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63
공공도서관에서 빌림. 오랜만에 간 공공도서관엔 전보다 읽을만한 책이 없어보였음. 그나마 때깔이 좋아보이던 책이라 빌림. 스티븐킹을 별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잠깐 읽었던 단편은 그닥 취향이 아니었다. 검은고양이의 오마주스러운 작품이었는데..미국스러운 생활감과 디테일이 살아있고 제법 위트있었지만.. 이 책울 끝내고 나서도 내가 미국 문화에 익숙한 인간이었더라면 스티븐 킹을 꽤 좋아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미국적인 이런저런 것들이 잘 버무러진 글을 쓰는 작가같다. 미국식 위트. 교양. 역사와 지리에 대한 박학함과 미국적인 감성. 미국적 가치에 대한 열정.

존 케네디가 11월 22일에 암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간탐험을 시도하는 제이크 에핑이란 사내 이야기다.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교사. 주정뱅이에 바람난 부인 크리스티와 4년인지 5년인지의 결혼생활이 아작난 이혼남. 
그는 어느 날 단골가게 앨스 다이닝 사장 앨에게 불려간다. 여름휴가 이후 수십년이나 늙어버리고 심각한 상태가 되어 버린 앨에게서 제이크는 사업체 창고에 토끼굴같은 시간균열이 있음을 전해듣는다. 언제든 58년 9월로 점핑할 수 있는 토끼굴. 돌아온 뒤 다시 가면 항상 58년 9월로 리셋되어 있다는 토끼굴. 원하는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돌아오면 현실의 2011년에선 고작 몇 분 지나있을 뿐이라는 거다. 

앨은 제이크에게 케네디의 암살을 저지할 생각이었고 몇 번 시도하는 과정에서 수십년이 지났고 결국 악화된 폐암으로 실패했다며 제이크에게 유지를 이어주길 바란다. 실제로 미래가 바꾸는지에 대해 앨은 여러 번의 타임슬입을 콩해 실험도 했는데, 50년대 후반 사냥감으로 오인한 사냥꾼에게 척추를 맞아 하빈신이 마비된 소녀를 구해낸 것이 그것.

마침 제이크는 학교수위의 자전수필을 읽고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제 예순이 훨씬 넘어서야 고등학교 자격을 따려 제이크의 필수강의를 이수하는 학교수위 해리. 다리를 절고 약간 모자란 탓에 두꺼비 해리라고 놀림받는 선한 사람. 
제이크의 강의이수를 마무리하는 수필과제의 주제는, 삶을 바꾼 순간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일가족 참상 건을 써 낸다. 
58년 할로윈 저녁에 주정뱅이 아버지의 망치로 온가족이 도살당하고 자신만 치명적인 뇌손상과 다리상처를 갖고 살아남았단 거다. 
그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케네디가 살아있었더라면 이런저런 여파로 일어난 베트남전 때문에 수천 명이 죽어나갈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 등등에 설득되어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그에게 암살범 리 오스왈드에 대해 조사한 자료들과 돈을 건네고 망설임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고 앨이 진통제를 왕창 먹고 죽은 탓도 그를 떠민 요인이었다. 

첫번째 시도에선 해리 더닝 일가족을 모두 살리는 데 실패했다.
다시 감행하기로 한 두번 째 시도에선 일가족 살해범이 될 프랭크 더닝을 권총으로 미리 처치하고, 사냥꾼을 사냥터에 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써서 깔끔하게 부수적인 미션을 완료했다. 

