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즈니의 번역본을 천천히. 하나씩. 모두 손대왔다. 
개중엔 읽다 관둔 것도 하나 있지만. 여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유머러스하고 고아한 문체. 방대한 지식. 신화를 차용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계와 강힌 캐릭터성 같은 것에 매력을 느꼈던 건 사실.
반면 슬슬 듀나를 비롯한 이들의 비판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체인질링과 매드완드를 읽고 있는데. 그림자잭이나 딜비쉬 연작과 아주 흡사한 느낌이다. 약간의 각성이 필요한 것을 제하면 이미 완성된 캐릭터.
이채를 띄지만 평면적인 이계. 거기엔 딱히 시대상이나 삶이 반영되어 있진 않은 것 같고. 그 이상으로 평면적이고 도구적인, 항상 타자로 머무르는 여자들. 완결된 글이고 더 이상 발전가능한 뭔가는 없어보일 수 있다.
어딘가 소품같은 느낌이 강한 시리즈다. 세계를 뚝딱뚝딱 만들어낸 방식도 그렇고. 복잡다단함과 미묘함이 많이 거세된, 동화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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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주축으로 한 세계에서 마왕 데트 일가는 백마법사 모를 중심으로 한 저항군에 죽고, 일가의 마지막 아이는 죽임당하는 대신 모에 의해 과학기술을 주축으로 한 세계로 바꿔치기 당한다.
자라난 두 아이는 각각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각자의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공학자의 아이였던 마크 마락슨은 마법세계에서 금지당한 과학기술을 화려하게 부활시키다 배척당하고 복수를 꿈꾸게되고.
데트의 아이 댄은 폴터가이스트를 비롯한 묘한 능력을 숨긴 채 중세사를 연구하는 학생이자 밤무대 기타리스트로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꿈꾼다. 마크의 복수가 구체화되려는 시점,
20여년이 흘러 쇠약해진 마법사 모는 마크의 과학기술에 대적하기 위한 방패로서 댄을 다시 불러들이고, 자신은 이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댄은 폴 데트슨이라는 진정한 자신의 정체를 알고, 빠르게 적응한다.
폴은 탁월한 음유시인이자 신참 마법사로서 이후의 모험에서 큰 역량을 발휘한다.그는 일곱조각상의 힘과 도둑 마우스글러브의 협조로 반쯤 질투로 미쳐날뛰는 마크를 죽이고 마법세계의 평온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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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비쉬 연작에서 보았던 주문의 시각화. 꽤 독특한 묘사라고 느꼈는데 여기서는 더 구체적으로 발전되어 묘사돼있다. 재미있다. 여기 등장하는, 마법사의 영혼이 봉인된 7조각상은 후에 마틴옹이 7s로 차용한 걸까?

캐릭터들을 인형놀이하듯 휘두르는 글 말고. 좀 더 치밀하고 깊이있고 짜임새있는 글을 읽고 싶다. 기대만큼 즐겁지가 않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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