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아이들 주라고 카라멜을 한 봉 가져오셨다. 주시는데 받지 않는 것도 그렇다 싶어 아이들 잘 나눠주겠노라고 받았다. 마침 원어민 선생이 수업시간에 약속한 큰 사탕을 가져오기는 커녕 아침에 버스를 놓쳐서 아예 학교에 결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두 개씩 나눠주었다.

그런데 몇 시간씩 지나고 나니 아이들이 계속 카라멜을 까먹고 있어 이상하다는 할머니. 점심시간에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혹시나 싶어 열어보니 아이들 서랍장 안에 카라멜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간 마이쮸나 비타민을 서랍 안에 넣어두었는데 그래도 아니겠지 싶어 내버려 두었다. 아이들도 우리 의심하는 거예요? 우리 도둑 아니예요. 라고 하기에 믿어주는 사람이 되자, 싶어 별 말 안 했더랬다. 쥐잡듯 도둑으로 추궁하며 따져 보았자 서로 상처만 되고. 대신 서랍을 잠그기로 했는데, 종종 서류를 열어보아야 하니 항상 잠글 수도 없는 노릇.

점심시간, 밥 먹고 와서는 저희 서랍 열어보셨어요? 하기에 왜? 했더니 소중한 것이 없어져서요. 하더라. S가 M에게도 속닥속닥 하더니만 서랍정리 해야지, 하고 M이 서랍을 열어 뒤적뒤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무 얘기 안 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선생님이 서랍을 열어보았고 카라멜을 찾냐고 한 마디 해 주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업 시간.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의심하는 것이 싫어서 여러분 말을 믿었다. 이전에 마이쮸가 사라졌을 때도, 비타민통이 텅 비었을 때도 여러분이 부인하기에 내가 다 나누어 주었겠거니 하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할머니께로부터 받은 카라멜봉지가, 딱 두 개 씩만 주었는데도 다 사라져 있었다. 할머니께서 여러분이 계쏙 카라멜을 씹고 다니는 것을 보셨다기에, 남의 서랍을 뒤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혹시나 싶어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카라멜이 가득 나오더라.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이 남의 것을 가져가는 것을 나쁘다고 알면서도 잘못한 것이다. 할머니께서 조금씩 아껴 먹으라고 주신 것을 가져갔으니,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선생님에게도 사과해 주었으면 좋겠다. 

M은 왜인지 삐쳐있고. S는 조용히 말이 없었다.

죄송하다고 말을 하라고 했더니만 둘 다 말이 없기에 반성문으로 사과를 써서 달라고 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어서 내내 기다릴 수 없으니 남아서 쓰라고 하고, 일단은 수업을 진행했다. M이 고개를 숙인 채로 봐야 하는 영상을 보지 않고 있기에 목소리 톤을 좀 세게 해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피해를 끼치고 있으니 일어서서 보라고 했다. 

펭귄 영상이 시작되고 재미있는 영상이기에 그래도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열심히 보더라. 


등장인물이 되어 인터뷰 하는 부분에서 엄마, 아빠, 아기펭귄역을 맡아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아빠펭귄이었다. 아빠펭귄에게 '어떻게 알을 품느냐'고 질문하기에 뱃살을 끌어 내려서 덮는다고 했더니만 둘다 자지러지게 웃더라.

수업은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충실하게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은 반성문에 대해 더 언급하기도 전에 내 책상에 올려져 있던 A4용지를 한 장씩 가져가서는 열심히 반성문들을 써서 할머니께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가 내 책상 주변에서 재잘대며 얼쩡거리기에 눈을 들여다 보았다. 왜요? 하기에 잘못을 인정하기는 참 힘든 일인데, 용기있게 해 줘서 대견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진심이었다. 혼난다고 느낀 M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 아니다. 반항하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혼을 내서라도 물건을 가져간 것에 대해 돌아오는 부정적인 대가를 체험하게 해야 하나 했는데. 이 아이는 자기 행동이 밝혀진 데 대해 수치심을 느꼈고 잘못을 인정할만한 용기가 없었는지도. 혹은..내가 저를 미워해서 혼내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위축되어 있었는지도. 하지만 수업시간에 내가 저희를 자지러지게 웃겨주자 마음이 놓였는지도 모르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문을 정성스럽게 쓰긴 했는데. 좀 걱정이 된다. 나는 엄청 엄한 선생님이 되어서 벌을 막 주어야 했을까. 반성문을 쓰게까지 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은데. 애들이 들키지 않으면 몇 번 더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까 두렵다. 

근데. 애당초 교실에 먹을 것을 두는 것은 잘못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견물생심이라고. 찔끔찔끔 주는 것이 썩 좋은 일 같지는 않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물었었다. 먹을 것 있어요? 하고. 그 때마다 없어, 없어. 하고 대꾸했던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할 핑곗거리였는지도 모르지. 반성문에 선생님이 너무 적게 주신다, 는 말이 있어서. ㅎ

요즘들어 작게작게 먹을 것으로 보상을 주는 것이 참 별로라는 생각을 한다.

아예 먹을거면 함께 즐겁게 다 같이 나눠먹고 끝내버리고. 아예 먹거리 보상을 없애버리는 것이 낫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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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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