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비쉬 연작의 완결편.
젤레락을 찾아 복수를 단행하려는 딜비쉬는 블랙과 함께 그의 일곱 성 중 하나인 초시간성으로 향한다. 리들리와의 싸움에서 큰 타격을 입은 젤레락이 초시간성에 거하는 '오래된 자'의 힘을 빌어 단기 회복을 꾀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기 때문.
시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성과 그 안의 나락에서 꿈을 꾸며 힘을 방사하는 '오래된 자', 투알루아. 똥구덩이 촉수괴물..쿨럭;..투알루아가 선과 악의 전환기를 맞아 고통스러운 꿈 속에서 방사하는 마법적인 바람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의 주변부, 변화의 땅. 
거기에..행방이 묘연한 젤레락의 출현을 예상하고 변화의 땅을 수시로 감시하는 마법사 협회가 있고. 젤레락의 지배 하에 놓여있었지만 젤레락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통제석이 공백인 오래된 자의 힘을 자신에게 속박해 두려고 변화의 땅으로 모험을 감행하는 마법사들이 있고. 초시간성..에는 젤레락의 명을 받아 성으로 찾아든 도전자들을 감금하는 한편 반역을 꾀하는 대리인과. 오래된 자의 말을 통역하기 위해 환생시킨 자와. 그들의 하수인인 악마들이 있고. 그런저런 설정들의 아귀가 서서히 맞물려 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연 복수는 멋들어지게 이루어질 것인감. 
말이 나왔으니 복수극의 결말에 대해 끄적이자면.. 젤레락은 여정을 끝맺을 최종보스라기엔 과거지사며 속내가 복잡한 인물로 그려지는지라..게다가 읽어가다보면 좀 어설프고 귀엽게 느껴지는 구석마저 있는, 모호한 악역이다. 딜비쉬의 복수심도 바득바득 이를 가는 원한이라기보다 분함. 집착.스러움에 가깝다는 것을 본인이 깨달아가는 식이고 보면..결말이 어떤 식일지는 자명. 애당초 젤라즈니옹이 단순 명쾌 복수극에 마음을 둘 리가 없는 양반이고.
젤라즈니옹 소설들을 주욱 읽고 있는데..환상소설의 느낌이 강한 것들 중엔 집착이 느껴지는 설정들이 몇 있는 듯. 냉동수면이든 지옥기행이든 감옥이나 똥더미 기행이든-평범한 인간들은 경험하지 못한 공백이나 시련기를 거쳐 단련된, 초월적인 주인공들이며 그네들이 완수하려는 마찬가지로 초월적인 과제들이야 이젠 당연하고. 대지와 천구를 아우르는 급격한 변화상..이라든가. 거울이나 마법적인 물건을 매개로 현실의 시야와 겹쳐지는 이세계나 환상, 혹은 전송시스템. 재생자나 악마, 정령, 신들을 아우르는 그로테스크한 존재들. 같은 거. 적고보니 별거 아닌가;. 
러브크래프트 신화를 모태로 했다는 홍보문구를 보니..확실히 딜비쉬 시리즈의 묘사-특히 요번 "변화의 땅"은 전반적으로 기이하고 서늘하고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것이, 러브크래프트 단편선의 크툴루 목격담들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하늘이고 땅이고 무대 배경 자체가 확확 변하다보니 초시간성에 이르기까지를 그린 변화의 땅 여정부는 장면을 연상하는 자체가 좀 힘겨웠다. 
창의성 결여는 판타지 독자에겐 원죄같은 것.
