전반-교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 안전과, 학교에서 꼭 해야 할 것들, 필요한 것들을 위해 단순하지만 명확한 '규칙'을 초반에 미리 지정하고 '학급회의'를 통해 끝까지, 자주 상기시키며 관철해 나가야 함. 그렇다면 굳이 윽박지르거나 자주 개입할 필요가 없음.

-- 교사 홀로 감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면 상담, 심리치료, 학교 자체적인 규율 등 적절한 지원책 마련.(한국에서는 법률이나 학교 내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이 크긴 하지만.) 나머지 교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

-- 학생 개개인의 소속감(학급에 기여하는 기회주기)과 자존감(유능감,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채워나가기 위해 살펴보고 노력할 것.

-------------------------------------------------------------------------------------

'일지 > 일지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이란.  (0) 2019.09.16
어른되기  (0) 2019.09.15
학부모 상담. 독서 교육.  (0) 2019.09.09
Posted by 에크멘
,

연휴

카테고리 없음 2019. 10. 7. 00:46
개천절과 재량휴업일을 기해 간만에 콰이를 보러 다녀왔다.
나와는 일하는 분야도. 관심사도 다르지만. 매번 많이 챙겨주고 배려해주어서 미안할 정도로 고맙다. 그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소비에 관해서는 워낙 내가 짠돌이라서 더더욱.
누군가와 함께 즐기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소비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겠거니...

함께한 것들을 좀 떠올려보기로.
안 그러면 까먹으니까.
일단은 영화 두 편.
공효진 나온 가장 보통의 연애.
-소소하게 웃음이 터지는 코믹한 스토리였는데. 한편으로는 남작가가 쓴 시나리오겠거니 했다. 어떻게든 둘을 엮으련다, 하고 억지스럽기 의도한 썸 장면들이..좀 거슬렸다. 내가 보기엔 그냥 팀원 하대하고 상사와의 공사구분도 잘 안 되는 막사는 술꾼이더만 어떤 점에서 여주가 남주에게 매력을 느꼈는지 미지수. 자기 절제도 안 되고 무례하기 짝아 없는 이런 남자와 얽히고 싶지 않다면 매몰차게 무시해야 하는데. 이 여주는 자꾸 딱하다느니 안쓰럽다느니 하며 의뭉스럽게 여지를 준다. 남자가 건네는 찔러보기에 자꾸 반응을 해 주어 결국 얽힌다. 여주에겐 매력으로 느껴질만한 것들?이 뭐였을까. 한 여자에게 집착하는 순애보? 내가보기엔 자기가 건네는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자기연민이더만. 무시당한 데 대한 분노.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징징거리고. 동시에 다른 여자에게 자꾸 들이대며 비비는 인간. 매력이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은 관객이어서. 전체적인 감정선이 공감이 안 됐음.
분위기 조성해 준답시고 탕비실에 둘만 남기고 밀어붙이는 회사사람들이나..꼬리치니 운운하며 여자의 적은 여자, 식으로 사내 뒷담화를 그려낸 부분도 그렇고. 먼저 매력 있다며 들이대는 여자, 원나잇 등등. 성깔있고 쿨하게 여주를 그려내려는 부분들도 왠지 거슬렸는데. 사람을 고용해서 집안을 훼손하기까지 하는 극악의 남친을 겪었던-어떻게보면 안전에 대한 위협을 심하게 받은 여주가 별반 건실해 보이지도 않는 남주와 얽히는 과정에서 리스크에 대한 더 신중한 고민들이 없어 보여서 였던 듯.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 탔다는 호아킨 조커.
-인셀들의 히어로. 찌질이들의 화풀이와 미친짓을 세상에 대한 분노로서 정당화해주는 서사..라는 말들에 공감.
가난과 학대, 소외, 능력부족. 자아실현에서의 좌절. 범죄자들이 생기기 참 좋은 환경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범죄 자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하고, 교육받고자 하는 의지도 크게 없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도 갖추지 못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이 타인을 잘 꿰뚫어보고 세심하게 조율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코미디에 뛰어든다니. 실패는 예정돼 있었다고 할 것이다.
좌절은 딱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방향으로 진로전환을 하는 계기로 삼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그 정도로 성숙한 인간은 못 되었지.
아서가 욱해서 생각없이 행한 많은 것들이. 안 그래도 계급갈등으로 부글대던 고담에서 일종의 트리거로 작용하면서. 원래 답 없던 도시였으나 고담은 더욱 더 막나가게 된다.는 이야기.
잔혹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초딩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있었다. 어디 맡기기도 애매해서였을까. 좀 염려스러웠다.