앨에 의하면 리 오스왈드의 암살이 단독행동일지 공범이 있거나 외부의 지시일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기 때문에 베이크는 조지 앰버슨이라는 신분으로 단독범행이 확실해질 때까지 리를.감시하기로 한다. 
당시 리는 집착쩌는 어머니를 피해 소련으로 가 활동하다 붕괴하려는 소련에 싫증을 느끼곤 일가를 이루어 다시 미국으로 귀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직 소련에서 돌아오지 않은 리 일가를 기다리며 제이크는 사건기록을 소설화 시키며 느긋하게 지내며 마피아와 연계된 스포츠 도박판에 가 앨이 준 자금을 불리기도 하고(미래를 알고 있으니), 교사직을 위조해 잠깐 영어교사일을 하기도 한다. 이후 도박건이 심각해져서 마피아에게 죽을 뻔하기도 하지만. 그 땐 슬슬 리가 돌아와 텍사스의 댈러스 빈민촌에 정착할 즈음이었기 때문에 그를 감시하기 위해 근처로 거주를 옮기게 됐다. 다만 그곳이 워낙 희망없는 끔찍한 곳이라 이내 마음이 피폐해진 제이크는 조디라는 마을에서 새로 교사일을 병행하며 필요할 때 감시주거에서 감시테잎과 전방향마이크를 사용하기로 한다. 
제이크는 조디의 고등학교 교장 디크. 사서 미미 커플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성공적인 교직 입성을 하고, 미미가 암으로 죽으면서 새로 들어오게 된 새디라는 새로운 사서교사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다만 이 아가씨는 극심한 결벽증 환자와 별거중이었고 그로 인한 상처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 새로 불거지는 문제. 
물론 제이크는 미래인? 특유의 포용력과 위트와 부드러움으로 그녀의 상처를 토닥이며 행복하게 사랑도 하고 연극부 담당 교사로서 뛰어난 학생 (마이크, 생쥐와 인간)을 발굴해 멋드러지게 연극도 몇 편 펼치고 하며 조디에서의 순조로운 나날을 보낸다.
물론 밝힐 수 없는 불명확한 신분과 암살저지 건 때문에 새디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삐걱거리기도 했다. 
그와 별개로 리 오스왈드를 저지하려는 노력이 암살 시기와 가까워지면서 제이크는 자꾸 과거의 저항에 부딫히게 되는데 개중엔 리가 극우파에 속하던 모 장군을 사살하려던 날, 독단범행인지 확인하려던 차에, 돌아버린 전남편의 침입으로 새디가 왼 뺨에 중상을 입는 것도 포함된다. 결국 그게 연인사이를 구원해주는 계기가 되지만. 
뒤엔 도박으로 연인의 병원비를 충당하려다 전부터 행동을 주시하던 마피아에게 된통 당해 심각한 무릎 부상과 비장파열, 기억상실을 경험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운명의 사랑은 깊어졌으며 암살저지를 위한 계획은 그녀를 지키려고 한 노력에도 불구하도 연인에게도 까발려졌다. 최후의 날, 따돌리려는 노력도 무색하게 새디는 제이크를 찾아냈고 둘은 함께 댈러스 차량 퍼레이드를 구하기 위해 떠난다.
차 앞바퀴가 빠져 가로수를 들이받고. 버스가 교통사고가 나고. 강도를 당할 뻔 한 과정을 함께 도와가며 거쳐 총이 날아갈 교과서 창고건물 6층까지. 둘은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암살범은 사살되었다. 대통령은 구원되었다. 과정에서 새디가 죽었지만.

제이크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다시 감행할 요량으로 FBI 요원과 경찰을 적절히 상대한 뒤 토끼굴로 간다. 토끼굴 앞까지 다다르는 동안 7000명이 캘리포니아에서 폭풍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뭔가 심상찮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2011년은 전보다 훨씬 끔찍하게 어그러져 있다. 끊임없는 전쟁. 그리고 이런저런 핵전쟁으로 인한 방사능과 끊임없는 자연재해로 종내는 지구가 아작날 것 같은 상황. 
제이크는 피복되어 기형으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자신이 구해 낸 해리 할범을 괴롭히는 것을 구해주고는 아연실색한다. 정말로 사태를 해결해야겠다고 다시 타임슬립한다. 
전부터 토끼굴을 지나 과거로 올 때마다 앞에 앉아 카드를 모자에 꽂고 있던 거렁뱅이가 있었는데, 항상 소정의 돈을 요구했으며 카드는 노란 카드, 주황카드, 검은 카드로 색이 점차 변했고 검은 색이었을 땐 술에 절다 못해 자살해버린 시체의 모습였다.
2011년의 상황에 기겁해 다시 돌아온 그에게 새로 나타난 거렁뱅이 카드맨이 대화를 요청한다. 카드맨들은 뭔가 아는 듯했지만, 63년 2011년으로 가려는 그에게 이 새 카드맨이 나타났을때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알고보니 그들은 이런 류의 토끼굴-시간 기포를 지키며 궁극적으로는 기포들이 터지도록 마무리해서 미래가 나비효과로 아작나는 것을 막으려는 임무를 지닌 이들이었다. 원상회복된다는 앨과 제이크의 기존 믿음과 달리, 세계는 아주 미세한 변화마저 기억했고 미래는 상이 바뀌었다. 시간여행이 반복될 때마다 레이어같은 차원의 꺼풀이 끈처럼 가느다랗게 생겨나고, 카드맨들은 미세하게 변한 미래를 모조리 기억하는 숙명을 지녔다.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었고, 전임자는 그래서 중독에 빠져 종내는 자살했던 것. 
자신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단 것에 좌절한 제이크는, 처음엔 일련의 과정을 다시 감행하려 고집을 피우지만 새디의 안위와 미래가 걱정되어 디크에게 보낼 엽서만을 남긴 채 중단하고 되돌아온다.
2011년. 조디에서 뺨에 중상을 입지만 극복하고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된 저명인사 새디 여사와 재회한 제이크는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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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줄거리만 왕창..
5060년대의 시대상이 굉장히 잘 나타나 있다. 조사를 무진장 했을거라 여겼는데 
시대상과 관련된 조사를 맡이 해 준 친구가 있더만. 암살 건과 관련해서는 당시 암살장소들과 관련된 박물관이 있어서 거기서 문의를 여러번 받아 준 모양이고. 케네디 당시 대통령 보좌관 부부 등에게서도 조언을 받았다고. 책도 마이 읽었던 듯. 
시대상 묘사에 관해선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흥미로웠을 부분들이고, 매력적인 부분들이라 좀 아쉽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의 여유있고 순수한 마음구석들. 맛나고 정직한 수제음식들. 멋드러지고 개성넘치는 차들. 그런 것들을 좋았구나, 흡족하구나, 하도 느끼는 주인공 맘이 이해가 돼서. 그런 부분들에 한해선 결코 그때처럼 돌아가지 못할테고 점점 각박해지겠지. 
물론 빈민가 묘사나 인종차별 얘기는 끔직했다만. 나아졌다곤 해도 폭력과 빈부격차는 지금도 끔찍하게 여기저기서 일어나니까. 씁쓸하게 읽었어도 그런 건 여전히 마음놓고 넘길 수 없는 부분이었지.