피식, 피식, 실없이 웃게 만드는 젤라즈니옹 특유의 유머가 없었더라면 더 읽기 힘들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설정들은 꽤 마음에 들었던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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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보니 '오래된 자'는 러브크래프트 크툴루 신화의 '오래된 옛것들Great Old Ones'과 연관이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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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page사내들의 눈앞에서 선명한 형태들이 춤을 추고, 여기저기로 휙휙 움직이며 견고한 벽을 통과하고, 다른 곳에서 다시 출현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형태 일부는 추상적이었고, 개중에는 자연의 산물을 닮은 것도 있었다. 이것들은 꽃이나 뱀, 새, 잎사귀 따위였지만 대체로 패러디에 가까운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엷은 녹색의 회오리바람이 반대편 벽 왼쪽 구석에서 일어났다가 어느새 스러지면서 방바닥에 벌레를 잔뜩 뿌려 놓았다. 그러자마자 지푸라기 속에서 작은 동물들이 버스럭거리면서 벌레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
괴물은 몸을 돌려 휘적거리는 걸음으로 문간 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움켜쥔 팔을 갉작거리고 있었다. 공중에 반짝이는 물고기가 느닷없이 출현해서 헤엄쳐 다니기 시작하고, 그 위아래와 주위에서 온갖 환영-불의 벽, 바늘처럼 날카로운 잎이 달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진흙탕 같은 격류, 녹는 눈으로 뒤덮인 들판- 이 병풍처럼 열리거나 닫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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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page딜비쉬가 문을 열자 차가운 미풍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안개에 휩싸인 적동색 산으로 둘러싸인, 희끄무레하고 거대한 평원 한복판에 있는 듯했다. 산봉우리는 황혼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 뒤에야 그들은 중천에 반쯤 걸린 채로 빛의 대부분을 발하고 있는 지푸라기 빛깔의 쪼그라든 원반이 태양의 잔해임을 깨달았다. 
...
느닷없이 한 쌍의 거대한 바위가 평원 위에 출현하더니 그 위를 몇 번 구르다가 멈췄다.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일동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까지는 약 반 초쯤 걸릴 듯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거대한 빨간 손이 내려오더니 바위들을 집어올렸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내들의 머리 위에서 뇌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흔들었다.
딜비쉬의 시선은 불그스름한 팔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그 끄트머리에 있던 안개 낀 장소를 잠시 응시하자 무릎을 꿇고 있는 거인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흐릿하게나마 인간을 닮은 거인의 몸 너머에서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고, 그 머리카락에는 유성이 걸려 있다. 거인은 주먹 쥔 손을 흔들며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하늘을 향해 한쪽 팔을 들어올렸고, 그제야 딜비쉬는 입방체를 닮은 바위의 정체를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본다. 이제 이 장소의 척도와 파장에 눈이 익숙해진 덕택에 다른 거대한 존재들도 아까보다는 더 수월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머리를 한쪽 손에 괴고, 다른 두 팔은 가슴에서 팔짱을 끼고, 네 번째 손의 손가락으로 기대고 있는 남동쪽 산봉우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거대한 검은 형태를. 외눈과 뻥 뚫린 안와를 가진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태양보다 더 높이 솟구친 지팡이에 기대고 서 있다. 챙이 늘어진 모자에 반딧불이 같은 별들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완만하게 춤을 추는, 수많은 가슴을 가진 여자. 재칼의 머리를 가진 거인. 소용돌이치는 불길의 탑...
동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들 또한 같은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형언하기 힘든 외경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두 개의 주사위가 또다시 구르며 그 주위로 먼지가 일었다. 천상의 신들이 앞으로 몸을 수그린다. 검은 신이 씩 웃고는 손 하나를 뻗쳐 입방체를 집어올렸다. 빨간 신은 허리를 펴고 뒤로 물러났다. 딜비쉬는 문을 닫았다.
"장로신들..." 호지슨이 말했다. "내 눈으로 저런 광경을 직접 보는 것을 허락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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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page베인은 흐느낌을 멈추고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긴 채로 앉아 있었다. 갈트를 바라보는 대신 창문 밖에서 빛과 어둠이 교대로 나타나는 광경을 응시하고 있다가, 마침내 몸을 움직였다.
...
층계는 사라져 있었다. 그가 들어왔던 지점에는 이제 딱딱한 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전히 열심히 음식을 씹으면서 방을 가로질러 벽을 두들겨 보았다. 소리를 들으니 속이 빈 벽 같지는 않았다. 베인은 몸을 떨고 뒤로 물러났다. 이 장소는...