영화 속의 조커는 닼나라에 나오는 조커에 비해 심히 덜떨어진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 있을법한 또라이라 모방에 대한 우려가 이해가 간다.


공연.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말러가 20대 후반에 작곡한 교향곡을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서울 유스 필하모니 연주로 감상.
말러는 별로 자주 들어보지 않았고, 난 확실한 멜로디 라인이 있는 쪽을 더 좋아해서. 따지자면 고전주의 작곡가들이나 러시아 작곡가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해설을 들으면서 듣다보니.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말러는 교향곡의 4개 악장마다 주변 음을 차용하거나 특정 음을 부각시키거나 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요소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식으로, 각각 완성된 세계로서 교향곡을 작곡한다고 하는데.
라, 음을 여러가지 악기의 다양한 주법으로 연주해 공간감을 살리는 한편, 마을 주변에서 들리는 군악대 소리나 아이들의 놀이소리 등을 차용해서 시간감이나 본인이 삶에서 느끼고 사유한 것들, 감정들을 담아냈다고.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삶의 비극적이고-첫 딸아이의 죽음 같은-때론 거친 흐름. 기쁨과 흥겨움까지도. 그에 대한 말러의 이야기가 에세이처럼 담겨있던 곡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

간 곳.
서울숲. 별 생각없이 수목원이나 되나? 싶어 갔더니만. 난지도를 연상시키는 넓은 공원이었음. 공연장도 있고. 방목하는 꽃사슴도 있고. 나비정원이나 곤충식물원 같이 아이들과 즐기기에 괜찮을법한 공간도 꽤 있어서인가. 가족단위 무리가 꽤 있었음.

봉은사.
코엑스에 조커 보러 갔다가 들름.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절. 속세를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 앉은 절을 잔뜩 보다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심 속 절을 보니 과연.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침 봉은사에서는 예수제, 라고 하는 무형문화재 지정 예불이 큰 규모로 거행되고 있었는데. 대웅전 앞뜰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도라던가. 알 수없는 불경을 외는 스님들 목소리를 흘려 들으면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구경했다.
덧칠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그물로 훼손을 막은 처마 밑 단청들 하며, 어디하나 낡은 느낌을 찾을 수 없는 절 구석구석도 그렇고. 한 켠에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미륵불들 수천 구가 굉장한 규모로 거대 미륵불상을 둘러싸고 안치되어 있는데. 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한 화강암의 색조. 거기서 느껴지는 기복신앙의 간절함이랄까. 돈지랄이랄까. 그 욕망이랄까가 지글지글거리며 뿜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차 한 잔, 다과 하나 모두 수천 원에 판매한다는 방이 붙어 있고, 템플스테이를 위한 건물이 증축중이고, 합격기원을 위한 몇박 며칠 순례 광고가 이곳저곳에 붙어 있고, ..세속적인 모든 욕망이 집중된 듯한 절의 모습에 나도 콰이도 좀 질려서 나왔다.
잘 알 수 없는 염불을 외던 화려한 제사상이 펼쳐진 절의 앞뜰, 대웅전 기왓장 너머로 보이던 수십 층의 고층 빌딩들,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아미타불 앞에서 절하던 무수한 사람들...
참 기이한 경험이었다.
예전에 여행간 홍콩에서나 보던, 화려하기 짝이 없던 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던 셈인데.
결국 종교는 어떤 형태이든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고. 인간이 운영해 나가는 것이 교단이니까.

먹은 것.
또보겠지 떡볶이. 홍대. 맵고 짜고 달고. 쫄면과 라면사리, 계란까지 기본으로 들어간 국물떡볶이. 그냥저냥 먹을만. 조미료 향과 얄구진 맛을 더 강하게 느끼고 싶다면 그냥 코끼리분식이 더 저렴하기도 하고 더 낫겠다 싶었던.

와인주막차차. 한식과 와인의 조화.
와인 셀렉션이 맛과 향에 따라 12가지 갈래로 나뉘어 있어서 흥미로웠음. 양식 메뉴는 피하는 것이 낫다.
Posted by 에크멘
,

나한테 집중.

일상 2019. 9. 24. 05:18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말고.

뒷담화도 그만두고-어차피 그 정도로 관심이 큰 것도 아니면서.

온전히 나한테 집중해야지.

비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여샘들에 대해서 그 정도로 챙겨줄 필요도 없고-알아서들 잘 하니까.

자기계발이나 하자.

애들 혼내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고. 미숙한 짓거리는 그만해야지.

입을 조심해야지.

 

그리고...대화자리에서 내 얘기는 좀 삼가야지. 친교를 위한 의미없는 맞장구에 좀 더 익숙해지고.

