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일상 2021. 2. 3. 15:05

올해 1월 이후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블로그인데. 오랜만에 들어와보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온갖 인간관계에 푹 담궈져 있다가 나왔고. 정신 없이 바쁘고 잠을 쪼개가며 책도 써 보고.

주변에서는 천박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싶지만 돈과 경제기사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작게 나마 스터디 모임도 하고 있고. 

발전이라면 발전이고. 피곤함이 늘었다면 늘었고.

 

학교를 옮기고 나서, 그간 내 일상을 지배하다시피하던 학교 이슈에서 많이 벗어나기도 했다.

전처럼 수업준비를 위해,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깨어있는 일이 좀 줄었다.

선배 선생님들이 학교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몇 발짝 떨어져 관망하면서 이렇게 평온할 수도 있구나..

저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구나.. 하고 있달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은 부드럽고 잔잔하다. 두루두루 서로 마음다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런 아이들은 처음 만나보았다. 속 썩이는 사건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납득 가능한 감정들이어서. 사는 건 원래 재미 없고 내적 동기를 찾기 힘든 일이니까, 그럴 땐 아이들도 때때로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려니 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원하는 것과 반하는 거대한 강요의 흐름에 이리저리 치이며 사는 것이려니..

무기력하고 짜증내는 자아를 어떻게든 부둥부둥 일으켜서, 희미하게나마 즐겁게 느껴지는 실마리를 찾아 그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그 아이들도 조금씩 터득하게 되겠지.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내가 준비하는 일련의 수업들이나 활동들이 그 과정을 좀 수월하게 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올해는 조금 뻔뻔하다 느낄 정도로 힘을 많이 빼고 지내서.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제 2020학년도도 마무리를 앞두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집착도 많이 버렸다. 나는 어중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가고 있다.

아주 좋은 교사도 아니고, 아주 악랄한 교사도 아니고.

좋은 친구도 아니고, 나쁜 친구라기엔 어중간하지.

아무튼. 그렇다. 모두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 나는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적당히 나쁜 사람이고.

 

기존에 만난 이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지니려고 노력은 한다.

그들도..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저, 되는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이들이 좀 있었을 뿐. 

그 양반들도 사는 게 그냥 힘들었을 것이다. 힘든 삶이니까...그러니까 뒤틀리는 거다.

뒷담은 까겠지만. 더 만날 일 없는 이상은 안쓰럽게 여기고 있다. 

다들 고생한다. 잘 견디어가기를. 그래도 종종 웃기를. 괜찮은 기억 한두 개 정도씩은 나누고 가기를.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진심으로 그렇게 바란다.

아예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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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맨. 2019.

일상 2019. 10. 12. 14:20

윌 스미스 나오는 영화. 윌 스미스가 1인 2역하는데, 50대와 20대를 연기했다고-기술력을 잘 활용한 영화라고 해서 궁금해서 보러갔다.

 

짧게 평하자면. 초반 액션씬은 꽤 신박했다. 특히 오토바이씬. 거기까진 괜찮았음.

다만 영화 속 설정이 지나치게 단순함. 조직이 은퇴한 조직원을 죽이려는 의도란 것도 신통찮고. 거대 조직이라는데 별로 설득력이 느껴지는 규모도 아니고. 미친인간은 너무 단순해서 재미없고. 클론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그리는 씬도...그냥 그러함. 후반에 50대 주인공이 20대 클론에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조언하는데..그냥 꼰대스럽다.

초반부터 이어지는 윌 스미스와 여 조연의 썸은 불편하다. 50대와 20대의 썸이라니. 아니아니. 그냥 여자 조연의 모습이 아이캔디 이상이 아니어서 더 시무룩해지는 것도 있었지.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전개를 보진 않았어서 영화가 그나마 양심있다고 생각했음. 

중국자본이라 그런가 중국인 배우도 한 명 나온다. 착하고 재미 있고 의리 있는 중국인 친구. 음.

 

콰이가 물어보길래 그냥 굳이 볼 것 없이, 유툽에 오토바이 액션씬만 올라오면 그거나 좀 보고 말아도 될 것 같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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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영화제.2019.

일상 2019. 10. 12. 14:11

지난 연휴 때 콰이랑 같이 다녀왔다. 압구정 CGV. 서울숲이랑 가까운 곳.

귀찮아서 미루다가 기억으로 남겨놓으려고 쓴다.

이날 공연 관람 일정이 잡혀있어서(세종문화회관 말러) 13시 언저리에 하는 단편 시리즈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미니 미스. 난세포. 앤드 유. 빼라는 놈을 패라. 네 편을 봤더랬다. 20분 남짓의 짧은 영화들이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우먼 인 할리우드나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같은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지.

다음에는 혼자서라도 기회가 있으면 영화제 같은 곳은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니미스는. 콜럼비아였나. 라틴문화권 영화였는데. 10살 미만의 여자아이들이 미인대회에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유치원 아이 때부터 여성적인 것의 특징을 캐치하고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동화홀씨 모임에서도 들었는데-그래서 한 번 씩 놀이를 시켜주신다는 말도. 3살 무렵부터 성별 정체성을 발달시킨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던지라, 결국 그것도 주변 어른들을 남/녀로 특정짓고 자신이 해당하는 성별의 어른을 따라하려는 움직임이지..하고 속으로 넘겼는데. 이 영화가 다루는 부분이 그거다. 여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성스러움을 좇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런 압박을 받고 순응해 나가는 것인가.

