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운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다움이란. 내면을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 타인과 조율해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 약자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 나의 옳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등을 의미한다. 내게는.
연휴동안 해마다 보아 온 어른들을 만나고. 5촌 6촌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이 얘기하는, 소위 사람답게 살기 위한 구실들을 열심히 주워섬겼는데.
소위 그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항상 내키지는 않는 일이다. 툴툴거리지 않고 제사지내고, 어르신들 말씀에 네네 하고. 뭣보다 내 생각에 어른이 된다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기도 하고.
우리 집안 친가 할배들은 죄다 돌아가셨지만. 제사는 꼭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아부지를 지배하고 있어서. 올해는 열심히 구시렁거려서 가지 수와 양을 대폭 줄이고 닭백숙을 양념순살치킨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전을 피자로 대체하자는 의견은 아부지 반발로 무산.(아니, 그럼 치킨은 왜 되는건데. 차이가 뭐지. 개인적인 호오인가.) 제사 자체를 없애는 것은 역시나 역부족. 누군가를 전적으로 희생시켜서 유지하는 의식이라면 없애는 것이 낫다는 입장인데. 꾸역꾸역 그걸 받들어주는 양반들이 있으니. 불화 자체를 기피하고 두려워 하도록 길러진 베이비붐 여성들. 이번 추석은 제사도 지내고 심지어 성묘도 하고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의 제사 구경도 했네. 우리집 날림 제사만 보다가 다른 집의 격식차린 제사를 보니 더 속이 갑갑하더라. 여자들은 절도 못 하게 하고 여자들이 우글우글 상 차리느라 애쓰는 와중에 남자어른들과 담소를 나눠야 하는 손님이 되니 참 말도 못하게 불편해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외가 양반들도 가부장적인 양반들이라 그 우스꽝스러운 의식을 안 보이는 곳에서 수발해주는 사람들의 불편을 잘 캐치하지 못하더라고. 안절부절 못하다 우겨서 돌아온 건 결국 몇몇 뿐. 진짜 자연스레 존경받는 어른이라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주워 섬기는, 참아내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결혼하지 않은 사촌들이나, 딩크로 사는 동항렬들이 많은지라 결혼에 대한 압박은 거의 없는데, 그래도 어르신들하고 지내다보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얘기를 듣기는 한다. 꼰대스러운 부분들은 넘어가 드려야 하는데. 측은지심을 많이 발휘해야 한다. 정해진 트랙을 아무 의심 없이,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밟아온 사람들. 막연하게 가족을 이루면 좀 더 행복하겠거니-하고 살다가 이런저런 풍파를 겪은 가지 많은 나무들인데. 타인과 조율하지 못하고 부딫쳐서는 한 치도 수그리지 않고, 한 치도 더 발전하지 않고 다른 쪽을 신체적인 위협과 정신적인 피로로 잠잠하게 만들어 온 인간들이다. 고독은 그들의 오랜 벗이다. 결국은 자기정당화로 점철된 삶들인거고, 스스로를 견디기 위한 논리를 타인에게도 별 고찰 없이 내보이다보니. 그들이 결단코 나에게 위악스러워지려고 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견뎌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건 비극인데.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건 더한 비극인듯. 나 역시 미숙한 부분이 많은 인간이라 누군가는 나를 견뎠을테고, 모른척 해 주고 있겠지. 이를테면 동료라든가, 후배라든가, 우리 반 아이들이라든가. 나 역시 그들을 종종 견디고 있으니. 어떤 점에서 견디고 있을지는 얼추 짐작이 간다. 부족한 부분은 노력해야겠고, 어떤 점은 굳이 변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그들을 견디는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다.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을 굳이 다그칠 필요가 없고(도저히 대화로 풀 수 없다면 더더욱 다그칠 이유가 없다). 같은 동료들끼리 연령과 연차를 대며 서열중심적인 사고를 따라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군가가 Clumsy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은따에 동참할 필요도 없고. 승진과 돈에 대한 욕망을 일상에 적나라하게 적용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이 일 저 일, 이 아이, 저 아이 급을 나누어 보이는 것에만 매달릴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내게 그런 부분이 없는가. 그건 또 아니었어서. 되려 내가 더 악에 받쳐 있을 때도 있었고. 치사하게 군 적도 많았고. 어차피 승진과 돈에 대한 욕망으로 뭉친 공동체 안에서 내 관심사가 받아들여질 것도 아니었고, 관사니 점수니 뭐니 온갖 이슈에서 손익을 교묘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만큼 그런 부분에서 초탈하지 않고는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가 새롭게 만들어질 환경도 아니었으니. 어차피 이런 판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건드려보자는, 그런거였지.
어른이 되려면. 좀 더 노력해야겠으나. 꾸준히 내 교실 안에서 이루고자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할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실천해야만 하는 것은 어쨌든 표면적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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