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도 안 할 것 같은 짓을 해 놓고.

자꾸 곱씹어보고 있는데.

모르겠다.

나는 뭘 전하고 싶었을까.

동정표를 얻고 싶었나? 무결한 사람이 되고 싶었나? 상담이 필요한 걸까..


좋은 분이랄까..이런 걸 받고 지나치기란 쉽지 않겠지. 부담이 더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나는 모른척 하기로 했다. 그리고 떠나든가..하겠지. 별로 즐겁지 않은 나날인데. 즐겁게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아서. 다른 곳이라고 얼마나 다를텐가 싶지만.



안녕하세요, 교감선생님.

뜬금없이 무슨 짓인가...하실 것 같아 몇 번 망설였는데 도무지 잠이 안 오는 밤이라 끼적입니다. 계속 머릿속으로, 뵙고 말씀드려야지...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접고 하다가 접고 하다 보니 끼적이게 되네요. 저는 말이 서툰 사람이고 글이 편한 인간이다 보니.

 

일단은 죄송한 점이 몇 가지 있어요.

한 가지는. 지난 회식 때의 주제넘은 말씀 건입니다. 교사들 입장에서 중재하려고 애쓰셨다는 이야기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불편하게 해 드렸지요. 관사에 사는 입장도 아니면서요. 학교 관사 시설은 낙후되어 있지, 수리하기 위한 예산 차출은 빠듯하지, 들어와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고 저마다 딱한 경제적인 입장들이 있고-그걸 어떻게 기준을 잡아서 서열화 시킨다는 것도 어려운 마당인데. 교원들, 행정실, 체조부..입장이 나뉘다보니 알력다툼이 되어버리는 것도 같습니다. 교감선생님은 그 판을 두루 보셔야 하는 입장이시고, 중재하셔야 하는 입장이시니 갑갑하시기 짝이 없겠는데. 제가 그날은 교감선생님을 많이 괴롭게 해 드린 것 같습니다. 술김이라는 핑계는 대지 않으렵니다. 솔직히 이 학교 들어온 후 지난 2년간,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관사 건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한 것은 사실이어서, 저도 알게 모르게 분위기에 젖어 지냈는데 그날 저나 다른 샘들이나 그 스트레스가 터졌던 것 같습니다. 교감선생님께서 그래도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안심하고 그랬을 거예요. 다들 솔직히 꺼냈다가는 최악의 경우 관사에서 내쫓기지는 않을까 싶어 쉬쉬하며 억눌렀던 화제라서요. 박철샘 말대로 소통이 중요하다지만...쉽지 않은 것 같았고. 지금은 그냥, 상황이 참 난감하고 어렵다는 생각뿐입니다.

감내해 주시는 데 대해 많이 감사했고, 죄송하고. 그렇습니다. 총괄하시는 분이시니까. 두루 보시고..저희가 좀 과했는지도 모르죠. 아무튼 결국은 관사인도 아닌 저로서는 되도록 모두의 스트레스를 적당히 조율하고 감하는 선에서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입니다.

 

어제 방과후 시간표 변경 건에 대해서는 제가 어디까지 보고해야 하나, 부분에서 잘 모르겠어서 지나치게 세세하게 말씀드린 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학교의 대표격인 입장에서 강사들의 편의를 어느 정도까지 봐주고 허용해야 하나..하는 태도 면의 갈등이 있어서 여쭙고 싶었어요. 시간표 조정은 전적으로 제 재량이고. 그 부분에서는 믿어주신다고 느꼈고.. 어제 학교에 들를 생각이었는데 직접 뵙고 말씀드렸으면 더 나았겠다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 방과후 계약 하시는 분들 뵐 겸 나가겠습니다. 말을 번복하는 게으름뱅이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건. 언젠가힐링캠프였나? 회식 때였나? 교감선생님께서 저한테 말해보라시던 평소의 제 속내인데.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싶긴 한데.

저는 학교에 있으면서. 모두와 두루 잘 지내고 싶은데 때로는 모두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수업과 생활지도. 업무. 최선을 다하자 싶으면서도 다 내던지고 싶다는 기분도 들고. 그래서 생각이 많은 반면 건실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나 교사로서 수업이나 아이들 마음 어루만지기나 업무나 애쓰고 있다, 조금은 세월 따라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하나도 나아진 거 없이 보여주기처럼 생색이나 낸 건가, 시간만 잡아먹나 싶어 실망스럽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느끼는 변덕만큼 다른 선생님들,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친밀감이나 신뢰감도 변덕스럽게 움직이고는 해서. 그래서 교감선생님께서 제게 가끔 속내를 얘기해 보라고 하셨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얘 속내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싶으셨을까요. 얼굴이 뚱, 하니 불만 많은 직원 같다고 보셨을 수도 있겠고.

저는 게으름뱅이지만 이상을 좇고 싶은 인간이라서. 스스로나 타인에 대해 쉽게 실망하거나 비관하는 면이 있는 걸 고치려고 애를 쓰는 중입니다. 올해는 생각을 좀 덜하고 실천을 하자, 봉암초 선생님들도 다들 그 나름의 상냥한 면, 좋은 면들이 있으니 그 부분을 많이 배우자고 마음먹었지요.

서툴지만 올해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학교 시스템이 굴러가는 데 일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감선생님과 많은 말씀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간 많이 배려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한 점 알고 있습니다. 분명 저도 느끼고 있으니까 윗분 입장에서도 맘에 차지 않는 부분이 꽤 많이 있으실 텐데도.

올해로 3년이나 되어 가지만 아직은 그래도 쌩 초짜 신규라 치고 너그럽게 봐 주시고 많이 훈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뻔뻔한 말씀인가 싶긴 한데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만큼 어쩔 수 없네요. 면대면에서도 좀 살가운 표정으로 이렇게 뻔뻔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탐탁찮게 여기시려나요.

여하튼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글이 쓸 데 없이 길고 이상한 것은 반은 새벽에 쓰는 탓입니다. 항상 감정과잉에 이상한 글이 되더라고요. 반은 제가 이상한 탓이겠죠.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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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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