어떻게든 미인대회에 딸을 출전시키고 상을 타고 싶어하는 엄마들의 지극정성. 껄끄럽고 귀찮은 의상을 참아가며 입는 아이들. 어른들 하는 대로 얌전히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엉뚱하게도 보라색으로 입술을 발라달라고 하는 아이의 모습 등등.여자아이라면 당연히 이래야지~의 틀에 자기 아이들을 열심히 욱여넣는 어른들이 있고. 어른들의 예상과 다른 선호를 갖고 행동하려 하지만 어른들의 애원과 부드러운 훈육의 손길에 의해 차단당하는 아이들이 있고. 여러 번 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이미 온갖 화학약품을 머리와 온몸에 바르고 까끌거리고 조이는 드레스를 입고 워킹하는 데에 익숙하게 행동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아이는 매 과정에서 버거움을 나타낸다. 온 건물에 울리도록 으르렁대는 비명을 지르는 꼬맹이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성중립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꼭 필요하겠다 싶고. 불필요한 과소비와 시간소모를 불러 일으키고 행동을 제약하게 만드는 의상과 몸을 혹사시키는 다이어트에 집착하게 만드는 사회의 여성성 압박에 대해 어른 여성이자 멘토로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저항할 필요가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아용 화장품까지도 팔아먹겠다는 온갖 광고들이 나오는 요즘 작태를 보면, 중딩이 된 아이들이 벌써부터 화장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속이 복잡해진다.

 

 

난세포는 영미권 영화였는데. 낙태결정을 앞둔 여성에게 가상현실기기로 온갖 if를 들이밀며 선택에 부담을 주려는 시도들이 나온다. 낙태가 가능한 시기인 6주 이전까지는, 수정된 태아는 그저 세포에 불과할 뿐이다. 무척 작은 크기에, 통각도 느끼지 못하는.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은 여성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아직 인간으로서 완성되지도 않은 난세포와 태아에 대해 이미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여성의 안전과 복리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두는 것 같다. 한국사회도 결혼하지 않는 것, 출산하지 않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죄책감을 강요하는데. 정작 정자제공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기이한 일이고. 가부장적 결혼 제도 밖에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인 편모가정 아이들이나 고아들에 대한 복지도 별반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 역시 웃긴 일이다. 그건 그냥 '니들은 걸어다니는 자궁이고, 가부장제를지탱하는 하수인이다. 가부장제 밑에서만 아이를 낳으라'는 메시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드 유. 미국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을 그렸다. 성범죄수사대 SVU를 1시즌부터 정주행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해 다루던 에피소드들도 몇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내 학생클럽들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정재계에서 날리는 부모들을 둔 자제들이고, 이런 클럽 행사에서 무수히 많은 신입생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곤 하지만 학교측은 가해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아 유야무야 묻히곤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2010년대가 되어서도 크게 나아진 게 없던 모양이다. 학교측은 성폭행 사건에 대해 심리할 때 가해자의 인간성을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자 편의 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와 평판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참고하는가 하면, 가해자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가해자가 과거에 어떤 인간이었건, 성인군자였건 아니건 그가 저지른 범죄 자체는 끔직한 짓이고 처벌받는 것이 당연한데도. 과거의 행적과 주변에 대한 평판이 범죄 처분에 영향을 발할 수 있게 한단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그래서 가해자는 여전히 피해자를 조롱하고, 부러 마주치는 짓도 하면서 무난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피해자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있고. 다행히 그녀는 용기를 내고 스스로 피해자들을 규합하고, 지지해 주는 학생들을 만나 함께 교내 성폭력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한국은 원래 개차반이지만, 미국은 그래도 훨씬 나아져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저기도 미친 나라구나.. 당연히 피해자의 편에서 위드 유 하겠지만, 저건 진짜 정책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피해자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안타까웠다.

 

빼라는 놈을 패라. 독일 영화였는데. 고도비만 여성들이 힙한 스타일을 과시하는 화면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스러운 영화였다. 비만여성들은 또 그 나름대로 사회적인 압박을 받을테지. 아름답지 않다,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로 재단당하고. 수군거림받고. 그래서 그런가. 원하는대로 예쁜 옷을 입고 화장할거야! 당당하게 뽐내며 살 테다! 하는 자기주장 가득한 영화였다.

하지만...아름다운 여성이다, 천상여자다 칭송받는 것도, 너는 여자도 아니다, 추녀다 손가락질 받는 것도. 결국 프레임 안에서 검열당하며 사는 건데. 거기 휘둘리면서 신경쓰느니 어떤 체형과 외관을 갖추든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성성을 무시해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일 아닌가. 굳이 돈 들여가면서 반짝이 드레스 사 입고, 피부에 좋지도 않은 화장품 사들여서 얼굴에 그림그리고 할 필요 없잖나.. 좀 씁쓸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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