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꼬맹이생각이 많이 났다. 요즘 수업 끝나고 방과후교실 가기 번에 교실에 한 번씩 와서 색종이 달라고 그러는데. 얘가 단순히 색종이 갖고 싶어서 날 떠보는건지. 아님 걍 뭔가 온기가 그리워서 그런건지. 난 잘 모르겠음.
작년의 나는 애를 안쓰러워만 하고 제대로 애가 보이는 이상행동들을 얼른 제대로 잡아주지 못해서 스스로 너무 자괴감 들고 힘들었음. 무능의 증거인 것 같아서. 남한테 토로도 못하고 끙끙 앓았더랬음. 뭘 어떻게 해야 애에게 좋을지도 잘 모르겠더랬음. 따뜻하게 대해줘야하는지. 어차피 부족한 애정 어설프게 줘서 애 더 망치지 말고 규율을 익히게 세게 나가야하나. 막막했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개선되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었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걍 다 말아먹은 기분이었다. 올해 말 들어서는 도벽증세가 사라졌다고 하긴 하더라만. 다행이었지만. 왠지 내 무능의 반증 같아서 맘 한켠이 쓰리더라. 그런 애가 종종 반을 찾아오니까 또 착잡한거지.
얘 맘 속의 결핍은 조금이라도 채워져 가고 있는건가. 아니면 결핍된 상태로 좌절되어 얼어 둔해져가고 있는건가. 코딱지만한 충족과 마비 중에 어떤 게 더 나을까.
그간 다른 이들의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강하게 느꼈다. 너무 강압적인 것 아닌가. 애한테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냥 애 키워본 경험도 없고 앞으로의 책임이 막막해서 애 키울 생각도 없는 내가. 현실에서 매일 애랑 경제적인 괴로움과 여유없음에 부대끼지 않으니 어쭙잖게 시혜적인 생각이나 갖고 부모나 다른 양육자, 교사들과 그들의 방식을 평가하는지도.
비혼인의 여유와 무경험에서 나온 오만인거지. 마냥 부드럽다고 좋은 것도 아닐 것인데. 알면서도.
아이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사람은 약해서. 어른이라고 애들보다 엄청 더 강하겠는가. 사는 게 시궁창이면. 비틀리기 쉽고. 스트레스를 갈무리하기 어려워지고. 살아가는대로 정당화하고. 그러기 쉬운 게 인간이고. 그게 참 비극적임. 어쨌든 관심과 책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양육자 입장에선 희생할 것들이 생기는 게 불가피함. 쉽지 않은 일임. 글고 아이들이 사랑을 쏟아붓는다고 양육자가 원하는대로 크는 것도 아님. 온갖 이유를 찾아 빗나가기 쉬운 것도 애들임. 내가 그래봐서 암. 비극이지.
한 술 더 떠서. 2050년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엄청 재앙적인 기상상황이 된다고 하더라. 이미 북극곰과 산호초는 멸종 직전임. 다큐에 보니까 산호초 멸종하면 해양생태계 끝장에 가깝다고들. 버뮤다 삼각지대나 북극 빙하 아래에 묻혀있는 메탄가스 매장량이 어마어마 하다는데. 그게 녹아나오면 온실효과는 더 심해지고 항공사고가 상당히 증가할 거라고도. 세계평균기온이 5도만 더 올라가도 인류는 멸종각임. 당장 온 인류가 쇠고기 끊고 채식해야 온난화가 더뎌질 판인데 안 그럴 거니까 온난화는 더 심해질 거라고. 중국발 초미세먼지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일본발 방사능 오염은 아마 우리세대가 죽을 때까지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나아질 길 없을거고. 바다로 흘러갔다 해산물에 섞여드는 미세플라스틱도 해마다 점점 많아지겠지. 유사호르몬 섭취량도 해마다 늘어서 이미 남성들 정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시험관 아기 시도는 늘고 있고..등등.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해 나가고. 진취적인 용기가 없다면.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아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은 온기를 원하는지라 쉽지 않은 얘기다. 그리고 한 때 풍족한 삶이라도 이래저래 참 쉽게 양상이 변하니까. 어차피 생은 풍족한 이에게든 그렇지 않은 이에게든. 희망이 있는 이에게든. 비관적인 이에게든 고다.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마당에 무슨 기준으로 누구에게 부모될 자격을 주고 말고 하겠나.
아이나 학교와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더랬다. 온갖 가불가의 규칙들과 모범이라는 테두리 안에 스스로를 옥죄는 삶이지. 고리타분하고. 아이들의 반항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다. 나도 욕 정도는 수시로 하고. 맘껏 염색도 하고. 적당히 일탈도 하며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미 공교육 종사자로 애들이랑 수 없이 부대끼는 입장에선. 있는 애들 잘 기르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인 것 같음. 소소한 보람이 있고. 엄청 속썩힌 애들이라도 그애들 삶이 안쓰럽고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내 멋모르던 어린 시절이라고 삶이 쉽지는 않았으니까. 아이들 삶도 꽤 치열하고 힘겨우니까. 걍 응원해주고 싶은 거지. 어쨌든 태어난 거라면. 있는 사람들끼리는 충돌을 줄이고 서로 배려하고 염려하며 행복하게 잘 부대끼며 살길 바람.
