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큰 전개는 그런대로 재미있는 편.
우주와 외계인에 대한 지구인들의 낙관과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는 멋진 설정인 듯. 지구인들이 암흑의 숲에 있는 순진해 빠진 어린아이라니.

반면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묘사는 중국 정서 탓인지 몰라도 어딘지 좀 단순하고 극적인 느낌이 강하달까.. 면벽 프로젝트라니. 그리고 삼체세계의 항복장면과 이후 급 '사랑최고~!' 하고 나오는 부분은 예상은 했지만서도 양상이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극단적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버프가 상당히 커서 어떨 때는 조금 거부감이 들 정도기도. 결국은 단 한 명의 중국인이 세계를 멸망에 처하게 하는가 하면, 그로부터 사사받은 또다른 단 한 명의 중국인이 다시 세계를 구원한다. ㅎㅎㅎ

뤄지가 면벽프로젝트를 활용해서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하는 과정은... 작가는 아름답게 그리려 노력한 듯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과정이기도 해서. 이 작가가 그리는 여성들은..1부의 주인공이었던 예원제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어딘지 장식품스러운 데가 있어서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2부는 어떻게 보면 수미쌍관 구성인데, 친절한 작가 답게 여기저기 구구절절 힌트를 많이 남겨 주어서 결말을 예상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던 듯.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역시나
면벽자가 파벽자와 대면해서 파벽당하는 장면. 그리고 삼체의 물방울이 우주함대를 괴멸시키던 장면이 아닌지.
우리편이 당하는데 그렇게나 신이 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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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작의 두 번째.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를 잃은 예원제가, 생존에 혈안이 되어 있는 냉혈한 삼체인들을 태양 안테나를 통한 통신으로 불러들이고, 인류가 우주로 나가기 위한 기술발전을 지탱해 줄 기초물리학을 삼체인들이 지자들이 미리 보내 봉쇄한 이후의 이야기다. 대충 네 흐름으로 나눌 수 있으려나.


하나는, 면벽 프로젝트의 발족.
인류는 생존을 전전긍긍 물색하기 시작하고, 절망적인 가운데 삼체 외계인들이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기술이 더럽게 없음을 바탕으로 전복을 꾀한다. 전세계적으로 뛰어난 몇몇을 물색, '면벽자'라 칭하며 그들이 머릿속으로 은밀히 계획한 생존방안을 제한없이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 그것.
그러자 삼체 외계인들은 지구인 추종자들을 파벽자로서 내세워 면벽자들의 의도를 파악하도록 함으로써 격파하도록 지시한다.

한편, 군에서는 우주전쟁을 염두에 두고 개편이 이루어진다. 군 내에서 심리적 무력감이 위험할 정도로 확산되는 중이나, 단 한 사람, 삼체인과의 교전에서 확고한 승리를 확신하는 젊은 장교, 장베이하이란 인물이 눈에 띈다.


두 번째. 면벽 프로젝트의 무력화와 동면.
면벽 프로젝트는 세 가지가 발족되었으나 단 하나를 제외하고 파벽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된다. 심리적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멘털 스탬프, 항성형 수소폭탄. 이것들을 고안한 면벽자들이 파벽자에 의해, 그들이 실상 완전한 패배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동귀어진을 고안해 내었다는 의도를 발각당한 것.
파벽되지 않은 단 하나의 면벽자는 중국인 뤄지로, 그 자신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는 인물. 한때 예원제로부터 우주사회학을 전공해 보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 자다. 희한하게도 지자들이 그를 경계하는 모습을 UN이 확인하게 된 탓에 면벽자가 된 케이스.
면벽자 지정 이후 독특하게도 은자적이고 사치스런 행보를 보인 탓에 무시당하고 비난받던 차였으나(걍 모든 것을 무시하고 면벽자 예산으로 이쁜 마누라 얻어 토끼같은 내새끼와 그림같은 곳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듯한, 실제로 그런 의도였음) 일이 이렇게 되자 UN 측에서는 그의 가족들을 강제동면시키고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그를 닦달한다.
뤄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대안을 물색. 과거 예원제와 만나 우주사회학에 대해 논했던 것에서 착안해 그가 내놓은 마지막 대안은 황당하게도 '저주'인데, 구체적으로는 187J3X1항성이 거느린 행성을 향해 안테나로 저주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그리고 저주가 실현된 것을 관측할 수 있는 시기까지 그는 동면에 들어가기로 한다.

한편, 우주군 소속 장베이하이는 수백년 후 삼체인들과 맞닥뜨릴 우주함대의 추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후지기 짝이 없는 로켓이론에 집착하던 늙다리 학자 몇을 은밀하게 암살한다.