암살 건과 관련해서는 비극으로 끝날거라 예상은 했다. 케네디를 죽인다고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진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사람들 의식에 변화가 없는 한은 역사가 꾸준히 좋아지기란 어려운 일인 듯. 케네디 말고도 역사의 변곡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니. 정말 개선된 미래모습이 펼쳐지더라도 감동은 별로 없었을테다. 어차피 우리가 잡아내 경험할 수 있는 상도 아니니까. 
글치만.
핵폭탄과 자연재해는 좀 심하긴 했네. 당장 지구가 부서지기라도 할 양이라니. 갑자기 소설에서 나와 러브크래프트가 맹근 신화 세계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음. 앞서 말한대로 체념스런 웃음이 나게 만들더라. 그래. 멋진 대체미래상이 펼쳐진다 한들 어디다 쓰겠어. 흡족할만큼 세세하게 쓰지도 못할테고 어차피 납득하지도 못할테다가 공상에 지나지 않을것을. 하는 웃음.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본 미션 외의 소소한 미션들은 여백을 채우고 긴장을 완화시려는 의도가 뻔히 읽혔지만 그 나름대로 중간중간 짠하기도 했다. 순박한 사람상. 그리울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상. 향수가 느껴져서. 사랑스러워서.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미래에서 온 주인공의 입장에선 훨씬 수월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세련된 감각과 놀라운 포용력을 지닌 연인이자 교사. 멋진 공상이다. 작가 할부지가 한 때 교사로 근무하기도 해서인가. 연극무대를 멋드러지게 차려내는 센스나 불안해하는 학생을 북돋우는 스킬 따위를 그려내는 데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주인공도 뿌듯한 일이라고 흡족해하잖는가. 킹 할부지 역시 그런 것들을 잘 해내는 괜찮은 선생이었을 것 같단 생각을 잠깐. 교사로서의 저런 면모는 부럽기도 하고.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우직하지만 부드럽고 센스 넘치는 머리좋은 남자. 그 시대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라...
뭐. 그렇게 사랑이야기도 연극 이야기도 늙은 작가 할부지의 향수랄까 이상향이 물씬 배어나는 듯 했다. 거기 가끔 코웃음치면서도 동조하며 읽었다. 

세부적인 디테일은 역시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잘 몰라서 막 넘겨버린 것들도 몇 있다. 본 소재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아마 미국 역사책도 몇 끼고 읽는 게 좋았을터지만. 귀찮아서 엄두를 못내겠음.
엄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련으로 나갔다가 싫증내고 다시 돌아온 극좌청년 리 오스왈드. 미국의 인종차별과 빈부격차에 불만을 품고 그가 전단을 돌리고, 극우파 몇을 죽이려 들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쿠바를 위협하는 케네디에 불만을 품고, 쿠바로 건너가려다 실패하는 와중에 그의 가난과 폭력에 휘말려 지낸 아내 마리나와 딸아이들. 망명하고 시들어버린 채 그들을 가끔 원조해 준 러시아 출신 중산층들. 그를 비웃으며 부추겨 댄 드 모렐렌토 장관. 감시에 만전을 디하지 못한 FBI. 케네디 사후의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인종갈등시위가 일고. 킹 목사가 죽고. 베트남전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 한 번 쯤은 검색해 보는 것도 좋겠다. 

결말? 그 이상 납득할만한 해피엔딩도 앖겠다. 제이크를 보고. 어스레하게 퍼져있는 과거~미래의 레이어 층을, 그 끈들을 희미하게 감지해내고 기시감을 느끼는 새디. 옛 그대로 늙은 조디의 사람들. 행복했던 과거의 음악과 춤. 그 정도면. 찌잉하게 안타까우면서 행복하지. 음.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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