좀 더 다른 사람 얘기를 들어야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미니 맨. 2019.  (0) 2019.10.12
여성인권영화제.2019.  (0) 2019.10.12
관심사.  (0) 2019.09.07
오랜만이네.  (0) 2019.09.01
이수역 사건.  (0) 2018.11.14
Posted by 에크멘
,

2016년에 쓴 리뷰가 있길래 가져옴.

Posted by 에크멘
,

돈이란.

일지/일지 2019 2019. 9. 16. 23:36

교육청에서 이야기마당을 개최한다고 공문이 왔다. 이런저런 수업사례나 교육과정 사례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발표자들에게 소정의 강사료를 준다고. 그냥 참가자를 모으면 응답이 없을 듯하여 강사료 준다고 쪽지를 돌렸더니, 그래도 참가하겠다는 사람이 나오긴 한다.

학교 샘들 대부분이 영재강사나 각종 시범사업 강사로 뛰고 있고, 결국 돈을 우선시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수업은 적당히. 하더라도 강사로 뛸 때 보여줄 예시사진이나 예시 영상 등을 위해서 수업을 꾸려 나간다는 느낌도 들고. 내가 좀 많이 뒤틀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보여줄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은 무시당한다는 느낌도 든다. 혁신적이지 않은 기존의 수업들을 내실화 하는 것이나. 타인의 수업 관심사에 대해서도. 자신의 강의 내용과 관련이 없다면 굳이 참여하지 않는 듯한. 또는. 타인의 수업에 자신이 강의하며 밀고 있는 수업 방식을 추천해 넣어서 사례의 일환으로 활용한다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그것도 나름대로 아이들과 교사의 공동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보면. 윈윈이긴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가끔 이용당하는 듯한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교육청 등에서 부르는 초등교원 강사들도 보면, 일종의 선구자 마케팅으로 뜬 스타강사들이다. 예전에 방황하고 헤맬 때에는 그분들이 참 대단해 보이고, 그분들의 수업들, 그분들의 교실들은 특별히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했었는데. 어쩌면 평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개중에는 콜라보 형식으로 기존의 스타 교원 강사들과 함께 하다가 뜬 젊은 교사들도 있는데. 기존 분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발전된 양상의 강의를 하시는 것도 아니라서. 일종의 끌어주고 밀어주는 남성공동체의 수혜자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콜라보해서 책 낸 거 보면..다같이 벌어먹자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 비슷한 양상의 책도 어마무시하게들 내시는 것 보면. 예전에는 그저 대단하다 생각했으나.. 이제는 강사료를 높이기 위한 방법인가 싶은 생각마저 드는 것이. 책x권 이상. 이런 게 실제 강사료 지침에 있는지라. 겸임금지라는 직업 특성상 그들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갖춘 이들인지도 모르겠는거지.

아무튼. 최근들어 강사로 뛰는 인간들도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고. 내가 또 강사 섭외를 여기저기 해대고 있는 중이라서. 좀 많이 냉소적이 된 것 같긴 하다.

그래. 돈은 중요하지. 돈이 인간발전의 큰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냉소적으로 비아냥 거릴 일도 아니다. 타인에게 내보일만큼 스스로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연구하는 방식이 제대로 교실 안에서 정착이 됐다면야..뭐가 문제겠나. 문제는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과 영상, 기록물로 검증되지 않은 방식을 효과적이라고 선전하면서 타인과 제 교실 상황을 기만하는 것이지. 

나의 관심사에 대한 강연을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노하우가 쌓이고 쌓여서 확실히 성과를 맛본 후에나 떳떳하게 내보일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는 더 공부하고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일지 > 일지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2학년 수업참관.  (0) 2019.10.09
어른되기  (0) 2019.09.15
학부모 상담. 독서 교육.  (0) 2019.09.09
Posted by 에크멘
,

어른되기

일지/일지 2019 2019. 9. 15. 03:44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다움이란. 내면을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 타인과 조율해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 약자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 나의 옳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등을 의미한다. 내게는. 

연휴동안 해마다 보아 온 어른들을 만나고. 5촌 6촌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이 얘기하는, 소위 사람답게 살기 위한 구실들을 열심히 주워섬겼는데.

소위 그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항상 내키지는 않는 일이다. 툴툴거리지 않고 제사지내고, 어르신들 말씀에 네네 하고. 뭣보다 내 생각에 어른이 된다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기도 하고.

