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으로 읽게 된 책. 한 없이 나락으로 내려가는 분위기의 책이다. 
푸르스름한 초저녁과 컴컴하기만 한 새벽의 어둠, 시멘트로 뒤덮인 겨울 도시의 더께 쌓인 가장자리를 곱은 맨 손으로 훑으며 지친 몸뚱이로 탈주하는 사연 많은 소년의 이야기.
녀석은 고작 열 다섯이고, 얼핏 그저그런 가출 소년처럼 보이지만 끊임 없이 쫓기고 있는데, 그를 쫓는 이들의 수나 쫓는 수준의 집요함으로 보아 상당한 거물급 범죄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 달아나면서 저지르게 되는 이런저런 범죄들 탓에 녀석은 경찰들로부터도 쫓기고 있다. 이런 탈주와 추격은 아홉 살 언저리부터 주욱 계속되어 왔다. 삶의 태반을 진저리나게 쫓기면서 살아온 셈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받아 온 이런저런 상처들로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도, 애정에 대한 갈망도 모조리 갈무리해서는 내팽개쳐 버린 지 오래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하루를 버티기 위한 악과 깡, 상처받고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갖춘 타인에 대한 의심 뿐이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슬러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외우다보니 누구보다 도시를 훤히 꿰고 있다. 사람들에게 잊힌 틈바구니와 빈집을 찾아들어 밤을 지새고, 조그만 칼을 손아귀에 꽉 쥐곤 해를 입히려는 인간들을 위협하고 조롱하고 쫓아내며 도시를 종횡무진 가르고 다닌다.
그러나 이렇게나 무섭도록 영악하고 날렵한 그도 결국은 완전히 버석버석 말라붙지 못하고 모질지 못한 소년일 뿐이다. 13세 때 잃은 유일한 친구 베키의 대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몸서리치고, 시궁창같은 런던 뒷골목에 방치된 꼬맹이 재스를 보고는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지만, 어린 자신이 다뤄져 온 과거와 재스의 모습을 비춰보며 그런 상황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는 탓이다. 
4권 분량이지만, 1권에서부터 주인공은 무척 지쳐 있는 상태다. 너무 오래 부정적인 상황에 방치되어 온 데다, 그를 쫓는 추격 역시 좁혀져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가는 중이다. 때때로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며 오열하기도 한다. 다시 어떻게든 바닥으로 나가떨어진 마음과 비척비척 말라가는 몸을 추슬러 올려 발을 내딛고 숨을 곳을 찾지만 결국 나쁜 상황으로 더 말려 들어 갈 뿐.
그를 안쓰럽게 여기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들이 이제껏 아주 없었을 리 없다. 그들에게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고, 오랜 긴장이 가져 온 피로함을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이 일련의 암울한 상황이 어떻게든 결말을 맞아야 하리라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시점.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된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어둡다는 느낌이 크다. 이제 3권까지 읽어냈지만, 계속 읽어나가기가 피곤하고 버거워서 도중에 몇 번 덮기도 했다.