작년의 나는 애를 안쓰러워만 하고 제대로 애가 보이는 이상행동들을 얼른 제대로 잡아주지 못해서 스스로 너무 자괴감 들고 힘들었음. 무능의 증거인 것 같아서. 남한테 토로도 못하고 끙끙 앓았더랬음. 뭘 어떻게 해야 애에게 좋을지도 잘 모르겠더랬음. 따뜻하게 대해줘야하는지. 어차피 부족한 애정 어설프게 줘서 애 더 망치지 말고 규율을 익히게 세게 나가야하나. 막막했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개선되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었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걍 다 말아먹은 기분이었다. 올해 말 들어서는 도벽증세가 사라졌다고 하긴 하더라만. 다행이었지만. 왠지 내 무능의 반증 같아서 맘 한켠이 쓰리더라. 그런 애가 종종 반을 찾아오니까 또 착잡한거지.
얘 맘 속의 결핍은 조금이라도 채워져 가고 있는건가. 아니면 결핍된 상태로 좌절되어 얼어 둔해져가고 있는건가. 코딱지만한 충족과 마비 중에 어떤 게 더 나을까.
그간 다른 이들의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강하게 느꼈다. 너무 강압적인 것 아닌가. 애한테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냥 애 키워본 경험도 없고 앞으로의 책임이 막막해서 애 키울 생각도 없는 내가. 현실에서 매일 애랑 경제적인 괴로움과 여유없음에 부대끼지 않으니 어쭙잖게 시혜적인 생각이나 갖고 부모나 다른 양육자, 교사들과 그들의 방식을 평가하는지도.
비혼인의 여유와 무경험에서 나온 오만인거지. 마냥 부드럽다고 좋은 것도 아닐 것인데. 알면서도.
아이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사람은 약해서. 어른이라고 애들보다 엄청 더 강하겠는가. 사는 게 시궁창이면. 비틀리기 쉽고. 스트레스를 갈무리하기 어려워지고. 살아가는대로 정당화하고. 그러기 쉬운 게 인간이고. 그게 참 비극적임. 어쨌든 관심과 책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양육자 입장에선 희생할 것들이 생기는 게 불가피함. 쉽지 않은 일임. 글고 아이들이 사랑을 쏟아붓는다고 양육자가 원하는대로 크는 것도 아님. 온갖 이유를 찾아 빗나가기 쉬운 것도 애들임. 내가 그래봐서 암. 비극이지.
한 술 더 떠서. 2050년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엄청 재앙적인 기상상황이 된다고 하더라. 이미 북극곰과 산호초는 멸종 직전임. 다큐에 보니까 산호초 멸종하면 해양생태계 끝장에 가깝다고들. 버뮤다 삼각지대나 북극 빙하 아래에 묻혀있는 메탄가스 매장량이 어마어마 하다는데. 그게 녹아나오면 온실효과는 더 심해지고 항공사고가 상당히 증가할 거라고도. 세계평균기온이 5도만 더 올라가도 인류는 멸종각임. 당장 온 인류가 쇠고기 끊고 채식해야 온난화가 더뎌질 판인데 안 그럴 거니까 온난화는 더 심해질 거라고. 중국발 초미세먼지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일본발 방사능 오염은 아마 우리세대가 죽을 때까지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나아질 길 없을거고. 바다로 흘러갔다 해산물에 섞여드는 미세플라스틱도 해마다 점점 많아지겠지. 유사호르몬 섭취량도 해마다 늘어서 이미 남성들 정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시험관 아기 시도는 늘고 있고..등등.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해 나가고. 진취적인 용기가 없다면.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아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은 온기를 원하는지라 쉽지 않은 얘기다. 그리고 한 때 풍족한 삶이라도 이래저래 참 쉽게 양상이 변하니까. 어차피 생은 풍족한 이에게든 그렇지 않은 이에게든. 희망이 있는 이에게든. 비관적인 이에게든 고다.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마당에 무슨 기준으로 누구에게 부모될 자격을 주고 말고 하겠나.
아이나 학교와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더랬다. 온갖 가불가의 규칙들과 모범이라는 테두리 안에 스스로를 옥죄는 삶이지. 고리타분하고. 아이들의 반항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다. 나도 욕 정도는 수시로 하고. 맘껏 염색도 하고. 적당히 일탈도 하며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미 공교육 종사자로 애들이랑 수 없이 부대끼는 입장에선. 있는 애들 잘 기르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인 것 같음. 소소한 보람이 있고. 엄청 속썩힌 애들이라도 그애들 삶이 안쓰럽고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내 멋모르던 어린 시절이라고 삶이 쉽지는 않았으니까. 아이들 삶도 꽤 치열하고 힘겨우니까. 걍 응원해주고 싶은 거지. 어쨌든 태어난 거라면. 있는 사람들끼리는 충돌을 줄이고 서로 배려하고 염려하며 행복하게 잘 부대끼며 살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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