...
베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아까는 산이 없었던 곳에서 산맥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늘 전체가 이제는 둔한 백색이었고, 태양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여러 단계의 세기를 가진 광원들이 머리 위에서 균일하게 뒤섞여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은빛 물질이 앞으로 돌진하다가 멈췄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신이 있는 창문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창가에서 떨어져 나와 층계 쪽으로 갔다.
...
걸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엄청난 강풍의 포효를 닮은 절규가 베인의 고막을 울렸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온통 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광막한 수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파도라든지 파문 따위가 보이지 않았다. 물 위를 뒤덮다시피 한 안개 내지는 물보라 때문인 것일까...
검을 앞으로 내밀어 축축한 안개 속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다음 순간 베인은 검을 홱 잡아 빼고 있었다.
검 끄트머리는 녹이 슬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검 끄트머리에 아직도 들러붙은 산화된 부분을 만지자 손가락 및에서 가루로 변해 아래로 떨어졌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하늘은 여전히 이음매를 찾아볼 수 없는 진주 빛의 광막한 공간이었다.문을 닫고 빗장을 지른 다음 등을 갖다 대고 섰다. 베인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란"...옛 전언에 따르면 그 성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고, 시간의 흐름에 그냥 닻을 내리고 함께 흘러가고 있다고 하더군. 만약 그 닻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올린다면 성은 영겁의 강에서 표류하게 될 거라나..."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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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page홀룬은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지는 첫 번째 단어-상당히 표준적인 개시음-를 듣고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주문 속을 전진하며 각 몸짓의 인상을 흡수하고, 각 단어의 내부에서 그것을 실감하고, 이것들 모두를 뇌리에 확실하게 새긴다. 주문 끝에 도달하자 간극을 뛰어넘어 두 번째 순회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각론을 복습한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홀룬은 이 주문의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설계에 혀를 내둘렀다. 홀룬 자신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와 비슷한 이동 장치를 손에 넣을 것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이토록 뛰어난 주문 실력을 볼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이제는 예전보다 더 비평적인 눈으로 관찰하며 움직였고, 공격에 가장 적합한 지점을 찾아서...
"아하!"
일곱 번째 단어는 경자음으로 끝났고, 여덟 번째는 경자음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스물세 번째와 스물네 번째 단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홀룬은 또다시 그곳을 지나가 보았다. 7-8의 조합 쪽 휴지 간격이 약간 더 길었다.
다음에 지나갔을 때 그 간극에 연음의 t를 넣어 보았다. 설령 젤레락이 자기 자신의 주문을 감사하더라도 두 개의 자음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이 특별한 요소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순한 부 주문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이 시스템의 선들은 모두 기존의 주문 요소들과 평행한 형태로 그 위에 겹쳐져 있었다. 이 작업이 끝나자 또다시 주문 본체를 통과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삭제하지는 않았다. 다음번에 통과했을 때는 t를 활성화시키고 자기 자신의 시스템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완벽했다. 이 부 주문은 젤레락 자신의 시스템 심장부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연결 고리 자체는...
홀룬은 자신의 존재로부터 이끌어 낸 에너지를 그가 만든 시스템 안으로 조금씩 흘려 넣음으로써 시스템을 활성화시켰다. 구조 전체가 사라지더니, 홀룬은 자신의 거울 속에서 누워 있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차갑고 파란 존재를 향해 조롱하듯이 혀를 내밀어 보인다.
거울에서 나와 진동율을 낮춘 다음 눈을 떴다. 기지개를 켜고 미소 짓는다. 성공이었다. 발자국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란주문이 눈에 들어오자 홀룬은 구조의 차원으로 전이했다. 이쪽이 더 편안했다. 주문은 서로 연결된 색색가지 선들의 집합이 되었다. 이것들 모두가 맥동하고, 에너지의 구슬들이 일견 무작위하게 접합점에서 접합점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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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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