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해 기록을 하라고 하던가. 그를 위해 시작한 블로그였기도 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을 피해 홀로 있을 공간을 만든 거기도 했고. 나의 대나무숲이었던 블로그인데. 떠난 지 오래되었다. 한동안 열심히 적었던 블로그 글들이 뿜는 괴로움과 냉함에 질려서 돌아올 생각이 나지 않았던가보다. 휴면계정으로 있던 블로그를 다시 열어보았다.


작년의 괴로운 상황에 비해 올해는 많이 상황이 바뀌었나?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 와서 생 초짜 신규들이 맡아야 했던 묵중한 업무들을 많이 맡아주었고. 그들에게 한편 의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 

나와 함께 힘들었던 5학년 아이들은 이제 키가 훤칠하게 크고 과묵한 6학년들이 되었고, 그 아이들을 맡은 선생님은 힘의 논리로 교실을 지배하고 있다. 년초 한동안은 어려운 아이들을 맡아서 고생하는 그에게 죄송스러웠고, 또 중반부쯤에는 아이들을 어떻게 조져서 말을 듣게 만들었고, 어떻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지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그의 행동과..그것이 진국이라고 평하던 말들에 거부감을 느끼고 작년의 내 고민들에 대해 공허감을 느끼고는 '결국 이 모든 고민이 헛것이었던가, 나는 실은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데 그치고, 그저 위선을 떠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지금은...여전히 폭력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 나름대로 노력하는 교사라는 것은 이해한다. 수년 간 쌓여 온 부진을 뿌리뽑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년에 아이들을 남겨서 나도 나름 애썼지만 부진을 완벽하게 뽑겠다는 각오에서였다기 보다는. 매일 신경전 벌이던 아이들과 그냥 함께 평온하고 부드러운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나쁜 전임이라고 생각할지도. 어쩔 수 없다.


관사와 현장체험학습과 치적. 그에 얽힌 갈등은 여전하다. 교사들이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대한 민주적인 분위기는 전연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온 사람들 역시 윗분들의 연을 타고 온 사람들이어서. 나의 불만을 날것으로 포장하지 않고 전하는 것은 아닌가 두려운 마음에 경계를 풀지 못하겠다. 더군다나...교사들이 갑갑해하는 진짜 문제들은 어차피 풀리지 않을 것이란 체념이 흐르는 분위기다. 불만 토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아이들은. 3학년이다. 두 아이 모두 사랑스럽다. 다만. 아직 어른이 덜 됐다. 나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면 학급을 말아먹는다는 글을 읽었는데. 조금은 그런 삘이다. 다만. 군대용어로 각 잡힌 학급을 만들겠다는 마음은 내게 그닥 없기 때문에..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질서의 측면에선. 그리고 학습의 효과 측면에선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공동체생활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그리고..어디까지 무엇을 위해 권위를 세워야 하는가. 

그것이 나의 고민이고. 한동안은 주위에 휘둘리게 될 전망이다.

솔직히 어른에게 예의차리기, 어른의 권위 인정하기...는 그닥 강조하고 싶지 않다. 어디서 감히..는 내려놓고 싶다. 부당한 어른이라면 맞서기도 해야 한다. 자기 소리를 낼 줄 아는 꼬맹이들이 됐으면 한다. 작년 C에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징그럽게 괴로웠지만. 녀석도 괴로웠겠지만. 그 때 내겐 능숙한 타협기술과 조율이 더 필요했다. 

나는 포용력이 넓은 인간이다. 그리고 학교에 안 맞는 인간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어느정도는 외부인의 시각으로 살고 있다. 각 잡힌 규율 싫어하고. 자율을 이야기하고 싶고. 근데 나 역시도 그런 민주적인 상황에 놓여 본 적이 별로 없어서 방관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어디까지 선을 긋고 단호해져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단호함 이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하게 되는지에 대한 혼란이 있다. 


아직은...나는 허용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한다. 

더 들어주고. 다만 경청하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짧은 주의력을 끌어모아 열심히 경청해주는 가운데서 좀 짤막하고 핵심을 뚫는 체계적인 안내방식이 되도록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중하라고 하면서 중언부언하는 그런 면을 못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한 내용의 썰을 푸는 버릇도. 애들은 대학생이 아닌데.


애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뭐..여전히 애들은 어렵다. 나 자신도 어렵고.

어깨 힘이 많이 빠졌고. 번 아웃의 여파는 길다. 생각은 많은데 실천은 잘 못하는 느낌? 


내년이 되면..프로젝트 학습을 좀 더 공부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수업내용 정리하고 복습시키는 기법에 대해서도. 그리고..아이들 스스로 조사하고 생각하게끔 북돋우는 기술에 대해서도. 부진 탓이라고는 하지만, 난 아직 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해오라고 맡기면 못 할 거라는 의심이 있고, 부족한 결과물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전적으로 따라하고 싶은 멘토를 만나면 좋겠다. 교육철학을 공유하고, 한 발짝씩 같이 따라가보고 싶은 그런 멘토. 너무 의존적인가. 속내를 다 까발려볼 수 있을만한 친구가 더 생겼으면 좋겠고. 아직은 그런 사람을 못 찾은 듯. 내가 그런 인간이 되는 게 먼저가 되어야 될 것 같다. 그러려면 좀 더 체계를 다잡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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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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