우리 집안 친가 할배들은 죄다 돌아가셨지만. 제사는 꼭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아부지를 지배하고 있어서. 올해는 열심히 구시렁거려서 가지 수와 양을 대폭 줄이고 닭백숙을 양념순살치킨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전을 피자로 대체하자는 의견은 아부지 반발로 무산.(아니, 그럼 치킨은 왜 되는건데. 차이가 뭐지. 개인적인 호오인가.) 제사 자체를 없애는 것은 역시나 역부족. 누군가를 전적으로 희생시켜서 유지하는 의식이라면 없애는 것이 낫다는 입장인데. 꾸역꾸역 그걸 받들어주는 양반들이 있으니. 불화 자체를 기피하고 두려워 하도록 길러진 베이비붐 여성들. 이번 추석은 제사도 지내고 심지어 성묘도 하고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의 제사 구경도 했네. 우리집 날림 제사만 보다가 다른 집의 격식차린 제사를 보니 더 속이 갑갑하더라. 여자들은 절도 못 하게 하고 여자들이 우글우글 상 차리느라 애쓰는 와중에 남자어른들과 담소를 나눠야 하는 손님이 되니 참 말도 못하게 불편해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외가 양반들도 가부장적인 양반들이라 그 우스꽝스러운 의식을 안 보이는 곳에서 수발해주는 사람들의 불편을 잘 캐치하지 못하더라고. 안절부절 못하다 우겨서 돌아온 건 결국 몇몇 뿐. 진짜 자연스레 존경받는 어른이라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주워 섬기는, 참아내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결혼하지 않은 사촌들이나, 딩크로 사는 동항렬들이 많은지라 결혼에 대한 압박은 거의 없는데, 그래도 어르신들하고 지내다보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얘기를 듣기는 한다. 꼰대스러운 부분들은 넘어가 드려야 하는데. 측은지심을 많이 발휘해야 한다. 정해진 트랙을 아무 의심 없이,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밟아온 사람들. 막연하게 가족을 이루면 좀 더 행복하겠거니-하고 살다가 이런저런 풍파를 겪은 가지 많은 나무들인데. 타인과 조율하지 못하고 부딫쳐서는 한 치도 수그리지 않고, 한 치도 더 발전하지 않고 다른 쪽을 신체적인 위협과 정신적인 피로로 잠잠하게 만들어 온 인간들이다. 고독은 그들의 오랜 벗이다. 결국은 자기정당화로 점철된 삶들인거고, 스스로를 견디기 위한 논리를 타인에게도 별 고찰 없이 내보이다보니. 그들이 결단코 나에게 위악스러워지려고 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견뎌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건 비극인데.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건 더한 비극인듯. 나 역시 미숙한 부분이 많은 인간이라 누군가는 나를 견뎠을테고, 모른척 해 주고 있겠지. 이를테면 동료라든가, 후배라든가, 우리 반 아이들이라든가. 나 역시 그들을 종종 견디고 있으니. 어떤 점에서 견디고 있을지는 얼추 짐작이 간다. 부족한 부분은 노력해야겠고, 어떤 점은 굳이 변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그들을 견디는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다.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을 굳이 다그칠 필요가 없고(도저히 대화로 풀 수 없다면 더더욱 다그칠 이유가 없다). 같은 동료들끼리 연령과 연차를 대며 서열중심적인 사고를 따라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군가가 Clumsy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은따에 동참할 필요도 없고. 승진과 돈에 대한 욕망을 일상에 적나라하게 적용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이 일 저 일, 이 아이, 저 아이 급을 나누어 보이는 것에만 매달릴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내게 그런 부분이 없는가. 그건 또 아니었어서. 되려 내가 더 악에 받쳐 있을 때도 있었고. 치사하게 군 적도 많았고. 어차피 승진과 돈에 대한 욕망으로 뭉친 공동체 안에서 내 관심사가 받아들여질 것도 아니었고, 관사니 점수니 뭐니 온갖 이슈에서 손익을 교묘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만큼 그런 부분에서 초탈하지 않고는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가 새롭게 만들어질 환경도 아니었으니. 어차피 이런 판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건드려보자는, 그런거였지.

어른이 되려면. 좀 더 노력해야겠으나. 꾸준히 내 교실 안에서 이루고자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할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실천해야만 하는 것은 어쨌든 표면적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겠지.

 

'일지 > 일지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2학년 수업참관.  (0) 2019.10.09
돈이란.  (0) 2019.09.16
학부모 상담. 독서 교육.  (0) 2019.09.09
Posted by 에크멘
,

학교 도서관에서 찾은 책. 누가 신청했는지.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고 있는데. 다 읽고나면 요약하고 정리해두겠음.

독서교육 계획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Posted by 에크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