마땅한 묘안이 없는 상황에서, 뤄지와 장베이하이를 비롯한 많은 인구가 동면을 선택한다. 기초과학은 새로운 발견이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기존의 이론에 기대어 지구궤도 엘리베이터가 착착 건설에 들어간다.


세 번째는 삼체인의 침공.
동면한 뤄지가 깨어나, 삼체인의 침공을 몇 년 앞두지 않은 미래.
인류의 대부분은 침공에 대비하여 지하를 거점으로 생활하고 있고, 기술의 발전은 얼핏 굉장해 보인다. 우주군은 병력도 규모도 상당히 커진 상태이며, 많은 지구인들이 삼체인들을 능히 패퇴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낙관적인 상황.

그러나 최첨단 안테나를 통해 삼체인들의 우주선이 우주먼지를 흐트러뜨린 흔적을 발견해내고, 삼체인들이 보낸 은빛의 물체가 당도한 이후, 그 낙관은 깨져버린다. 지구의 기술은 지자에 가로막힌 이후 가능한 한계 내에서 최절정에 달하였으나 삼체인들의 기술은 그를 아득히 능가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반사하면서도 아무리 확대해도 매끄러움을 유지하는 표면을 지닌 은빛 물체. 그 물방울을 닮은 물체는 기존 물리법칙을 무시한 움직임과 속력으로, 도열해 있던 우주함대열을 관통해서는 우주함대 전체를 괴멸시켜 버린다.
개중 단 세 대의 우주선만이 탈출에 성공하는데, 그를 이끄는 것은 과거에 완전승리를 확신하는 듯 했으나 실상은 완전패퇴를 확신한 상태로 동면에 들었다가 깨어난 장베이하이다. 현 우주군의 추진력을 향상시키고자 과거 암살까지 강행했던 것은 추적이 아닌 줄행랑을 위한 것이었던 셈.

삼체인들의 공격을 최대한의 속력으로 피해 달아난 우주선 셋은 사실상 완전히 지구로부터 떨어져나온 새로운 인류가 되었으며,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타 은하계의 행성을 향해 대를 이어가며 생존을 위한 가망없는 비행을 하게 된다. 그마저도 연료 부족과 부품 노화로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직면하자, 장베이하이는 우주선 한 대만을 남기기 위해 자폭을 택한다.


네 번째. 뤄지의 계략.
지구에서는 종말을 앞둔 혼란으로 엉망이다.
뤄지는 동면에서 깨어난 이후 끊임없이 지자와 삼체 추종인들의 암살시도를 겪던 차에, 과거의 저주가 실현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로써 그는 급작스레 마지막 희망으로 부상하고, 면백프로젝트는 오랜 텀을 깨고 재개된다.
그러나 뤄지는 이후 인공우주진운을 만들어내는 설원프로젝트에 오래도록 관여하는데, 당장의 구원을 바라던 많은 이들은 급속히 실망하게 되고, 그는 경멸당하기까지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원제의 무덤을 찾아 그곳에서 삼체세계와의 1대1 협상에 돌입하고, 심지어 성공하기까지 하는데, 예전에 성사된 그의 저주를 삼체세계로 옮기겠다고 협박한 덕분이다.
설원 프로젝트로 그림 형태의 진운을 만들어 삼체세계와 태양계를 우주에 폭로하겠다는 것.

과거 예원제는 우주사회학의 공리에 대해 뤄지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첫 번째-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두 번째-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하다.

예원제의 공리를 바탕으로 그가 도출해낸 것은 암흑 숲 속에 적대적인 사냥꾼들이 서로를 불안해하며 우글거리듯, 우주 또한 매한가지 양상이라는 것.
발달한 문명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상대가 자신에게 우호적일지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서로의 위치를 알게 되면 무조건 쏴 죽이려는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저주로 인해 187J3X1항성계가 소멸한 것도 그 때문인 것.

삼체세계가 태양계와 함께 자멸하고 싶지 않다면, 위치를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뤄지는 자신의 심장과 진운을 일으키는 항성급 수소폭탄을 연결해서 자살협박을 했고, 그는 성공했다. 이로써 삼체세계와 태양계의 지구는 서로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고, 지자의 감시는 사라지고 과학기술을 전수받게 되었다. 당분간은 평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뤄지 역시 가족들과 재회해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삼체세계와 그가 바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주라는 암흑의 숲에 햇빛이 비치는 것이다. 서로를 불신하고 당장 파괴해야 할 위협으로 간주하는 현 상황에, 사랑과 신뢰를 싹틔울 수 있게끔 모험을 해 보는 것은 어떤가. 하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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