어떻게든 조용히 숨어 지내려던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변의 관계 없는 사람들이 휘말려 들어 처참하게 해를 입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꼬맹이 재스와 만나고 나서, 더 이상 상황을 견딜 수 없어진 블레이드는 자신을 추격하는 거물 당사자와 결착을 내기로 하고 결말을 조직해 나가기로 한다. 수년 간 떠나왔던 런던으로 돌아가 가능한 한 오래 숨어 버티면서 그의 거대 조직을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까발리고는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오래도록 자신을 추격하던 형사에게 결정적인 이름들과 단서들을 흘린다. 그러는 동안 그 자신도 그것들 속에 연루되어 살아가며 얻은 곪은 상처들, 스스로 범한 무수한 범죄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버티며 살아가기 위해 외면했던 모든 것들. 거물을 처치할 모든 단서들을 까발려낸 뒤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그는 템즈강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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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콩이 누렇게 웃자라는 콩나물처럼 뒤틀리지 않게 해 주는 햇볕같은 것. 인간에게 그것은 결국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인 모양이다. 진부하지만 다른 답이 있을까. 어떤 식으로 전할 것인가의 문제가 항상 골아프고, 그래서 무수한 양육법과 교수법이 넘쳐나지만. 받아들이는 쪽이 제대로 전해받을 수만 있다면야.
짐짓 강한 척 평생 홀로 살아갈 수 있을 듯 영악하기 짝이 없던 블레이드가 끝내 지워버리지 못하던 햇볕의 기억같은 것. 베키의 미소와 진심어린 염려. 그 기억은 무척 짧은 것이었고 심겨진 지 수 년이 지나도록 눌려 있을 뿐이었지만, 결국은 재스를 만나 같은 것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오랜 잠복기를 거쳐 병이 발현하듯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찢어내어 반대 방향으로 바꿔 놓았다.
인간이라면 어떤 인간이고간에 어떤 형태로든 모두 엽록체를 지닌 식물들마냥 햇볕을 향해 뻗어가듯 온기에 이끌린다. 온기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4권이 남아있으니. 죽지 않았다고 기대해도 되겠지. 이제는 좀 오르막을 볼 수 있겠지.



4권.

최종보스와의 결판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심각하게 부상입은 몸으로 치르는 과정들이 너무 먼치킨스러워서 감흥을 떨어뜨린다. 더군다나 후반에 가서 블레이드가 실제로도 어마어마하게 먼치킨스러운 인물임을 드러내니 더더욱..
결착을 깔끔하게 지어내고 싶었던 건 알겠는데 이렇게나 주인공을 비현실적으로 치켜세워두면 곤란하다..설득력이 없잖아. 누가 이걸 리얼리티라고 했나..주인공이 겪는 세세한 길거리 삶은 어떨지 몰라도 이야기의 핵심이나 주인공 자체는 현실과 무척 괴리가 있다..ㅎ
누구보다도 처참하고 최악의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그려내고 싶은 욕심이 낳은 허점이라고 봐 주겠다. 안타까움을 극대화하고 새로 찾아든 가능성을 훨씬 달갑게 느낄 수 있도록 과하게 명민한 녀석으로 그렸던 듯.

영국 청소년층의 문제는 전부터 그 심각성을 청소년들을 다룬 드라마 등지에서 많이 조명해 온 바 있다. 폭력과 마약남용, 성범죄들..성인 범죄자들 못지 않게 정도가 심하고 곪아 있다고. 
이 시리즈는 영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칼을 이용한 범죄가 심각해 진 것이 집필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끔찍하게 방황하는 그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 팀 보울러는 환상문학계에서 무척 유명한 작가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리버보이"의 명성은 여기저기서 보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메시지에 집중하기 위해 환상문학 노선을 잠시 벗어나 리얼리티를 택해 쓴 유일한 시리즈다.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냉혹하고 처절한 장면들 투성이지만, 앞서 적었듯 블레이드를 (좀 과하게) 재기 넘치는 인물로 그려낸 점이나, 그를 감싸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들을 살피다보면 작가 양반의 따뜻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작가 나름대로 거리의 아이들의 언어와 생활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조사하고 이해한 결과물이라고 보면 되려나. 그리고 거기다 진심어린 염려와 충고를 곁들여 놓았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거리에서 허비하지 말 것. 당장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폭력은 결국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 최악의 상황에서도 도움의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라. 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더 나은 상황은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네 마음이 허락한다면. 증오의 반댓말이 들어설 마음의 틈을 열어두어라..그렇지 않으면 그저 삶은 꼬여 갈 뿐이고,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져 갈 뿐이다..
굳이 방황하는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누구에게나 의미있는 충고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상황을 바꾸어 낸다. 

Posted by 에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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